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비장(秘藏)의 카드를 뽑아들었다. 직전 국회의장인 정세균 의원을 국무총리로 지명한 것이다.

사실 정세균 국무총리 지명자는 비장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잘 알려진 국무총리 카드였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할 때에는 현직 국회의장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현재는 직전 국회의장이기 때문에 국무총리로 지명될 수 있을지, 지명하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논란이 있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정세균 의원을 국무총리로 지명한 것은 그만큼 절실했기 때문이다. 21대 총선을 4개월 앞둔 시기, 집권 후반기를 안정적으로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모든 논란을 뒤로하고 정세균 국무총리가 필요했다는 얘기다.

정세균 의원이 국무총리 지명을 받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필자가 보는 관점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그는 탁월한 정무감각의 소유자다.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의해 발탁되어 정치권에 입문한 그는, 1996년 처음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래 6선 국회의원으로 야당 국회의원, 여당 국회의원, 여당 원내대표, 여당 당대표, 야당 당대표, 야당 출신 국회의장, 여당 출신 국회의장 등 다양한 정치경험을 했다.

때로는 야당의 편에서 때로는 여당의 편에서, 때로는 정당의 입장에서 때로는 국회의 입장에서 카멜레온보다 더 빠르게 변화하는 한국정치의 중심에 늘 그가 있었다. 그의 탁월한 정무감각은 그렇게 해서 완성되었다. 그가 국무총리로 지명 받은 뒤 국민통합과 협치의 정치를 강조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둘째, 그는 폭넓고 유연한 정책 능력의 소유자이다. 고려대학교 졸업 후 쌍용그룹에 입사한 그는 수출역군으로 대한민국 산업화의 일익을 담당하였다. 국회의원이 되어서는 당의 정책위의장과 원내대표를 거치면서 정책을 법률과 예산으로 외화 시키는 데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

20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으로 재임 중에는 여소야대, 탄핵정국, 대선정국을 거치면서도 역대 어느 국회의장 재임 시보다도 많은 법안들이 가결될 수 있도록 정치력을 발휘했다. 식물국회를 넘어 다시금 동물국회가 되어버린 20대 후반기 국회를 보면 과연 2년 전과 같은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국회인지 의심을 갖는 것도 무리는 아닌 듯 싶다.

셋째, 그는 다른 어떤 정치인들보다 상황에 대한 이해가 빠르고, 그것보다 더 빠른 상황적응능력을 가지고 있다. 어찌 보면 임기응변에 능하다고 비판받을 수도 있지만, 언제든지 협상할 수 있는 열린 정치인이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는 다른 어떤 정치인들과도 차별화되는 부분이며, 그만이 가진 장점이기도 하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정세균 국무총리 카드에 18일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정세균 전 의장의 총리 임명으로 입법부를 행정부의 시녀로 전락시키고 말았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누구나가 예측 가능한 얘기를 제1야당 대표가 흥분된 어조로 말해 버렸다. 전략적 고려, 정무적 판단, 당사자에 대한 분석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건조한 언어의 선택이다. 제1야당의 현주소다.

문재인 대통령은 정세균 국무총리 지명으로 진검승부에 나섰다. 정세균 지명자는 내년 총선이 공정하도록 야당을 최대한 배려할 것이다. 그런데 야당은 정세균 지명자를 적으로 단정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정세균에 대한 분석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정세균이 가진 강점은 상황적응 능력이 매우 빠르다는 것이다. 국무총리 청문회가 곧 이루어지겠지만 자유한국당이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 국정주도권도 잃고, 총선에서도 패하고, 당도 파편화되는 길이 더 앞당겨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정세균은 양날의 검이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