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0억(*다야니) 날리고 5조(*론스타) +1조(*엘리엇+메이슨) 소송도 위기…. 이 모든 건 혈세다?


 

금융위원회 전경. <뉴시스>
금융위원회 전경. <뉴시스>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한국 정부가 거액을 이란 업체에 배상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대우일렉트로닉스(대우일렉) 인수·합병(M&A) 사건의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 패소 판정을 취소해달라는 한국 정부의 요구를 영국 고등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유사한 소송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이번 패소 확정으로 앞으로 줄줄이 이어질 ISD에서도 한국이 승소를 확신할 수 없게 됐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자칫 한국 정부는 조(兆) 단위의 돈을 날릴 상황이며 이는 곧 국민의 혈세가 투입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英 고법, 중재판정 취소 청구 불수용... `다야니에 730억 원 지급` 중재 판정 확정
론스타 등 수조 원대 소송 줄이어… 정부 내 전담 조직·인력 확보 필요성을 강조


2018년 11월 26일 금융소비자원은 `ISD로 수조 원을 배상해야 할 정부, 언제까지 쉬쉬할 건가?"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냈다.

당시 금융소비자원은 "정부가 외국기업에 당하고 있는 ISD 소송금액이 무려 7조 원 정도임에도 불구하고 쉬쉬하며 비밀리에 처리하는 행태야말로 명백한 잘못이다"라면서 "소송에 패소해도 대책을 제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소송이라 비밀이라며 어떤 것도 알려주지 않는 형태는 더는 용납될 수 없는 행위다.

청와대와 국회는 즉각 책임을 묻는 조치와 실상을 공개하고 관련자들에 대해서는 징계뿐만 아니라, 재산압류 등 모든 민·형사상의 조치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무능한 정부관료들 때문에

그로부터 1년이 조금 지난 12월21일 충격적인 내용이 알려졌다. 한국 정부가 이란 정부와의 ISD 소송에서 처음 패소한 것이다. 금융위원회는 이날 이란 다야니 가문 대 대한민국 사건의 중재 판정 취소소송에서 영국 고등법원은 중재 판정을 취소해달라는 한국 정부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UN 산하 국제상거래법위원회 중재 판정부는 2010년 대우일렉 매각 과정에서 한국 채권단의 잘못이 있었다며 이란의 가전 회사 엔텍합의 대주주 다야니 가문에 계약 보증금과 보증금 반환 지연 이자 등 약 730억 원을 지급하라고 지난해 6월 판결했다.

한국 정부는 다야니의 손을 들어준 국제 중재판정부의 판정에 불복해 지난해 7월 중재지인 영국의 고등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고, 당시 금융위는 다야니가의 중재신청은 한국 정부가 아닌 채권단(39개 금융기관)과의 법적 분쟁 내용이므로 한·이란 투자보장 협정상 ISD 대상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또 채권단 대표인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는 대한민국 국가기관으로 볼 수 없고 캠코의 행위가 대한민국에 귀속된다고 볼 수도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에 금융위의 취소소송 요구가 기각되면서 지난해 6월 중재판정이 확정됐다.

이 사건은 2010년 4월 다야니 가문이 자산관리공사(캠코)가 최대 주주였던 대우일렉을 인수하려다 실패하면서 불거졌다. 당시 다야니 측은 채권단에게 계약금 578억 원을 지급했으나 채권단은 투자확약서(LOC) 불충분(총 필요자금 대비 1545억 원 부족한 LOC 제출)을 이유로 계약을 해지했다.

다야니는 당시 계약 보증금 578억 원을 돌려 달라고 했으나 캠코 등 대우일렉 채권단은 계약 해지의 책임이 다야니에 있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다야니는 이에 2015년 보증금과 보증금 이자 등 935억 원을 반환하라는 취지로 한국 정부를 상대로 ISD를 제기했다. 중재 판정부는 지난해 6월 한국 정부가 디야니 측에 배상금 730억 원을 지급하라고 했다.

영국 고등법원은 이에 한-이란 투자보장 협정상 투자와 투자자의 개념을 매우 광범위하게 해석해 다야니를 한국에 투자한 투자자로 판단해 ISD를 제기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정부는 전날 영국 고등법원의 판결이 나오자 국무조정실, 기획재정부, 외교부, 법무부, 산업부, 금융위 등이 참여한 긴급 관계부처 회의를 열어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현실화되는 ‘ISD 공포’

문제는 앞으로도 유사한 소송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 정부에 ISD에 중재의향서가 접수된 것이 10건, 소송 청구액은 외환은행(론스타), 삼성물산(엘리엇ㆍ메이슨), 송도 국제업무지구(게일), 제주 예래휴양단지(버자야) 등 9조 원이 넘는다.

소비자보호원에 따르면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한 ISD 건이 남아있다. 손해배상청구액이 46.8억 달러, 한화로 환산하면 5조3000억 원 정도로 추산된다. 결과에 따라서는 큰 파장이 예상되는 금액이다.

론스타가 문제 삼는 것은 2012년 외환은행을 하나금융지주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국세청이 부과한 세금 4000억여 원과 외환은행을 KB금융지주 혹은 HSBC에 매각하려 할 때, 한국 정부의 승인이 늦어지면서 2조 원대의 손실을 본 것에 대한 손해배상으로 5조3000억 원을 청구한 것이다.

현재 론스타 소송은 2016년 6월에 변론이 사실상 끝나 판결만을 앞둔 상황이다. 영화 `블랙머니`를 통해 재조명되면서 일반인들도 많이 알고 있는 이 사건이지만 소송 전망이 밝지만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영화에서도 ‘무능한 정부가 국민의 소중한 돈을 외국에 넘겨준 사건’을 재조명했다는 관람평이 주를 잇기도 했다.

또한 미국계 펀드 엘리엇과 메이슨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시 정부 개입으로 손해를 입었다면서 각각 제기한 8600억 원, 2000억 원 규모의 배상 요구 등 ISD가 줄을 잇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ISD 관련 청구액만 9조 원을 웃돈다. 이미 정부는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쓴 ISD 변호사 비용 등을 위해 400억 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했다. 향후 소송 결과도 불투명해 ISD가 ‘세금 먹는 하마’가 될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에 대한 ISD 제기가 앞으로 계속될 수 있는 만큼 근본적인 대응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또한 정부 내 전담 조직·인력 확보 필요성을 강조한다.

현재 ISD 사건에 대해선 법무부가 주무부처로서 국무조정실과 기획재정부, 외교부, 산업통상자원부, 금융위 등 관계 대응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정부는 법무부 내 ISD 전담 과를 신설하는 방안도 추진했지만 실현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법무부는 다만 내년 상반기 중 ISD 전담 인력 3명을 충원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현재 미국 국무부에는 산하에 170명가량의 ISD 지원 변호사를 둔 것으로 전해졌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ISD 사건은 정부에서 국내·외 법무법인에 맡겨서 대응하는 실정”이라며 “전담인력 양성 등 정부가 더 주도적으로 나서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이란?
 
ISD(Investor-State-Dispute)는 외국에 투자한 기업이 진출한 국가의 불합리한 정책, 법으로 인해 재산적 피해를 보거나 투자유치국 정부가 투자계약, 협정의무 등을 어겨 손실이 발생하는 것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분쟁이 발생한 경우, 양국의 법원이 아닌 국제기구의 중재를 받는 제도로서 투자기업이 부당한 침해를 받으면 해당국을 세계은행(WB) 산하 국제상사분쟁재판소(ICSID)에 제소하는 구조이다. 제소되면, 중재 절차를 진행하면서 3인의 중재인으로 구성된 중재판정부에 배당되고 중재인은 양측에서 각각 1명씩 선임하고 위원장은 양측 합의로 선임된다.

합의가 안 될 시 국제투자분쟁해결기구의 사무총장이 선임하여 진행하는 소송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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