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한 교수
신용한 교수

‘노키아’,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 봤을 회사다. 한때는 강소국 핀란드 경제의 30%가 넘는 비중을 차지했던 세계적인 기업이고, 휴대폰 세계 판매량에서 1998년부터 무려 13년간이나 1위를 지켰던 폴더폰의 절대 강자였다. 전성기엔 대한민국의 세계적인 휴대폰 생산 기업인 삼성과 LG가 단 한 번도 이겨보지 못했을 정도였다.

그런 ‘노키아’가 지금은 어디로 갔는가? 1992년 전격적으로 기존의 고무, 제지 및 타이어 사업 부문을 과감하게 정리하고, 이동전화 단말기와 정보통신 사업에 집중하면서 세계적인 ‘변화와 혁신’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던 공룡 노키아도 급변하는 세계시장 변화에 둔감해지면서 2013년 마이크로소프트사의 계열회사로 편입되기에 이르렀다. 물론, 지금은 네트워크 장비업체로 다시 부상하고 있지만 휴대폰 절대 강자로서의 노키아는 사라진 것이다.

2007년 선도자(first mover) 애플이 아이폰을 출시하고 후발주자(fast follower) 삼성이 급속도로 추격하는 스마트폰 대전이 벌어진 이후, 폴더폰 분야 부동의 1위 업체였던 노키아는 자체 시장잠식(self carnivalization) 우려와 시장에 대한 오판으로 스마트폰 개발 경쟁에서 밀리기 시작하면서 그걸로 끝이었다.

바로 ‘휴브리스(hubris)’의 함정에 빠진 것이다. 폴더폰 성공 신화의 함정에 도취해 기존에 했던 방식 그대로를 고집하면서 고객의 수요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스마트폰으로 급속히 재편되는 시장에서 타이밍을 놓친 것이다. 

‘휴브리스’는 영국의 역사학자이자 문명비평가인 토인비가, 과거에 성공한 사람이 자신의 능력과 방법을 우상화함으로써 오류에 빠지게 된다는 뜻으로 사용한 역사 해석학 용어지만, 경영에 있어서도 ‘성공의 경험에서 얻은 오만에서 생기는 함정’을 의미하면서 자주 인용되고 있다.

아날로그식 마그네틱 필름 시장에서 60% 이상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며 절대 강자였던 ‘코닥’의 운명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세계 최초의 디지털카메라를 만들어 낼 정도로 변화와 혁신의 아이콘이었던 코닥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코닥은 디지털카메라가 향후 아날로그 필름 시장 전체를 바꿔놓을 것이라고 결론 내리고는 상용화를 중지시켰으며, 필름 시장의 붕괴를 우려해 간간히 디지털카메라의 시험작만 출시하며 디지털카메라의 출현을 억지로 늦추었다. 그러는 사이 후발주자들이 시장의 판도를 완전히 바꾸며 2012년 파산신청을 하기에 이르렀다.

진보진영이든 보수진영이든 거슬러 올라가면 대한민국 민주주의 70년 역사의 정통성을 이어오고 있다고 하는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등 제 정당들. 각 진영마다 그동안의 성공 방정식과 절절히 내재되어 있는 승리의 노하우를 갖고 있다. 선거철이 되니 정당마다 그동안의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승리를 위한 비법 차원의 변화와 혁신에 대한 모델들이 한창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그 가운데 일부는 ‘이회창 모델’이나 ‘김종인 모델’이라고 부르며 성공의 경험들을 공식화하거나 일반화하기도 한다.

그러나 때는 바야흐로 2019년! 과거의 10년이 1년처럼 지나는 상황이 오히려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세상이다. 이런 살벌한 전쟁터에서 살아남으려면 어제의 성공조차도 오늘의 성공이나 승리를 담보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개인적인 욕구가 다원화되고 다양성을 최대한 존중해 주는 세상에 버티는 올드보이에 대한 판에 박힌 물갈이론과 선거철에만 이벤트 식으로 반짝하는 인재영입 퍼레이드 등 식상한 곁가지 메뉴만으로 소비자(유권자)의 욕구를 채울 수 있을까. ‘휴브리스’의 함정을 극복하고 소비자 트렌드에 맞도록 주 메뉴마저도 바꿀 결기는 어느 진영에? 

대한민국 최고이자 세계적인 기업인 삼성은 왜 매번 ‘위기다, 위기다, 위기다’를 외칠까. 일견 엄청난 영업이익을 기록하는 듯 보이는데 왜 매번 선제적 구조조정을 외칠까.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고 외치던 분의 목소리가 오늘도 생생하게 살아서 들리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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