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국민청원 게시판…대한민국 판 소통의 장으로

[일요서울ㅣ조주형 기자]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 정당 해산을 요구하는 청원이 등장했다. 집권 여당과 제1야당에 대한 해산 심판 청원으로, 청원이 접수된 지 불과 수일 만에 수십만 명을 거뜬히 넘겼다. 여야 대립 구도가 청와대 청원 게시판으로 옮아간 모양새가 됐다. 하지만 청와대는 정당에 대한 평가는 선거를 통해 할 수 있다면서 그 몫을 국민에게 돌린다고 답했다. 애초에 답변 자체가 불가능한 사안이기도 했다. 정당 해산은 헌법재판소 소관이기 때문이다. 결국 청원 게시판은 ‘스트레스 해소의 장’이라는 오명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은 오늘도 새로운 청원을 기다리고 있다. 2019년 국민청원 게시판을 달군 핫이슈를 알아봤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7년 5월9일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서울 세종로공원에서 열린 광화문 인사에서 지지자들 연호에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7년 5월9일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서울 세종로공원에서 열린 광화문 인사에서 지지자들 연호에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 정당 해산 청원까지 등장…다수 ‘독재’인가 ‘한풀이’ 성토장인가

청와대의 국민 청원게시판의 정치적 기능에 대해 알아보고자 지난 19일 신율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를 서울 서대문구에서 만났다. 이날 그는 ‘알로! 프레시덴테(헬로! 프레지던트)’라는 TV 시사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그에 따르면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1주 단위로 휴일마다 ‘알로! 프레시덴테’에 출연, 주인공으로 활동한 바 있다.

그는 혼자 나오지 않았다. 장관을 비롯한 내각의 고위 관료들도 출연했다. 대담 소재도 외교와 정무에 이어 개인사까지 확대됐다. 심지어는 과거사 책임 등에 대해서 장관이나 참모에게 목청을 높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래도 당시 국민들은 차베스 대통령의 ‘소통’ 행보에 열렬히 환영했다.

신 교수는 청와대의 국민 청원게시판도 차베스 대통령의 ‘알로!프레시덴테’처럼 국민들의 ‘한풀이’ 역할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청와대의 ‘한풀이’성 국민 청원 게시판 위의 모든 안건이 해결 가능한지는 알 수 없지만, 그나마 ‘여론의 환기구’ 기능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집권층이 실시간 여론을 읽을 수 있는 ‘지표’가 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앞서 김병관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김세연 자유한국당 의원이 주최하고 국회입법조사처 등이 주관한 '지능정보시대의 민주주의 정책세미나' 자료 등에 따르면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는 문재인 정부 집권 후 약 43만여 건이 올라온 것으로 알려졌다. 월평균 1만 5000개 가량인 셈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100일인 지난 2017년 8월17일부터 시작된 청와대 국민청원은 인터넷에 청원인이 직접 작성한 청원에 대해 30일간 동의를 20만 건 받으면 이에 대해 청와대가 의무적으로 답변해야 한다.

지난달까지 약 43만여 건의 국민 청원 중 130여 개가 20만 건 이상 동의를 받았다. 청와대 국민 청원 중 최다 주제는 단연코 ‘정치개혁’ 분야였다. 정치개혁 관련 청원은 약 15% 이상으로 집계됐다.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 캡처.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 캡처.

靑 게시판, 정당 해산부터 대통령 탄핵까지 나와

올해 가장 많은 동의를 받은 5개 청원 가운데 ‘일부 정당 해산 청원’이 최다 동의를 받은 것으로 집계됐다. 이어 특정 후보자의 장관 임명 요청안, 기관장 처벌 요구안, 정당 의원에 대한 특검 요청안 순으로 게재됐다.

우선 ‘자유한국당 정당 해산 청원’은 지난 4월22일 청원이 접수돼 183만 1900명이 동의에 참여했다. 청원 접수자는 “막대한 세비를 받는 국회의원으로 구성됐음에도 걸핏하면 장외 투쟁과 입법 발목잡기를 한다”면서 “소방예산의 삭감으로 국민 안전을 심각하게 만들고 정부가 국민을 위한 정책을 시행하지 못하도록 사사건건 방해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간 한국당의 잘못된 점을 철저히 조사 기록해 정당해산 청구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면서 “통합진보당에 대한 해산 판례가 있다”고도 전했다. 정당 해산과 관련한 청원은 한국당에 이어 민주당도 피하지 못했다. 한국당 해산 청원일로부터 7일 후 접수됐으며 33만7964명이 민주당 해산 청구에 동의했다.

청원인은 “선거법은 국회합의가 원칙인데 제1야당을 제쳐두고 공수처법을 패스트트랙에 함께 지정해 물리적 충돌을 가져왔다”며 “야당을 겁박해 이익을 도모했고 국가보안법 개정을 운운해 국민 안전을 심각하게 했다”고 밝혔다. 역시 ‘통진당 해산’이 언급됐다.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은 양당에 대한 해산 청구 청원에 대해 “헌법8조 제4항에서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 정부는 헌법재판소에 해산을 제소할 수 있고, 정당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해산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이어 “정당에 대한 평가는 주권자인 국민의 몫이라고 생각한다”며 “주권자인 국민의 몫으로 돌려드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즉, 정당해산은 불가능하다고 답변한 것이다.

그 뒤를 이어 75만 7730명, 48만 1076명이 동의한 청원은 각각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 임명 촉구’와 ‘윤석열 검찰총장 처벌’ 안건이다. 바로 현 정부의 ‘검찰 손보기’의 적격자가 당시 조국 전 민정수석이므로 그를 임명해야 한다는 안건이다.

청원자는 당시 조 전 민정수석의 법무부장관 임명의 당위성을 설명하며 “간청드린다. 조국은 국민이 지킨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월9일 청와대 본관에서 당시 조국 신임 법무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후 악수하고 있다.[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월9일 청와대 본관에서 당시 조국 신임 법무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후 악수하고 있다.[뉴시스]

강정수 청와대 디지털소통센터장은 이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절차적 요건을 모두 갖춘 상태에서 본인이 책임져야 할 명백한 위법 행위가 확인되지 않았는데 의혹만으로 임명하지 않는다면 나쁜 선례가 된다’고 말했다”고 답변했다. 그러면서 “국정운영에 반영할 것”이라고 끝맺은 바 있다. 이후 당시 조 전 민정수석은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됐지만 두 달 만에 사퇴했다.

윤 총장 처벌 요구 청원인에 따르면 압수수색에서 나온 정보를 윤 총장이 특정언론에 전달했다며 ‘조국의 적이라는 게 명백해졌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청원인은 “수사기밀 누설은 중대 범죄”라며 “윤 총장을 공무상 비밀 누설죄로 처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하지만 김광진 청와대 정무비서관은 “수사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답변했다. 또한 그는 당시 제1야당 원내대표였던 ‘나경원 한국당 의원의 각종 의혹에 대한 특검(36만 40명 동의)’ 청원에 대해서도 “특검 도입 여부는 국회에서 결정할 사안”이라며 선을 긋기도 했다.

앞서 최근 강대 강 구도의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하고 있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에 대해서도 지난 1월7일 30만 명이 동의했다. 당시 조국 전 민정수석은 “공수처는 다르다”며 설치 당위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국회가 답할 차례”라고 거듭 강조했다.

한편 지난 4월30일 ‘문재인 대통령 탄핵 청원’ 안건도 등장했다. 해당 청원인은 청원 이유에 대해 “북한 핵(核) 개발을 방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군 대비태세를 해이하게 했다. 인권변호사라고 하지만 북한 독재 정권의 불법 고문 등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못한다”며 “북한산 석탄을 몰래 들여오는 등 우리만 대북제재에 어긋나게 행동한다”고 조목조목 이유를 제시했다.

이어 “드루킹 일당 등 불법 여론조작, 국가정보원 해체” 등을 이유로 들기도 했다. 무려 25만219명이나 동의했지만, 정혜승 청와대 디지털소통센터장은 “국민의 힘으로 탄생한 정부”라며 “국회의 소추 의결로 헌법재판소가 결정할 사안”이라고 답변했다.

또한 각각 21만344명, 1만3855명이 동의를 표한 국민 소환제와 전자 개표식의 수 개표식 선거개표제 변경 청원이 있었다. 외국인 정책 변경을 요구하는 청원도 1만2114명이 동의했다.

김의겸 당시 청와대 대변인이 지난 지난해 7월20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계엄령 문건'의 관련 자료를 취재진에게 공개하고 있다. [뉴시스]
김의겸 당시 청와대 대변인이 지난 지난해 7월20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계엄령 문건'의 관련 자료를 취재진에게 공개하고 있다. [뉴시스]

靑 국민 청원, 오히려 다수 횡포 조장하나

靑 국민청원 게시판이 수십만 명의 청원 동의로 가득하지만, 정작 게시판의 존재는 법적 근거가 빈약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즉 정당성이 없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장영수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19일 연구실에서 일요서울 기자를 만나 “다수(多數)에 의한 독재, 다수(多數)에 의한 횡포를 막고자 삼권분립(三權分立) 제도를 마련했는데 (靑 국민 청원 게시판이) 그 근간을 흔들 수도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靑 국민 청원 게시판과 관련, 장 교수는 ‘청원권’은 ‘청원법’에 따라야 한다며 적법한 청원인지 불명확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국민청원법 등에 따르면 청원은 청원인이 서명한 ‘문서’ 등으로 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장 교수는 바로 이 점을 들어 현재의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은 인터넷 홈페이지 게시판인데 현행 법령에 따른 적법한 ‘청원’이 될 수 있느냐며 반문했다. 즉, 인터넷 청원 게시판의 존재가 현행법에 어긋날 수도 있다는 셈이다.

특히 장 교수는 청와대 국민 청원의 범위 자체가 설정돼 있지 않아 삼권분립(三權分立)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대통령은 국가원수지만 행정부의 수장”이라며 “국회와 관련된 사항, 사법수와 관련한 사항에 대해서는 권한이 없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그는 “당초 권한 자체가 없는 상황에서 행정부 수장이 분리된 2개 부(사법부, 입법부)와 관련한 청원을 받는 것 자체가 제왕적 대통령이라고 스스로 공인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 캡처.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 캡처.

앞서 제시된 ‘정당 해산’의 경우, 다양한 의견을 헌법을 통해 정당으로 허용되는 입법부와 사법부 소관의 경우이기 때문에 청와대가 삼권분립을 지키기 위해서는 우선 나서서 제한했어야 했다고 장 교수는 설명했다.

그런데 오히려 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고 공개하는 것은 ‘법치(法治)’라는 골격을 가진 시스템인 삼권분립(三權分立)에 위해를 가하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고도 말했다. 이럴 경우 “행정부의 소관이 아닌 청원 안건에 대해 마치 입법부 혹은 사법부에 처리하라고 ‘지시’하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국민 청원의 후속조치 문제에 앞서 답변의 기준 자체도 법적으로 정체가 불명확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즉, 청와대에 접수된 청원에 대해 ‘20만 명 이상이 동의를 표했을 때’ 답변한다는 것 자체도 기준이 불명확하다는 것이다. ‘청원법’에 따르면 단 한 명의 국민이라도 청원법에 따라 청원을 제출했을 경우 행정부는 성실하게 답변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청와대가 제시한 ‘20만 명 이상’이라는 기준은 청원법에 따르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靑 국민 청원은 구체적인 권한 범위, 후속처리 등이 불명확하다는 모순에 처한다는 것이다.

결국 靑 국민 청원 게시판은 손봐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당초 ‘국민과의 소통’이라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하더라도 야금야금 ‘삼권분립(三權分立)’의 원리를 무너뜨린다면 언제든지 ‘다수 독재’의 맹아(萌芽)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2017년 5월 10일 '혁신과통합발족식'에서 '통합' 이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는 모습. [뉴시스]
당시 문재인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2017년 5월 10일 '혁신과통합발족식'에서 '통합' 이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는 모습.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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