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경영 소장
엄경영 소장

정세균 의원이 국무총리에 지명되면서 범여권 차기 구도가 지각변동을 앞두고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6개월째 독주를 이어가면서 여권 차기 레이스가 싱겁게 끝날 수도 있다는 여론이 형성되던 차다. 정 지명자는 오래전부터 여권 잠룡으로 평가받았지만 ‘잘 뜨지 않는’ 정치인이다. 문 대통령도 과거 정 지명자의 ‘저평가’에 안타까움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지명자의 최대 장점은 당내 최대 계파 리더라는 점이다. 문 대통령 당선 이후 민주당은 계파색이 상당히 옅어졌지만 ‘정세균계’는 여전히 건재하다. 당초 국무총리가 유력했던 김진표 의원,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 전병헌 전 청와대 정무수석, 김교흥 의원 등이 오르내린다. 당내 경선에서 힘을 쓸 수 있는 조직력을 갖춘 셈이다.

정 지명자가 친노, 혹은 친문과 상대적으로 가까운 점도 장점이다. 지금 여권에선 문 대통령 적통을 이어받을 마땅한 주자가 없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불출마를 선언했다. 김경수 경남지사는 ‘드루킹 사건’에 연루 재판 중이다. 게다가 김기현 전 울산시장 ‘하명 수사’ 사건에도 이름이 등장하고 있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도 사법처리 위기를 맞고 있다. 딱히 후계자가 없는 여건에서 정 지명자가 등장했다.

경제와 중도 이미지도 정 지명자에겐 좋은 기회다. 그는 20여년 가까이 경제 현장을 경험했다. 국회 입문 후에도 경제정책, 예산 전문가로 활동했다. 노무현 정부에선 산업자원부장관을 역임하기도 했다. 경제 분야가 아킬레스건으로 종종 지적되는 민주당에선 희소성을 갖춘 셈이다. 이런 경제 이미지는 중도 확장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정 지명자의 기회는 점점 커질 수 있다.

문 대통령 입장에서도 정 지명자의 부각은 좋은 카드가 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이미 임기 반환점을 돌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국정동력의 약화는 불가피하다. 총선을 거치면서 민주당과 차기 주자 중심으로 새로운 권력지형이 형성될 수밖에 없다. 이 총리의 독주는 부담이 될 수 있다. 정 지명자가 부상해서 경쟁구도가 되는 것은 문 대통령에게도, 여권에게도 나쁘지 않다.

6개월째 1위인 이 총리도 약점은 있다. 이 총리는 20대에서 유난히 약하다. 여론조사마다 다르긴 하지만 대략 10%대 초중반에 그치고 있다. 이 총리의 대세론을 논하긴 이르다는 얘기다. 호남 후보의 한계도 종종 지적된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도 상당한 우군을 확보하고 있지만 고정됐다고 보기 힘들다.

이 총리의 약점은 정 지명자에게 곧 기회다. 문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은 2040이다. 국정운영 투톱이 될 정 지명자에겐 젊은층에서 인지도 상승할 절호의 기회다. 그는 호남을 떠나 종로에서 당선해 지역색깔을 완화하기도 했다. 이 총리와 지역 기반과 민주당 지지층에선 중복되는 만큼 정 지명자가 공략하기에는 한층 수월하다.

정 지명자는 권력의지도 매우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2012년 자의 반 타의 반 고향을 떠나 승리가 불확실한 종로에 출마하기도 했다. 2016년 총선 공천에서 정세균계는 당내 견제로 쓴맛을 보기도 했다. 정 지명자가 총리를 발판으로 민주당의 대권 후보도 거머쥘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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