진보 성향의 원로 학자인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12월 9일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 ‘김대중 전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19주년 학술회의’ 기조강연에서 “한국 민주주의가 위기다. 위기의 본질은 한국 진보의 도덕적·정신적 파탄”이라고 규정했다. 나아가 “한국의 진보파가 이해하는 직접민주주의는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를 뿐 전체주의와 동일한 정치 체제다”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운동권 학생들이 한국 정치를 지배하는 ‘정치계급’이 됐다”고 했으며, 이 같은 경향이 전체주의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다수 인민 의사를 전체 사회의 의사로 이해하고, 모든 인민을 다수 인민의 ‘총의(總意)’에 복종하도록 강제하는 틀은 전체주의와 동일한 정치체제라는 것이다.

최 교수는 문재인 정부가 가져온 격렬한 정치 갈등은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볼 수 있다며, 이는 ‘386 세대’를 위시한 진보 세력들이 ‘적폐 청산’을 외치며 역사와 대결하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조국 사태에서 드러난 온갖 위선과 탈법, 이를 감싸는 여권과 친문 세력 행태를 볼 때, 진보의 도적적·정신적 파탄이라는 최 교수의 분석은 정확하다. 울산시장선거 정치공작 의혹은 3.15 부정선거보다 더 심각한 사건이며, 감찰 중단 사건은 민주주의 시스템 자체를 위협하는 문제다.

최 교수의 강연이 있은 하루 후인 20대 정기국회 마지막날(12월 10일) 대한민국 역사상 듣도 보도 못한 ‘4+1 예산안’이 국회에서 가결됐다. 이는 국회 예결위를 건너뛰고, 예산 부수법안 처리를 통해 세입을 확정 짓기 전에 예산안부터 통과시킨 과거 권위주의 정권에서도 시도한 적이 없이 없는 탈법 날치기 ‘예산농단’이다.

더불어민주당은 2중대, 3중대, 4중대와 야합해 법적 근거도 없는 ‘4+1 협의체(민주당, 바른미래당 당권파, 정의당, 민주평화당+대안신당)’에서 깜깜이 예산 수정안을 만든 뒤, 항목의 증액·삭감을 공개하지도 않은 채 표결에 부쳤다. 그 결과 정부 원안에서 고작 1조2075억원을 줄인 512조2505억원의 ‘초슈퍼예산’이 확정됐다. 올해의 469조6000억 원보다 9.1%(42조7000억 원) 증가한 것이다. 재정적자(올 1~10월)가 45조원, 나랏빚이 698조원에 달하는데 문재인 정부 들어 3년 만에 예산이 112조원 급증했다.

특히 날치기 통과에 들러리 선 군소 정당들 지역구가 몰려 있는 호남 지역 예산은 정부 원안에 비해 1조1000억원이 늘었다. 또한 올해 대비 내년 국가 예산 증가율이 부산 12.9%, 울산 28.2%, 경남 16.8%로 정부 예산이 9.1%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여권이 총선 전략지역으로 삼고 있는 부·울·경 지역에 ‘국비 폭탄’이 쏟아졌다. 이것은 명백한 총선용 ‘퍼주기 예산’이다. 이러고도 국가 재정이 거덜 나지 않으면 이상하다.

더불어민주당은 하루 전에 최 교수로부터 “한국 민주주의가 진보의 도적적·정신적 파탄으로 위기”라는 쓴 소리를 듣고도 왜 이런 무리수를 뒀을까. 그것은 들러리 군소정당들에 의석수 증가라는 ‘당근(미끼)’을 주면서 장기집권을 위한 ‘선거 독재’와 ‘사정(司正) 독재’를 구축하기 위해서다.

민주화 투쟁 경력을 훈장처럼 달고 다니는 좌파 세력들이 이렇게 민주주의의 종언을 구하는 헌법 위반을 겁도 없이 일삼고 있다. 역사와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는 오만이다.

‘선거 독재’를 위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은 민주당에 협조하는 대가로 범여권 군소 정당의 몸집을 불려줘 이들을 대(對)한국당 투쟁 전선에 ‘용병’으로 세우려는 것이다. ‘사정 독재’를 위한 공수처는 사회주의 일당(一黨)독재처럼 검찰을 무력화시키고 새로운 권력의 충견을 법제화하려는 것이다.

좌파 장기 집권에 유리하게 선거제도를 바꾸고, 좌파 진지(陣地)의 불법 탈법을 눈감아주는 무소불위의 대통령직속 감찰기구를 설치하는 것은 사회주의화(化)로 가는 길이다.

민주당은 12일 선거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등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법안의 처리를 선언하고 나섰다. 이에 대비해 한국당은 편법 법안 통과 저지를 위해 11일부터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무기한 농성에 들어갔다.

사회주의는 실패한 정치 체제다. 국가 주도 계획 체제의 소련과 동구권 붕괴가 이를 입증하고 있고, 남미의 좌파 포퓰리즘 경제파탄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좌파 독재 정권은 다 죽은 사회주의를 대한민국에서 실험하고 있다. 국민은 좌파의 반헌법 책동을 두 눈을 부릅뜨고 나무라야 하며, 한국당은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를 저지해 대한민국의 사회주의화(化)를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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