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대가 거부할 총리 임명하느니 사임하겠다”

지난 26일(현지시간)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반정부 시위대가 이란이 후원하는 아사드 알에이다니 총리 후보를 반대한다는 내용이 적힌 사진을 들고 신발로 사진 속 그의 얼굴을 때리고 있다. [뉴시스]

 

[일요서울] 바르함 살리흐 이라크 대통령은 지난 26일(현지시간) 의회의 친(親)이란 총리 후보 지명에 반발해 사퇴 의사를 밝혔다. 살리흐 대통령이 사퇴할 경우 새 대통령을 먼저 뽑아야 총리를 선출할 수 있다.

알자지라와 AP통신 등에 따르면 살리흐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내어 “유혈 사태를 중단하고 평화를 유지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친이란 정파 연합인 비나 블록이 총리 후보로 지명한) 아사드 알에이다니 바스라주(州) 주지사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를 총리 후보로 지명하는 것을 거부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반정부 시위대에 의해 거부될 사람을 임명하는 것보다 자신이 사임하는 것이 낫다고 주장했다.

살리흐 대통령은 “알에이다니 주지사는 정당에 소속되지 않은 독립된 총리를 요구하는 시위대를 진정시킬 수 없을 것”이라며 “이라크 헌법은 대통령에게 총리 지명자에 대한 거부권을 부여하지 않기 때문에 의회에 대통령직 사퇴서를 제출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그는 이라크 국회의장에게 보낸 성명에서는 “국회의원들이 원하는 대로 결정할 수 있도록 떠나겠다”고 했다. AP는 살리흐 대통령이 성명을 발표한 직후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를 떠나 고향인 이라크 북부 술레이마니야주로 떠났다고 전했다.

이라크 헌법상 의회는 대통령이 사의를 밝힌 날로부터 7일 이내 이를 받아들이거나 거부해야 한다. 당장 비나 블록의 한 축인 파타 동맹은 살리흐 대통령이 알에이다니 주지사에 대해 사실상 거부권을 행사해 헌법을 위반했다며 탄핵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라크 의회 최대 정파 연합인 비나 블록은 전날 알에이다니 주지사를 총리 후보로 추천했다. 비나 블록에는 시아파 정치인 하디 알 아미리가 이끄는 파타 동맹과 역시 시아파인 누리 알 말리키 전 총리의 법치 동맹이 포함돼 있다. 비나 블록은 이란 혁명수비대의 지원을 받은 이라크 시아파 민병대(하시드 알사비·PMU)와도 연계돼 있다.

이라크 헌법에 따르면 이라크는 개각제로 의회 다수당 또는 최대 정파 연합이 총리 후보를 지명하면 대통령은 30일 이내 후보에게 새로운 정부를 구성하도록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이후 의회에서 인준 투표를 거쳐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게 된다.

이라크 다수당은 시아파 성직자 무크타다 알사드르가 이끄는 알사이룬이다. 하지만 알사이룬은 알말라키 전 총리가 사퇴한 직후 ‘국민의 뜻에 맡기겠다’며 총리 후보 지명 권한을 포기했다.

이후 ‘누가 최대 정파 연합인가’를 두고 이견이 지속되면서 새 총리 지명이 두 차례 결렬됐다. 지난해 총선 이후 의원들의 이합집산이 계속되면서 이라크 정치권은 어느 정파 연합이 최대 정파 연합인지를 두고 정쟁을 벌이고 있다. 이라크 행정은 말라키 전 총리가 ‘임시 총리’ 자격으로 총괄하고 있는 상태다.

이라크 연방대법원은 ‘누가 최대 정파 연합인지’ 가려 달라는 정치권의 요구에 지난해 총선 이후 첫 회기를 기준으로 최대 정파 연합을 결정해야 한다면서도 정파 연합간 합종연횡을 고려해 최대 정파 연합을 결정해야 한다는 모호한 입장을 내놓고 있다.

반정부 시위대는 알에이다니 주지사의 총리 후보 지명 사실이 공개된 전날부터 바그다드 등에서 거센 반대 시위에 돌입했다. 알에이다니 주지사는 기득권의 일부로 반정부 시위대가 원하는 기득권과 독립된 인물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지난 10월 바그다드와 시아파 거주지역인 남부 지역에서 촉발된 반정부시위는 경제난과 부패 등에 항의해 시작됐지만 이란의 내정간섭 등 전반적인 정치 개혁을 요구하는 시위로 확산됐다. 반정부 시위대들은 이란과 미국 모두의 내정간섭을 거부하고 민족주위를 내세우는 알사이룬을 지지하고 있다.

알사이룬 수장인 알사드르는 알에이다니 주지사에 대해 뚜렷한 입장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알사드르와 밀접한 페이스북 페이지는 “국민이 거부하는 후보를 거부한 대통령에게 감사드린다”는 입장을 내놨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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