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팔아야 하냐” “대출 못 받느냐” 문의 쇄도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뉴시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뉴시스]

[일요서울 | 황기현 기자] ‘부동산’ 혹은 ‘집값’은 과거부터 모든 정부가 해결하기 위해 힘을 쏟았던 한국 사회의 대표적인 문제 중 하나다. 하지만 역대 정부들의 대책에도 집값은 해가 지날수록 끝을 모른 채 올라가고 있다. 오죽하면 요즘 20~30대 청년들 사이에서는 ‘평생 일해도 어차피 내 집 못 산다’는 자조적인 목소리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내 집 마련을 포기하는 사람도 계속 늘고 있는 가운데, 문재인 정부가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을 잡기 위해 부동산 대책을 내놨다. 이번 대책에 대한 현장의 반응은 과연 어땠을까.

- “서민들은 서울 들어올 생각하지 말라는 것”
- “대책 나올 때마다 강남이 확실한 투자처라고 알려주는 거 같다”


정부가 발표한 ‘12·16 부동산 대책’의 골자는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에서 시가 15억 원 이상 아파트를 구입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전면 금지하는 내용이다. 또 오는 23일부터는 9억 원을 넘는 주택을 구입하면 9억 원 초과 부분에 대해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이 이전 40%에서 20%로 낮아지는 등 대출금이 적어진다.

이 외에도 ▲종합부동산 세율 최대 0.8% 인상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 내 1주택 세대는 1년 내 기존주택 처분 조건, 무주택 세대는 1년 내 전입하는 조건으로 9억 초과 주택담보대출 가능 ▲공시가격 현실화(9~15억 원의 경우 70%, 15~30억 원 75%, 30억 원 이상인 경우 80%) ▲분양가 상한제 추가지정(서울 13개구 전 지역, 과천, 하남, 광명 등) ▲청약 1순위 자격 당해 거주기간을 1년->2년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 내 주택 당첨 시 10년간, 조정지역은 7년간 재당첨 금지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그러면서 정부는 실수요자를 위한 공급 확대 방안으로 서울 도심 부지 4만 가구에 패스트트랙을 적용, 사업 승인을 하는 등 도심 내 공급을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고 설명했다. ‘가로주택정비사업’과 ‘준공업지역 사업’을 활성화해 서울 지역 주택 공급을 늘리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가로주택정비사업’이 임대주택 건설 등 공공성 요건을 충족할 경우 투기과열지구에서도 가로구역과 사업시행 면적을 10000㎡에서 20000㎡까지 확대하는 것을 허용함과 동시에 분양가상한제도 적용하지 않도록 했다.

공인중개업소 “불만·문의 전화 잇따라”

서민의 내 집 마련을 위한 대책이라고 하지만 막상 대책의 대상자가 되는 시민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서울 집값이 폭등한 상태에서 대출마저 막아버린 탓에 내 집을 사겠다는 희망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얼마 전 결혼한 직장인 장모(32·남)씨는 대출을 받아 집을 사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지만 반 포기 상태라고 호소했다. 그는 “자녀 계획이 있어서 대출을 끼고 조금 괜찮은 집을 사려고 했다”면서 “그런데 대출 길이 막혀 버렸으니 자녀 계획을 포기해야 하나 싶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직장인 A씨 역시 “결국 서울에 집 사고 싶어 하는 사람들 대출을 막아버렸다”라면서 “2년 사이에 5~6억 원 하던 서울 집값이 지금 8~9억 원이다.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서는 대출을 막아버리다니”라고 비판했다. “현금 부자들만 집 살 수 있겠다” “소시민들 서울 입성은 이제 더 힘들어지겠다”라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부동산도 상황은 비슷했다. 서울 도봉구의 공인중개사 B씨는 “정부가 15억 원 이상 아파트를 ‘초고가 아파트’로 규정했다”라면서 “현재 서울 아파트 시세를 고려하면 너무 작은 금액을 책정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2019년 현재 서울 전체 아파트 125만1791가구 중 대출이 아예 안 되는 15억 원 이상 아파트는 15.7%에 해당하는 19만6201가구다. ‘강남 3구’로 불리는 강남구(70.9%)와 서초구(67.4%), 송파구(46.7%)의 비율이 높지만 용산구(36.8%)나 마포구(6%)에도 ‘초고가 아파트’가 상당수 분포돼 있다.

대출금 액수가 줄어드는 9억 원 초과 아파트의 경우 45만8778 가구로 서울 전체 아파트의 36.6%에 달한다. B씨는 “기존 LTV 비율로도 아파트 구입 자금을 마련하기 쉽지 않았다”라며 “새 집 마련을 준비하던 실수요자들이 피해를 받을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혼란이 커진 것은 실수요자뿐만이 아니다.

서울 강남구에서 공인중개업소를 운영하는 C씨는 “부동산 대책 발표 후 정신이 없다”며 “하루에도 집을 팔아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묻는 고객들의 전화가 수십 통씩 걸려온다. 대부분 다주택자들이 양도소득세 중과 배제를 받을 수 있는 이번 기회를 잡아야 하는지 묻는 전화였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오는 2020년 6월까지 다주택자가 조정대상지역 내에 있는 10년 이상 보유 주택을 매도할 경우 양도소득세 중과를 배제하기로 했다. 다만 다주택자들은 집값이 다시 상승하는 경우의 수를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급 늘어날 것” 반응도

다만 모두의 의견이 부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일부는 이번 대책이 부동산 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서울 성북구의 공인중개사 C씨는 “고가주택의 기준을 공시가격에서 시가 9억 원으로 바꾼 것이 시장에는 큰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라며 “고가주택 구입에 대해 1년 내 전입 및 처분 의무가 부여되기 때문에 2주택자들의 매물이 다수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신도시 공급이 오래 걸리는 것을 인지한 정부가 기존 다주택 보유자들의 매물을 시장에 강제로 내놓게 함으로써 부족한 공급을 메우기 위한 정책이라는 것이다. 이어 “전세로 거주하며 투자물건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전세대출을 회수하면 대출 연장이 불가능한 사람들의 보유주택이 매물로 출현할 확률이 높아진다”고 덧붙였다.

서울 도봉구에 거주하는 김모(38·여)씨 역시 “9억 원 이상 분에 대해서 20%고 어차피 9억 원 미만은 대출 40%가 그대로 나온다”라면서 “10~11억 원 사이 집값은 대출 금액 큰 차이 없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어 “가계 부채 규모가 크니 정부 차원에서 칼을 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 “담보 대출을 5억 원씩 받아서 추격매수 하는 바람에 강남 집값이 더 오르는 건데, 그런 수요를 차단하고 대신 2, 3급지 가격이 좀 더 오를 수 있는 여유를 준 거 같다”고 전했다.

이처럼 같은 정책을 두고 여러 의견이 뒤섞이는 가운데 확실한 것은 정부의 12·16 부동산 대책의 의도가 아직까지 현장에 정확히 전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혼란을 겪고 있는 현장이 안정을 찾고 나면 이번 정책의 성패가 갈릴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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