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 과다 지출 원인···본인부담률 ‘80%’ 상향

최첨단 MRI. [뉴시스]
최첨단 MRI.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최근 정부가 뇌‧뇌혈관 MRI(자기공명영상법) 촬영이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인 일명 ‘문재인케어’ 이후 예상보다 재정이 과다 지출돼 내년 3월부터 경증 환자의 본인부담률을 30~60%에서 80%로 올리기로 했다. 혜택을 축소한 셈이다. 또 노인 외래진료비 등에 대한 급여 축소 가능성도 시사해,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비판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이번 정부의 결정은 문재인 정부의 보건의료정책 첫 회귀 사례다.

文정부 보건의료정책 첫 회귀 사례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비난도

보건복지부는 최근 2019년 제25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를 열어 건강 보험 보장성 강화 추진과제 재정 모니터링 현황 등을 보고했다.

지난 2017년 8월 문재인케어 발표 이후 청구 자료가 안정화된 그해 9월부터 올해 4월까지 보장성을 확대한 과제들의 연간 재정 추계액은 건정심 의결 기준 약 4조5000억 원이다.

이 가운데 실제 집행 규모를 1년 단위로 환산했을 때 추정액은 85~88% 수준인 3조8000억~4조 원 수준으로 과도한 의료이용이나 재정지출이 발생하지 않고 적정 수준에서 관리되고 있다고 복지부는 설명했다.

다만 주요 과제 가운데 뇌‧뇌혈관 MRI, 만 12세 이하 광중합형 복합레진 충전치료(충치치료), 노인 외래진료비 개선 등 3개 과제는 계획 대비 집행률이 각각 166~171%, 197~213%, 169~174%로 의료 이용 증가 경향을 보였다고 했다.

복지부는 계획 대비 50%를 초과해 과다 지출한 과제들에 대한 개선 대책을 건정심에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MRI 본인부담↑

내년 3월부터 시행

뇌‧뇌혈관 MRI는 두통‧어지럼 등 경증 증상에서 불필요한 검사를 줄이고 필수 수요 중심으로 검사를 적정화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뇌‧뇌혈관 MRI 검사에 건강보험이 확대 적용되면서 지금은 뇌 질환을 의심할 만한 두통이나 어지럼에 해당해 신경학적 검사를 하면 검사 결과와 관계없이 본인부담률이 30~60% 수준이었다. 나머지 40~70%는 건강보험에서 부담해 왔다.

그러나 2020년 3월1일부터는 신경학적 검사상 이상 증상이 나타나거나 뇌압 상승 소견이 동반되는 등 뇌질환이 강력하게 의심되는 경우가 아닌 일반적인 두통‧어지럼만으로는 MRI 검사를 받을 시 환자가 80%를 부담해야 한다.

또 의료기관에서 MRI를 포함한 복합촬영을 남용하지 않도록 복합촬영 수가는 기존 최대 300%에서 200%로 낮추기로 했다. 복합촬영은 뇌 외의 뇌혈관, 경부혈관 등 여러 방법으로 동시에 검사하는 방법이다. 주로 중증 질환에서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뇌‧뇌혈관 MRI 촬영이 늘어난 이유에 대해 복지부는 ‘급여화 이후 빈도 증가‧대기 수요를 고려하지 않아 필요 수요가 과소 추계된 것’, ‘두통‧어지럼 등 경증 증상의 MRI 촬영이 과도하게 증가된 것’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두통‧어지럼의 경우 대형 병원보다 동네 병‧의원에서 진료비 증가율이 4~10배 높게 나타났다. 중소형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두통‧어지럼 등 경증 증상에 대한 MRI 검사가 크게 늘어난 것이다. 관련 지출액만 최소 2730억 원에서 최대 2800억 원까지 치솟아 재정 악화를 불러일으킨 셈이다.

복지부는 두통‧어지럼 증상을 보이는 환자 가운데 5~10%는 뇌졸중이나 뇌경색 판정을 받는 만큼 건강보험 지원은 계속해 나가기로 했다.

노인 외래진료비

급여 축소 가능성도 시사

이번 보험 기준 개선으로 환자 본인 부담은 지금보다 2배가량 늘어날 전망이다. 여기에 분기별로 지나치게 검사 건수가 많은 의료기관은 선별‧집중 모니터링한다. 해당 의료기관에 모니터링 결과 통보와 함께 주의 조치를 하고 2020년부터 MRI 검사에 대한 심사를 강화해 청구 경향 이상 기관은 정밀심사‧현장점검도 추진할 방침이다.

복지부는 두통‧어지럼 등 경증 증상만으로는 뇌 질환 판정을 위한 MRI 검사 필요성이 의학적으로 높지 않다고 밝혔다. 담당 의료진과 충분히 상의 후에 동반 증상이나 다른 검사결과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 MRI 검사를 이용해 달라고 당부했다.

재정 추계 대비 연간 환산 추정액이 가장 많이 초과한 것은 12세 이하 어린이 충치치료(광중합형 복합레진 충전치료)다. 정부는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로 542억 원이 추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1070억~1160억 원으로 2배가량 과다 지출됐다.

복지부는 예전에 조사했던 자료로 충치 개수를 예측했으나, 잘못 예측했다고 시인했다. 다만 과대 이용으로는 보기 어렵다고 전했다.

실제 보험적용 후 1인당 광중합형 복합레진 평균 치료치아 개수가 2.4개로 기존 아말감 등 다른 치과재료 분야의 급여개수와 유사한 점을 볼 때 과다 이용보다는 기존 급여의 대체 효과, 대기 수요 등 필요 수요가 그대로 의료이용으로 이어졌다는 게 복지부의 판단이다.

이와 별도로 일부 불합리한 청구행태에 대해서는 요양급여 기준을 개선할 방침이다.

1056억 원을 예상했던 노인 외래진료비 개선 항목에서 169~174% 수준인 1790억~1840억 원이 환산된 데에 대해서는 지원방식, 적용 대상 등을 다각적으로 고려하고 현장 의견을 수렴해 개선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인 외래진료비에 대한 급여 축소 가능성을 시사한 셈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과도기에 있기 때문에 완급조절을 하는 모양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다만 당장 일부 급여기준이 축소되는 것은 국민들에게 자세히 설명하고 알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문제 발생 책임을 병‧의원들에게 돌리면 국민이 날리는 화살을 이들이 모두 받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한편 이번 정부의 결정은 그동안 건강보험 확대를 주장해온 문재인 정부의 보건의료정책 첫 회귀 사례다. 정부가 정책 실패를 일부 인정한 셈이다. 그러나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비난까지 나오는 만큼, 역효과를 신속하게 잡야야 판도를 뒤집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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