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경영 소장

여론은 강물을 닮았다. 수천수만의 지류가 모여 큰 강이 되듯, 여론도 수천수만의 생각이 모여 큰 흐름이 된다. 한번 형성된 여론은 당분간 지속된다. 때론 예기치 않은 사건을 만나 쉬었다 가거나 돌아가더라도 소진될 때까지 흐른다. 강물이 바다에 이르러서야 멈추듯이.

여론은 급변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실제론 잘 변하지 않는다. 아무리 큰 대형사건이나 돌발변수라 하더라도 도도한 흐름을 쉽게 바꿀 수 없다. 많은 모순이 축적되고 흐름이 고갈될 때 비로소 반전이 일어난다. 여론은 때로는 선거가 끝난 후 실체를 드러내기도 있다. 2016년 총선이 그렇다. 권역별로 기득권을 정교하게 심판하고 원내 1, 2당을 교체한 바 있다. 

선거의 승패는 여론에 따라 갈린다. 주된 여론을 반영하는 정당이나 세력이 승리하게 된다. 지금의 주된 여론은 우리 사회의 변동과 관련이 있다. 온라인과 동영상, 개인과 협력, 수평과 분산 등의 가치들이 주류사회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2016년 촛불과 4차 산업혁명은 이런 흐름을 강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민주당은 여론을 타고 있다. 사회변동 방향과도 대략 일치한다. 민주당이 주도하는 선거법개정안은 연동형 도입으로 소수정당을 배려했다. 민주당은 비례에서 약 10여 석 손해를 볼 수도 있다. 검찰개혁안도 권력집중 완화, 수사기관 수평과 분산이란 새로운 가치의 반영으로 볼 수 있다.

민주당 지지율도 여론을 반영하고 있다. 리얼미터와 한국갤럽에서 40% 전후를 나타내고 있다. 한국갤럽의 ‘비례투표 의향정당’에서도 30% 중후반을 지키고 있다(여론조사 관련 구체적인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4+1 협의체를 통해 국정을 앞장서서 끌고 있는 점도 눈에 띈다. 총선까지 전망도 나쁘지 않다. 경제회복 신호도 나오고 있고 청와대와 내각개편, 현역 물갈이 등 쓸 수 있는 카드도 적지 않다.

한국당을 바라보는 여론은 냉랭하다. 리얼미터에선 30% 수준을 나타내고 있지만 한국갤럽에선 20% 초반에 머물고 있다. 60세 이상, TK에서만 안정적일 뿐이다. 한국갤럽의 ‘비례투표 의향정당’에서도 20% 중반에 그치고 있다. 한국당 호감도는 여전히 낮은 수준이고 황교안 대표의 비호감도 역시 매우 높다.

한국당은 1년 내내 강경투쟁으로 문 대통령과 민주당에 맞섰다. 당내 결속과 지지층 결집엔 성공했다. 싸우는 데 힘을 소모하다 보니 국민이 바라는 성찰과 혁신엔 여전히 의문부호를 달고 있다. 사회 변동 방향과도 거리가 있어 보인다. 여론의 물줄기를 바꾸는 데는 시간도 부족하다. 보수통합이란 카드가 남아있지만 그것으로 충분할지는 미지수다.

정의당 분위기는 가장 좋다. 석패율제 도입은 실패했지만 연동형 최대 수혜자로 꼽힌다. 2018년 여름 노회찬 의원 극단적 선택 이후 동정론이 확산하면서 정의당은 되레 재평가되기도 했다. ‘조국 데스노트’로 곤경에 처하기도 했지만 최근엔 회복세다. 지역구에선 민주당 후보를, 비례투표에선 정의당을 선택하는 교차투표 기대도 살아있다.

바른미래당 당권파+대안신당+민주평화당+제3지대는 아직 변수로 남아있다. 다만 여론의 물줄기를 바꿀 만큼 파괴력이 있을지는 회의적이다. 새로운보수당과 한국당의 통합, 우리공화당과 한국당의 통합도 여론에 호응하지 않는 한 시너지는 제한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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