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신인들, ‘자기 지갑 털어’ 총선 출마…“있는 자만 여의도 오라?”

[일요서울 | 강민정 기자] 최근 여의도를 중심으로 정계에 정치 신인이 영입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목소리와 달리 실제 정치 현장에 뛰어들기로 결단한 정치 신인들은 풀어야 할 숙제가 한두 개가 아니라며 고충을 토로한다. 현역 의원과 출발선부터 다르다는 입장이다. 이 가운데 지난 2004년 정치 선거 투명성을 위해 제정된 ‘오세훈법’이 재조명받고 있다. 불법 선거 자금 유입을 방지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이 법이 오히려 정치 신인들의 정계 입문 진입 장벽을 높이고 있다는 비판적인 시각이 제기되면서다.

 

선거의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해 지난 2004년 제정된 ‘오세훈법’이 오히려 정치 신인들에게 정계 진입 장벽을 높였다는 비판이 제기돼 눈길을 끌고 있다. [뉴시스]
선거의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해 지난 2004년 제정된 ‘오세훈법’이 오히려 정치 신인들에게 정계 진입 장벽을 높였다는 비판이 제기돼 눈길을 끌고 있다. [뉴시스]

-오세훈법, ‘선거 투명성 확립’ 긍정 평가…정치 신인 진입장벽 높여 놔
-‘금배지’ 有無 따라 ‘출발선’ 달라져…‘노회찬법’ 나왔지만 1년 넘게 ‘계류’

     

2004년 제정된 ‘오세훈법’은 우리나라 정치에서 정치자금 제도 관련해 큰 획을 그은 법안이다. 이 법이 제정되기 전까지는 법인·단체도 정치자금을 기부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를 악용하는 로비가 횡행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2002년 ‘한나라당 차떼기 사건’이다. 당시 한나라당은 대기업으로부터 총 823억 원 상당의 불법 선거 자금을 받은 사실이 적발돼 물의를 빚었다.

이를 방지하고 정치 자금의 투명성을 확립한다는 취지의 정치자금법·정당법·공직선거법 관련 개정안이 바로 ‘오세훈법’이다. 법안명은 추진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한 당시 한나라당 국회의원  오세훈 자유한국당 광진을 당협위원장의 이름에서 기인했다. 이 법은 불법 정치 선거 자금 통로이던 지구당을 폐지하고 법인·단체를 비롯해 이와 관련된 기관의 돈은 정치자금으로 기부할 수 없도록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발품’은 ‘홍보의 정석’, ‘출판기념회’ 열기도…

당시 오 위원장의 ‘돈 안 드는 투명한 선거 정착’이라는 발언은 절반의 정답이다. 이 법을 통해 대한민국 선거는 투명성을 확보했다. 하지만 ‘돈 안 드는’이라는 대목에는 물음표가 찍힌다. 정치 신인들의 경우 ‘내 돈 털어 쓰는’ 현상이 빚어지기 때문이다. 이는 곧 돈 없는 자는 정치권에 발을 디딜 수 없다는 말과도 같다. 오세훈법이 오히려 정치 신인들에게 높은 장벽이 됐다는 지적을 받는 이유다.

내년 4월 총선이 다가오면서 출마 출사표를 던진 정치 신인들은 일제히 “선거 준비 비용이 많이 든다”라고 토로했다. 활동에 필요한 자금은 모두 개인 주머니에서 나오는 형편이다.

경기 지역에 출마를 앞둔 A씨는 “오세훈법 등으로 인해 선거법이 까다로워지면서 (이전보다) 비용을 많이 들이지 않고도 선거에 임할 수 있는 분위기는 형성됐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다만 A씨는 “(선거 준비에) 비용이 많이 들어가 어려운 건 사실”이라며 “정치 신인들은 조직을 갖지 못하다 보니 대부분 자신의 돈으로 (선거 준비를) 한다”고 밝혔다.  

따라서 정치 신인들은 자신의 얼굴을 알리기 위해선 직접 부딪치는 수밖에 없다. 이들의 홍보는 주로 지역 행사장 방문, 활발한 SNS 활동 등 지역 주민과 소통하면서 발품을 파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지역민과의 활발한 소통을 통해 유대감을 형성하고 많은 비용도 소요되지 않아 정치 신인들에게는 ‘홍보의 정석’으로 여겨진다.

또 다른 홍보 방편으로는 출판기념회가 꼽힌다. 출판기념회는 책 발행 등 ‘초기 투자금’은 들지만 방문한 지인들이 서적을 구매해 주기 때문에 소정의 자금 마련에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다는 설명이다. 이 밖에도 지역 사무실 개소식 등으로 홍보를 하는 이도 있다.

“물갈이 하자”는데…높은 ‘여의도의 벽’

오세훈법으로 인해 ‘현역의원 프리미엄’이 생겨났다는 지적도 있다. 오세훈법에 따르면 개인 후원은 현역 국회의원만 받을 수 있다. 이마저도 상한액을 연간 1억5000만 원으로 제한했다(선거가 있는 해에는 3억 원까지 가능하다). 

하지만 현역 의원은 비교적 사정이 나은 편이다. 원외 정치인일 경우 개인 후원을 일절 받을 수 없다. 이후 총선 전 예비후보 자격이 주어졌을 때 후원금 모금이 가능하게 된다. 다만 상한액은 1억5000만 원으로 현역 국회의원의 절반이다. 즉, ‘금배지’를 달지 못한 원외 인사라면 정치 활동에 있어 더더욱 발이 묶이는 상황이 빚어진다는 시각이다.

천안 지역에서 출마 채비를 하고 있는 박양숙 전 서울시 정무수석은 “오세훈법이 제정된 기본적인 이유는 예전에 워낙 (선거철이 되면) ‘검은 돈’이 많았기 때문에, 이를 막고 (선거를) 투명하게 하자고 한 것”이라고 발의 배경에 공감했다. 다만 박 전 수석은 “이 제도의 운영 과정에서 정치 기득권층은 유리한데, 비기득권층은 조건을 활용할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출발선 자체가 평등하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오세훈법이 정당한 정치자금 통로마저도 과도하게 제한한다고 꼬집었다. 선거 자금의 투명성이 어느 정도 확립됐으니, 정치 신인 및 원외 정치인들의 활동 제약을 완화하자는 주장이다.

이를 보강한 것이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노회찬법’(‘정당법 일부개정법률안’)이다. 우 의원은 개정안에서 후원회를 둘 수 있는 국회의원과 그렇지 않은 비현역 정치인 간의 정치자금 형평성 문제를 지적하면서 오세훈법에서 폐지됐던 지구당을 다시 복원하자고 제안했다. 또 지구당 유급사무원을 2명 이내에서는 고용 가능하도록 했다. 법안 개정을 통해 변화하는 세태를 반영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박 전 수석은 “(오세훈법이) 실제 현장 상황을 고려하지 못한 측면은 있다”며 “지금 지역에서는 원내 소속은 아니지만 (출마를 위해)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 그런데 합법적인 자금 통로도 막아버리면 또다시 (자금 경로가) 음성화되거나 편법을 쓰게 될 수 있다”고 우려를 드러냈다. 그러면서 “원외에서 활동하더라도 합법적인 선거 모금은 가능케 하고, 이에 대한 투명성을 검증하도록 하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고(故)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정치 자금과 관련해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하면서 국회 차원에서도 정치자금법 개정에 관해 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우 의원의 개정안 역시 이 같은 배경에서 발의된 것이다. 그러나 이 법안은 1년을 훌쩍 넘긴 지금까지도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 계류된 상태다. 여의도 안팎에서 ‘물갈이’를 해야 한다는 요구가 들끓고 있지만, 실상 여의도의 담장은 정치 신인들에게 높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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