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후보 등록은 이미 시작, ‘게임의 룰’은 여전히 안갯속

[일요서울 | 강하늘 기자] 내년 4월에 치르는 제21대 총선을 앞두고 지난 17일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다. 본게임을 향한 예비 총성이 울렸음에도 여야 간의 선거법 개정 협상은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각 정당의 이해관계가 실타래처럼 얽혀 이전투구 양상까지 보이며 ‘게임의 룰’은 아직도 안갯속이다. 자유한국당은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오른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한 선거법 개정을 결사 저지하겠다는 입장이고, 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 정의당, 민주평화당, 대안신당 등 ‘4+1’ 협의체는 한국당을 제외하고 선거법 단일안 마련을 시도했지만 연거푸 실패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정치권 안팎에서는 선거법 개정이 무산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특히 기존 선거법 유지가 의석수 확보에 유리한 민주당과 한국당, 거대 양당이 연동형 비례제 통과 무산을 위해 묵시적 합의를 한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거론된다.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인영(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이해찬 당대표 [뉴시스]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인영(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이해찬 당대표 [뉴시스]

-한국당 연비제 결사 저지? ‘4+1’ 합의까지 난항, 선거법 좌초 위기

현재 정치권에서 펼쳐지고 있는 선거법 개정을 둘러싼 여야의 줄다리기는 그야말로 ‘밥그릇 싸움’이다. 검찰개혁법안들과 함께 패스트트랙에 올랐던 선거법 개정안은 지난달 27일 국회 본회의에 부의된 상태다. 본회의에 부의된 ‘심상정안’은 전체 의석수를 300석으로 하되, 지역구 의석을 현행 253석에서 225석으로, 비례대표 의석을 47석에서 75석으로, 연동률 50%의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적용이 핵심 골자다.

그러나 ‘4+1 협의체’에서 절충안이 논의되고 있다. 현실적으로 지역구를 28석 줄일 경우 각 당 지역구 의원들과 호남지역 지역구 축소를 우려한 평화당과 대안신당에서 이탈표가 나와 부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한국당의 협상을 이끌어내기 위한 의도도 있다. 

‘선거법’ 석패율제 발목 잡혀, 민주당 반대 왜…

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최근 연동형 비례제 철회 등을 요구하며 단식 농성까지 벌일 정도로 결사 저지 입장을 밝히면서 선거법 협상이 전혀 진척을 이루지 못하자 ‘4+1 협의체’는 한국당을 제외하고 협상을 벌여 왔다. 그러나 민주당과 군소 야당은 크게 비례대표 의석 중 일부에만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연동률 50%)를 적용하는 연동형 ‘캡’(cap)과 석패율제 도입을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민주당을 제외한 바른미래당 손학규·정의당 심상정·평화당 정동영 대표와 대안신당 유성엽 창당준비위원장은 지난 18일 연동형 캡(cap) 30석 한시적 적용, 석패율제 도입 등 합의 사항을 발표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의원총회를 열고 토론한 끝에 석패율제 도입은 재고해 달라며 사실상 거부했다. 이들의 선거법 협상은 ‘석패율제 도입’ 문제를 놓고 발목이 묶인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석패율제란 지역구 투표에서 아깝게 떨어진 후보자를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당선시키는 제도다. 일각에서는 석패율제가 지난 4월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가 합의한 선거법 개정안에도 들어가 있음에도 민주당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반대하고 나섰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문재인 대통령뿐 아니라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도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석패율제 도입을 주장했음에도 민주당이 거부하고 나서면서 선거제 개혁을 막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민주당은 비례대표 의석수가 선거법 개정안 원안의 75석에서 50석으로 줄어드는 상황에서 석패율제까지 도입할 경우 다양한 분야의 인재를 비례대표로 발탁할 기회가 줄어들고, 석패율제가 중진 의원 부활용으로 오용될 소지가 있다는 점을 반대 이유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근본 원인은 석패율제가 민주당에 불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전체 비례대표 수가 줄어 민주당이 가져갈 비례대표 수가 크게 감소하고 수도권 같은 박빙 지역에서 민주당 후보의 당선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위기감 등이 원인이 됐다는 분석이다. 

석패율이 도입되면 1등을 하지 않더라도 당선되는 길이 열리기 때문에 군소 정당 후보들이 끝까지 총력을 펼쳐 선거를 완주할 가능성이 높고, 그렇게 되면 후보단일화도 어려워져 여권 표가 분산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당은 만일 연동형 비례대표를 밀어붙인다면 ‘비례한국당’을 만들 수밖에 없다(심재철 원내대표)고 공개적으로 ‘위성 정당’ 등장 가능성을 시사하고 나섰다. 한국당은 지역구에만 후보를 내고, 비례한국당을 만들어 비례대표 의석 확보를 노리겠다는 것이다. 한국당의 ‘비례한국당’ 카드가 현실화된다면 연동형 비례제 도입의 취지가 왜곡된다는 거센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심재철(왼)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황교안 당대표 [뉴시스]
심재철(왼)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황교안 당대표 [뉴시스]

현 선거제 유리 ‘민주-한국’, ‘무산’ 묵시적 동의?

이처럼 선거법 개정을 둘러싼 여야의 줄다리기가 ‘4+1 협의체 대 한국당’ ‘민주당 대 군소 야당’으로 복잡하게 얽혀 진행되면서 선거법 처리가 연말이나 최악의 경우 해를 넘길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협상이 장기화되고 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 선거법 개정안 원안이 상정되면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 무산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거론된다. 선거법 원안은 지역구 축소 폭이 커 상정된다고 하더라도 대거 반대표가 나와 부결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에서는 합의가 끝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선거법 원안을 상정해 표결하겠다는 입장까지 나왔고, 이에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지난 16일 “민주당은 한국당과의 협상 카드를 밀고 ‘4+1’ 협상이 뜻대로 안 되면 원안을 상정해 부결돼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압박하고 있다”며 “개혁을 원하는 국민에 대한 협박”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민주당으로서는 사실 선거법 개정에 사생결단식으로 모든 것을 걸어야 할 절박한 이유가 없다. 내심 거대 양당인 민주당과 한국당에 유리한 현행 선거제도를 바꾸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고 볼 수도 있다. 이에 민주당은 당초 연동형 비례제 도입에 소극적이었으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등 검찰개혁법 처리를 위한 군소 야당의 협조를 이끌어내기 위해 협상에 뛰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민주당에게는 연동형 비례제 도입이 무산돼도 손해볼 것이 없다는 속내가 깔려 있어 선거법 협상이 진척을 이루지 못한다는 해석도 있다. 현행 선거제가 민주당에 유리하고 ‘1여 다야’ 구도로 총선을 치르는 것도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민주당 한 의원 측은 20일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선거법 개정이 무산됐을 때 민주당이 큰 실패를 보게 된다거나 불이익을 얻게 된다거나 하는 사안은 냉정하게 아니기 때문에 의원들이 연동형 비례제 도입이 무산된다고 해도 상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선거법 개정이 좌초될 경우 공수처 등 검찰개혁 법안 처리에 대한 군소정당의 협조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민주당은 군소정당이 검찰개혁이라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연동형 비례제 도입이 무산됐다고 해서 반대에 나선다면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에 협조할 수밖에 없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가 지난 19일 당초 합의와 다르게 패스트트랙 법안 가운데 선거제 개혁법보다 검찰개혁 법안을 먼저 처리하자고 ‘4+1’ 협의체에 제안하자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는 “웃기는 얘기들 하지 말라”고 단번에 거부하기도 했다. 군소야당은 검찰개혁 법안을 먼저 처리할 경우 선거법 처리의 동력이 상실될 것을 강하게 우려하고 있다. 

한국당도 현행 선거제가 유리하기 때문에 연동형 비례제 저지에 사활을 걸고 있다는 점에서 민주당과 한국당이 묵시적 합의를 통해 선거법 개정을 무산시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도 존재한다. 한국당으로서는 현행 선거제도가 유지돼야 보수통합 추진도 가능하게 된다. 

이에 한국당은 민주당이 ‘4+1’의 선거법 수정안 도출이 불발된 뒤 ‘원안 상정’ 가능성을 밝히자 이 틈을 파고들어 심재철 원내대표가 지난 16일 “(선거법을) 원안대로 (상정)한다면 무기명 투표도 검토해볼 수 있다”고 밝혔다.   

연비제 도입, 野 보수통합 요원, 與 군소정당 우군화 

그러나 막판 극적으로 민주당과 군소 야당이 선거법 합의안을 도출해 본회의 처리를 밀어붙일 가능성도 여전하다. 연동형 비례제가 도입될 경우 민주당은 국회에 진입한 진보진영 군소정당을 우군으로 확보해 문재인정부 후반기 국정운영의 동력으로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우여곡절 끝에 선거법이 개정될 경우 보수통합은 사실상 물 건너간다. 군소정당에 유리한 연동형 비례제를 발판 삼아 보수 성향의 신당 추진 세력들이 독자 생존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현재 보수진영에는 강경 친박인 우리공화당이 존재하고 있고, 유승민 의원을 주축으로 한 바른미래당 비당권파 모임 ‘변화와 혁신’(변혁) 의원들이 중심이 된 ‘새로운보수당’, 이언주 무소속 의원이 주도하는 ‘보수 4.0’, 무소속 이정현 의원 등이 신당 창당을 준비하고 있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거대 정당에게 유리한 현행 선거법으로 지난 총선에서 가장 혜택을 봤던 것이 민주당이었다. 민주당은 현행으로 가도 손해볼 것이 없기 때문에 급할 것이 없다”며 “현행 선거제로 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민주당과 군소 야당들이 가 보지 않은 길을 많이 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상황이 바뀔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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