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사직을 구한 불멸의 명신 이제현

 

최유 장군님께.

도지휘사 안우경 글월 올립니다. 지금 고려의 뜻있는 신하들과 백성들은 원 황제의 공민왕 폐위 결정에 쌍수를 들고 환영을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다 최유 장군님이 고려의 신민을 아끼는 충정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조정에서는 지난 전투에서 소극적으로 임해 안주로 퇴각한 소장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책임론이 나오고 있습니다. 총지휘관이 된 최영은 군율을 세우기 위해 소장을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음모를 세우고 있습니다. 소장에게 삼일 간의 말미만 주신다면 소장을 따르는 수하들을      규합하여 최영의 목을 수습하여 장군님께 바치고 내응(內應)할 것입니다. 부디 소장을 거두어 주십시오.

글의 내용은 자기를 한없이 낮추고 상대인 최유를 하늘같이 추켜세우는 것이었다. 읽기를 마친 최유는 자기를 알아주는 안우경의 사람됨에 크게 만족하며 껄껄 웃었다. 그러나 그 뒤에 무서운 계획이 숨어 있는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최유가 방심하고 있는 사이, 최영은 서북면도원수 경복흥(慶復興), 밀직부사 이귀수, 지밀직사사 지용수, 판도판서 나세와 도지휘사 안우경을 좌익(左翼)으로 세우고, 판개성부사 이순, 삼사판사 우제, 밀직사 박춘과 동북면에서 급히 도착한 이성계를 우익(右翼)에 세웠다. 그리고 자신은 중군(中軍)이 되어 위풍당당하게 수주(隨州, 평북 정주)의 달천(達川)에 이르렀다.

먼저 서북면 도원수 경복흥은 최유에게 격서(檄書)를 보내 꾸짖었다.

“사람의 자식이 되어 난적(亂賊)의 이름을 면하지 못한다면 무슨 면목으로 천지 사이에 설 것이냐.”

자신을 ‘난적’이라고 꾸짖은 경복흥을 당장 요절내고 싶은 최유였지만, 기치창검을 질서정연하게 세우고 빈틈없는 진을 치고 있는 최영이 지휘하는 군대가 범상치 않게 느껴졌다. 더구나 불패의 명장 최영의 목을 수습하겠다는 안우경의 약조도 있고 해서 최유는 지구전으로 들어갔다. 

이때를 노려, 안우경은 정예기병 3백명으로 기습작전을 폈다. 원나라 군대의 척후 기병을 공격하여 패퇴시키고, 원의 장수 송신길을 사로잡아 죽여 조리돌려 적군의 사기를 떨어뜨렸다.

1월 18일. 마침내 이성계가 선봉장이 되어 반격에 나섰으며, 최유를 급습하여 수주(정주)에서 승전함으로써 전세는 역전되었다. 이때 류인우, 강지연 등은 낙오되어 추격해 온 고려군에게 참살 당했고, 압록강을 건너 도망간 자는 겨우 17명이 고작이었다. 이로써 원나라의 덕흥군 옹립은 실패로 돌아갔고 원의 지배는 완전히 종식을 고하였다.

이제현은 최유의 난을 물리친 전쟁 영웅들이 한없이 자랑스러웠다. 그리하여 승전의 주인공들인 최영, 경복흥, 안우경, 우제, 지용수 등을 집으로 초대했다. 주안상이 나오고 술이 몇 순배 돌아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먼저 이제현이 초청의 인사를 했다.

“오늘 나는 사사롭게는 국구(國舅) 자격으로 여러 장군들을 모셨소이다. 역사에 가정은 무의미하지만, 만약 여러분이 덕흥군에게 줄을 섰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금상은 왕위를 빼앗겼을 지도 모를 것이오. 금상을 대신해서 내가 먼저 여러분을 뵙자고 한 뜻이 여기에 있소이다.”

최영이 휘하 장군들을 대표해서 초청해준 후의에 답례를 했다.

“시중 어르신께서 소장들을 이렇게 환대해주시니 일신의 영광이옵니다.”

이제현이 승전 이유를 묻는 덕담을 건넸다.

“최 장군, 최유가 이번에 이토록 쉬 싸움에 지고만 까닭은 무엇인가?”

그러자 최영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최유는 사람됨이 사술(邪術)이 많사옵니다. 비록 병법에 능하다 해도 사술이 많으면 싸움에 지기 쉽사옵니다. 소장은 이번에 최유의 그 사술을 역이용해 이길 수 있었사옵니다.”

이어 도병마사 우제가 이제현의 높은 경륜에 대해 존경의 뜻을 표했다.

“시중 어르신께서 금상 전하께 최유와 덕흥군의 고려 침공을 막을 수 있는 지혜를 드렸다는 것을 소장들은 잘 알고 있사옵니다.”

“내가 한 일이 무에 있는가. 다 장군들이 한 일이지.”

서북면도원수 경복흥은 전쟁의 영웅담을 이야기 했다.

“이번 전쟁에서 소장은 최유에게 난신적자(亂臣賊子)라는 낙인을 찍은 격서를 보냈사옵니다. 병법의 일종인 심리전을 활용한 것이지요.”

“좋은 계책이었어. 명분에서 진 장수의 군대는 사기가 떨어져 오합지졸이 되기 십상인 법이지.”

도지휘사 안우경은 사항계(詐降計)를 쓰게된 경위를 이야기 했다.

“소장은 총지휘관 최영장군의 명을 받아 적벽대전에서 황개(黃蓋)가 거짓으로 투항의사를 밝힌 그 심정으로 투항계를 썼사옵니다.”

“안 장군의 항서(降書)는 우리 전사(戰史)에 길이 남을 명문이네.”

최영이 이번 전쟁의 의미를 되새겼다.

“이번 덕흥군의 고려 침공은 고려의 반원개혁에 대한 원나라 최후의 공세였습니다. 이번 전쟁에서 우리가 승리하였기 때문에 앞으로는 원의 무력간섭을 뿌리치고 고려의 자주성을 보전해 나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사옵니다.”

최영의 말을 골똘하게 듣고 있던 이제현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리고 제장(諸將)을 찬찬히 둘러보며 이번 전쟁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담담하게 정리해서 말했다.

“우리가 덕흥군의 고려 침공을 물리친 것은 1백년 가까이 전개된 ‘원간섭기’에 종지부를 찍는 대사건이라고 할 수 있네. 금상은 흔들렸던 왕위를 안정시키고, 좌절되었던 초기 개혁정치를 되살릴 수 있는 동력을 얻었음이야. 앞으로 원은 고려에 더 이상 직접적인 영향력을 끼치지 못할 것이네. 이제 장군들이 힘을 합쳐 미구(未久)에 잃어버린 고토 회복을 위해 요동지방을 정벌하는 계획을 세워나가야 하네.”

“명심하겠사옵니다. 시중 어르신.”

한편, 보름 만에 압록강을 넘어 원나라로 퇴각한 최유는 원나라 순제에게 고려 정벌을 위해 대병력을 내어달라고 청하였다. 그러나 순제는 감찰어사 유린(紐憐)의 간언을 받아들여 최유를 잡아서 칼을 씌워 고려로 돌려보내니, 마침내 11월에 최유는 사형에 처해졌다.

1364년 10월. 원나라 순제는 어쩔 수 없이 한림학사 승지 기전룡(奇田龍)을 고려에 보내 ‘공민왕의 복위조서’를 내렸다.

최유가 환관 박불화와 결탁하여 거짓 주청을 하여 조서를 내리게 함으로써 죄 없는 공민왕을 폐위시켰을 뿐만 아니라, 군사적 충돌까지 일으켜 일방의 지역을 소란케 하였으니 짐이 길이 한탄하는 바이다. 이에 공민왕에게 다시 옛 작위를 회복시키니 백성들을 잘 다스리고 짐의 동쪽 번국(藩國)으로 더욱 충과 효에 힘써 공훈을 보존하도록 하라.

이듬해인 1365년(공민왕14) 정월 초. 원나라 순제는 덕흥군에게서 군(君)의 칭호를 빼앗고 영평부(永平府)로 귀향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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