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정가 떠도는 횡행하는 '형제·자식·부인' 금뱃지 대물림

[일요서울ㅣ조주형 기자] 20대 국회가 말썽이다. 타협도 없다. 더욱이 막말 섞인 비난도 날이 갈수록 그칠 줄을 모른다. 상대 의견에 대한 동의는커녕 상대에 대한 존중 자체도 찾아보기 힘들다. 대화와 타협이 실종됐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 11일, 문희상 국회의장은 국회 본회의를 속개, 자유한국당이 빠진 ‘4+1’협의체의 예산 수정안 처리를 강행한 바 있다. 이에 한국당은 문 의장 아들의 지역구 출마를 거론하며 세습정치를 비판하고 있다. 이후 여야의 사생결단식 갈등도 들불처럼 번지는 모양새가 됐다. 국회는 패스트트랙 안건 처리를 놓고 다시금 폭풍전야를 맞고 있다.

국회 헌정기념관 내 국회의원 선서문. [조주형 기자]
국회 헌정기념관 내 국회의원 선서문. [조주형 기자]

-20대 국회, ‘혈통(血通)정치’, '여전'

국회 안에는 국회 본청과 국회의원 회관 건물 등이 들어서 있다. 부지 한 귀퉁이에는 헌정기념관도 자리하고 있다. 기념관에 들어서면 한쪽 벽면에는 신익희 선생의 “서로의 주장이 다를수록 타협하고 절충해서 타협점을 찾든가 상대방의 동의를 얻어 일처리를 해야 한다. 이것이 (자유)민주주의”라는 발언이 소개돼 있다. 즉 상대와의 대화와 타협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정작 본회의장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상대 정당과의 갈등으로 국회는 연신 몸살을 앓고 있다. 불과 몇 걸음 떨어져 있지 않은 헌정기념관이 소개한 의회민주주의의 취지와는 전혀 다른 형국인 셈이다.

한편 국회의원들은 연일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서 날을 세우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모두 한두 다리 건너 알고 있는 지인이거나 혹은 오랜 시간에 걸쳐 함께해 온 동료다. 심지어는 가족의 연이 맺어진 경우도 허다하다. 동일 지역구에서 ‘중세시대의 영주’처럼 세대를 넘어 의원직을 하는 가문도 있다. 그야말로 ‘친·인척 혈통 정치’라는 말도 나돈다. 가깝게는 ‘친·인척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국회에서는 소통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 여론도 있어 유권자들로부터 외면받기도 한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가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71회국회(정기회) 제12차 본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뉴시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가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71회국회(정기회) 제12차 본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뉴시스]

‘친·인척 정치’로 바쁜 여의도 정가

국회 헌정기념관 1층 벽면 일부는 ‘가까운 관계’로 얽혀 있는 국회의원들이 소개돼 있다. 부자, 부부, 형제가 의원직을 거친 경우 등 전·현직 의원들을 볼 수 있게 돼 있다.

이들 가운데 3부자가 대통령에 이어 국회의원까지 한 경우가 먼저 눈에 띈다. 바로 故 김대중 대통령, 3선의 故 김홍일 새천년민주당 의원, 그리고 김홍업 민주당 의원이다. 김홍업 의원은 지난 2007년 상반기 재보궐 선거에서 당선돼 금배지를 달게 됐다. 바로 옆 명패에 등장하는 6선의 김무성 자유한국당 의원도 있다. 그의 아버지인 故 김용주 의원은 장면 정권 당시 민주당 국회의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

서울 종로구에서 내리 5선을 했던 정대철 새천년민주당 의원과 19대 국회의원이 된 정호준 민주통합당 의원도 있다. 물론 이들은 부자지간으로, 역시 같은 지역구에서 유권자의 표심을 얻어 부자 국회의원으로 이름을 알렸다. 1000마리의 소를 몰고 북한을 찾아갔던 현대그룹의 명예회장이자 창업자인 故 정주영 통일국민당 의원과 그의 여섯 번째 아들인 7선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도 명패에 이름을 올렸다.

경기도지사로 이름을 날렸던 남경필 전 지사도 그의 아버지인 故 남평우 신한국당 의원과 함께한다. 5선의 남 전 지사는 15대 총선 때 아버지가 있던 경기도 수원 팔달구에서 금배지를 달았다. 앞서 1998년 3월13일 심장 계통 질환으로 남 의원이 세상을 떠나자 그해 7월 치러진 재보궐선거에서 그의 장남 남 전 지사가 해당 선거구에 출마, 경기도 수원에서 내리 5선을 하는 기염을 토했다.

부산 금정구와 동래구 등에서 5선을 거친 故 김진재 한나라당 의원 역시 그의 아들인 3선 김세연 새누리당 의원(부산 금정구)과 함께 명패에 이름이 올랐다. 세대를 넘어 국회의원에 선출됐지만, 김 의원은 내년 총선 불출마의 뜻을 밝혔다.

한편 같은 지역구에서 당선된 부부 국회의원도 있다. 바로 故 김근태 3선 열린우리당 의원(서울 도봉갑)과 그의 부인 인재근 2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제헌 국회의 故 김종문 의원과 그의 손녀인 김현미 민주당 의원(現 국토부장관)도 함께 이름을 올렸다.

지난 4월26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의안과 앞에서 여야 의원을 비롯한 보좌진 및 당직자들이 선거제 개편안과 사법제도 개혁안의 패스트트랙 지정을 놓고 극한 대치 중이다. [뉴시스]
지난 4월26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의안과 앞에서 여야 의원을 비롯한 보좌진 및 당직자들이 선거제 개편안과 사법제도 개혁안의 패스트트랙 지정을 놓고 극한 대치 중이다. [뉴시스]

친·인척 넘은 인맥 정치…하지만 결국 혈통(血通) 정치

이처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친·인척 정치’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게다가 일부 의원들은 동문의 연을 맺고 있다. 서울대학교 82학번인 나경원 전 한국당 원내대표는 원희룡 제주도지사, 이혜훈 바른미래당 의원과 동문이다. ‘친·인척 혈통 정치’를 넘어 ‘동문 정치’도 엿보이지만, 정작 ‘불통’이라는 혹평은 피하지 못했다. 20대 마지막 국회에서마저 대화와 타협이 꼬리를 감춘 모양새가 됐기 때문이다.

장영수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국회선진화법의 취지는 합리적 대화와 토론을 통해 해결하자는 것으로, 정해진 기간 동안 상대방이 서로 충분히 대화하고 설득하는 것”이라며 “그런데 그동안 무슨 대화와 타협이 있었느냐”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20대 국회를 포함해 그동안 여야가 국민들에게 보인 모습은, 안건을 올려놓고서 날짜만 지나기를 바란 것 아니냐”며 꼬집었다.

장 교수에 따르면 패스트트랙(안건 신속처리제도)은 국회 선진화법에 의해 만들어다. 각종 물리적 충돌을 피해 합리적인 대화와 토론으로 해결하자는 것이 이 법의 취지다. 그는 예산안 처리와 선거법, 공수처 문제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장 교수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올해 있었던 몸싸움 등을 잘했다고 보는 건 아니지만, 여당이 더 큰 책임을 져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한 근거로 “법에 따라 (야당과의)합리적 토론을 통해 충분히 대화하고 설득하라는 취지에서 180일의 기간이 주어진 것인데 당최 무슨 대화를 한 건지 모르겠다”며 “이는 국회선진화법 취지에 맞게 운영되지 못한 것”이라고 질타했다.

조동근 명지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교수 또한 “어떤 대화나 토론을 통한 설득 없이 밀어붙이면 다 해결되느냐”며 ‘설득 부재’를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았다. 조 교수는 일요서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지난 10일, 자그마치 510조가 넘는 예산안을 야당을 빼놓고 통과시켰는데, 예산을 늘려서 나라살림이 나아지면 못할 게 뭐가 있겠느냐”며 “(예산안에 대해)논리적 대립과 공방을 거쳐야 하는데 그게 귀찮아서 건너뛰고 밀어붙이면 어떡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그는 예산안에 대해 “추정치인 세입을 고려해 고정치인 지출 계획을 만드는데, 이때 세입이 너무 적게 걷히면 고정치인 지출에 맞추느라 나랏빚이 과도하게 발생할 수 있다”면서 “예산 편성 시 세수가 부족한 상황을 알면서도 이렇게 만드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 교수는 이어 “세수와 세출 차이에서 나랏빚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논리적인 공방이 필수적인데 정작 설득 과정도 없이 무작정 건너 뛰어버린 것은 잘못된 행위”이라며 “나랏빚은 전부 국민 세금인데, 추후 재정상태가 악화되면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느냐”고 했다.

결국, 친·인척을 넘어 동문 정치, 인맥 정치도 ‘상대방과의 합리적 대화를 통한 토론과 설득 과정의 부재’라는 혹평을 피하지 못한 셈이다.

지난 12일 국회 로텐더홀의 모습. [뉴시스]
지난 12일 국회 로텐더홀의 모습.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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