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한 교수
신용한 교수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 ‘보수대통합’ 이나 ‘4+1 연합’ 등 수많은 합종연횡이 논의되고 이합집산이 난무하기 시작하는 것을 보니 정치의 계절이 틀림없다. 

통합이나 연합, 연대와 정확히 같은 것은 아니지만 비즈니스에 비유하자면 이 또한 ‘동업(同業)’의 한 형태들이다.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 빌 게이츠와 스티브 발머 그리고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등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렇다. 바로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및 구글을 공동으로 창업하여 성공시킨 신화의 주인공들이다. 이처럼 해외에는 ‘동업’으로 창업하여 성공한 신화들이 즐비하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가. “동업하면 돈도 잃고 사람도 잃는다. 형제끼리도 동업은 절대로 하지 마라.” 우리가 오래전부터 흔히 듣던 이야기들이다. 지휘자가 많아 의견 통일이 어렵고 방향성을 잃기 쉬울 때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속담도 듣곤 한다.

서로 아쉽고 숨 넘어갈 정도 되면 눈에 불을 켜고 찾곤 하는 동업! 동업에 성공하기 위한 조건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 한편, 중요할 때 찾는 동업이 어찌하여 평소에는 마치 금기시해야 되는 대상으로 취급받고 멀리하게 되었을까?

어떤 일을 공동으로 추진하고자 할 때 누구나 흔히 빠지기 쉬운 함정들이 있다. 일단 함께할 파트너를 선정하는 단계에서 “파트너가 함께할 일에 대한 핵심 역량(business core)을 갖추고 있는가?”를 맨 먼저 고려해야 하는데, 그보다는 흔히 ‘친소관계’에 의해서 친하고 편한 사람을 먼저 찾게 된다.

아마도 시스템보다는 관계를 중시하고 합리적인 토론과 논쟁보다 의리와 정을 중요시해 온 한국 사회의 특징 때문에 동업을 그렇게 경원시했는지 모르지만, 대한민국 사람이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했을 법한 함정이다.

친한 사람이 아니라 ‘부족함’을 채워주는 사람, 철저하게 책임과 권한을 나누어 애매함을 끝장내고 간섭은 줄이되 상호 협력을 강화함으로써 비즈니스적인 운명공동체로 함께 올인(all-in)하며 전진하는 파트너십! 이게 바로 진정한 동업인 것이다.

그렇다면 연정이나 동맹이 일상화되어 있는 유럽을 보면 동업의 힌트를 좀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유럽의 정치 지형은 기존의 중도좌파 혹은 중도우파 성향의 거대 양당에 표를 주는 유권자가 점점 감소하여 다양한 군소 정당으로 분산되는 구조로 변하고 있다.

일당독재 트라우마로 연정이 보편화된 독일에서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기독민주당·기독사회당(CDU·CSU) 연합과 대연정 파트너인 사회민주당(SPD)과의 협상에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지만 “대연정은 나라를 위한 것이지 집권당의 트라우마 치료법이 아니다.”라는 원칙으로 이견을 조정하고 있다.

과반을 얻지 못한 스페인 집권 여당인 중도좌파의 사회당은 급진좌파 성격의 포데모스와 연정에 합의했다. 포퓰리즘 성향이 강한 극우·극좌 정당이 연정의 ‘킹메이커’가 되기 쉬워 사회적 갈등이 확대될 우려도 존재하지만, 유럽 각국은 ‘국민과 국익’이라는 대의 앞에 ‘적과의 동침’도 스스럼없이 하면서 발전해 왔다.

우리 정치의 동업 논의와 내용은 어떠한가? 야권의 보수대통합 논의에서는 자유한국당을 가운데 놓고 보수 진영 내부의 이념적 스펙트럼을 다시 잘게 나누어 극우 성향 태극기부대니 중도보수 개혁세력이니 하면서 서로 ‘친소’에 따른 동업의 선후를 주장한다.

대외적으로 내세워 온 문재인 정부의 폭정을 막기 위해 ‘부족함’을 채워 줄 진정한 파트너에 대한 갈망은 온데간데없다. 여권의 소위 ‘4+1’ 연합에서는 공수처법과 선거법을 놓고 각 정당의 유불리를 따지면서 내부 파열임이 짙게 나오고 있다. 당리당략은 난무하지만 그들이 평소 입에 달고 사는 ‘국민과 국익’이라는 대의는 뒷전일 뿐이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속담에서 한국 정치는 거꾸로 배워야 할 때다. ‘국민과 국익’이라는 대의에 충실하게 힘을 합치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 얼마나 합심하여 한마음 한뜻으로 전진하면 물 위에 있는 배를 산에까지 끌고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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