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법 개정 논의가 산으로 가고 있습니다. 산도 어디쯤 있는지 아는 도봉산, 북한산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은 어디 있는지도 모를 바덴산이나 키나발루산으로 가고 있습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적용하느냐 마느냐, 비례 몇 석에 적용하느냐, 캡을 씌우느냐, 석패율제를 도입하느냐, 도입하면 전국 단위냐 지역 단위냐 하는 문제가 어지럽게 난무하고 있습니다.

선거법을 둘러 싼 여·야 간 줄다리기만도 어지러운데 국회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과 공수처 신설을 반대하는 시위대가 포위하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매일 시위가 벌어지고, 아침부터 밤늦은 시각까지 국회 앞은 우리공화당 당가와 ‘공수처 반대’ ‘문재인 탄핵’ 구호가 울려 퍼집니다. 하도 오래 듣다 보니 다른 당 보좌진, 당직자들도 무의식중에 따라서 흥얼거리게 될 정도입니다.

선거법 개정은 더불어민주당, 바른미래당, 정의당, 민주평화당, 대안신당이 꾸린 ‘4+1협의체’가 한시적으로 캡을 씌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과 석패율제 도입을 합의하면서 결론이 날 것 같더니 막판에 상황이 꼬였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석패율제 도입에 거부감을 보이고 있고, 자유한국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 ‘비례정당’을 창당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사실 선거와 정치문화 자체를 바꿨다고 평가받는 2004년의 오세훈 선거법에 비하면 여·야 간에 현재 논의되고 있는 선거법 개정은 대단한 개혁으로 부르기는 어렵습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나 석패율제는 국회의원 선출 방식에 대한 것입니다. 국회의원 선출방식을 정하는 ‘게임의 룰’을 바꾸는 지금의 ‘심(심상정)·손(손학규)·정(정동영) 선거법’은 개혁이라고 부르기엔 혁신적인 내용이 부족합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지고지선한 제도가 아닙니다. 공직자를 선출하는 수많은 제도 중에 하나일 뿐입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도는 의원내각제에서는 순기능을 하지만, 우리나라와 같은 대통령 중심제도에서는 정치적으로 역기능을 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전 세계적으로도 대통령 중심제에서 100%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시행하는 나라는 극소수에 불과하고 이 나라들은 일상적으로 정치적 혼란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지금 여·야 간 선거제도 논의 과정에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과연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방향인가에 대한 논의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렇다 보니 자유한국당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도 도입을 대비해서 ‘비례정당’을 만들겠다는 꼼수도 나오는 것입니다. 자유한국당이 비례정당을 만들겠다는 선언은 정의당 등이 연동형 비례제와 석패율제 도입을 주장하는 것과 21대 국회 의석 확보를 노린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자유한국당의 비례정당 창당은 꼼수일망정 불법은 아니고 가능한 정치적 수단을 강구하는 것으로 봐야 합니다. 정치적으로 비난할 수는 있으나 궁극적으로는 국민이 선택할 문제입니다. 자유한국당이 정말 비례정당을 창당할지, 연동형 비례대표제 저지를 위한 엄포로 끝날지도 지금으로선 예상하기 어렵습니다. 예상되는 성과만큼이나 정치적인 부담도 크기 때문입니다.

‘비례한국당이’ 현실화되더라도 한국당의 이런 시도는 성공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유권자들에게는 ‘비례한국당’이 선거법 개정 저지 과정에서 보여주고 있는 한국당식 막장 정치의 끝판왕으로 비춰질 것입니다. 특정한 지지 정당이 없는 무당층이나 중도층뿐 아니라 보수유권자들조차 등을 돌릴 가능성이 큽니다. 

결과적으로 비례한국당의 출현은 우리나라의 보수 정치권이 유권자의 눈을 의식하는 분별도 없고 미래에 대한 전망도 없는 집단이라는 것을 인증하는 행위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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