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실험 진앙지 ‘BDA’ 진실 추적


“핏줄을 막아 우리(북한)를 질식시키려는 제도말살행위.”
지난 1월, 북한 외무성의 공식적인 표현이다. 여기서 ‘핏줄’은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에 개설된 북한 계좌를, ‘제도말살행위’는 미국의 BDA 동결조치를 가리킨다. 미국이 BDA 은행 조사를 언제부터 실시했는지는 정확히 알려진 바 없다. 다만 지난해 제4차 북핵 6자회담 2단계 회의에서 느닷없이 돌출된 사건이 BDA 조사였다. 이 때문에 두 달 뒤인 11월에 다시 열린 5차 6자회담이 결렬됐고, 현재까지 북한은 협상장에 돌아오지 않고 있다. 게다가 북한은 이번 핵실험 이유를 BDA 동결조치로 대표되는 금융제재를 꼽고 있다. 북한이 6자회담을 박차고 나가면서까지, 또 핵실험을 강행하면서까지 BDA 조사 중단과 동결자금 해제를 요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BDA 동결조치가 단행되고 1년이 흐른 지금, 미국 외교가에선 미완성의 ‘BDA 보고서’를 가리켜 ‘판도라 상자’라 부른다. 그 내용이 북한 수뇌부, 더 나아가 북한 정권의 미래와도 깊은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다.

노동당 ‘39호실’ 실체 드러나
BDA 은행에 개설된 북한계좌에는 약 2,400만달러가 예금돼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자금 규모만 해도 작년 북한 예산의 대략 1%에 달하는 금액이다. 북한계좌 동결조치는 가뜩이나 외자 부족에 허덕이는 북한 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게다가 1달러에 3,000원에 거래되고 있는 북한 현지 사정을 감안한다면 작년 북한의 한해 예산은 1억2,000만달러에 불과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시장 환율 적용시 BDA 은행에 묶인 북한의 자금은 예산의 20%에 달하는 셈이다. 그만큼 BDA 은행의 동결자금이 북한에는 사활이 걸려 있을 정도로 중요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BDA 동결조치가 북한에 판도라 상자로 불리는 이유는 자금의 ‘규모’ 때문이 아니라 ‘성격’ 때문이라는 게 외교·정보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비롯한 그의 일가족 등 북한 수뇌부의 비자금과 생필품을 마련하는 노동당 38호실, 39호실, 서기실 등 주요 통치자금이 이 은행을 통해 거래됐다. 특히 노동당내 부서 외에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와 내각의 주요 기관과 은행들도 BDA 은행을 자주 이용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39호실’의 실체는 눈여겨볼 대목이다.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재정경리부 산하로 되어있으나 실제로는 김 위원장이 직접 조직한 것으로 알려진 39호실의 자금은 내각이나 다른 어떤 기관에서도 접근할 수 없는 ‘성역’으로 인식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한국 기업 자금 유입설 솔솔
2,400만달러의 ‘출처’도 북한 수뇌부를 자극하는 요소다. 애초 미국 당국은 정교한 위조지폐인 슈퍼노트(북한에서 제조된 것으로 의심되는 100달러짜리)가 어떻게 세탁되고 어떤 계좌로 입금되는지를 추적하기 위해 BDA를 조사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 과정에서 위조지폐 세탁 외에도 예상치 못한 단서가 포착됐다는 후문이다. 위폐뿐 아니라 마약거래나 북한의 외화벌이 거래 등에서 벌어들인 달러들이 이곳 계좌를 통해 오고간 것으로 드러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39호실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BDA 조사팀은 해외 곳곳에 분산돼 있는 김정일 위원장의 이른바 ‘통치계좌’까지 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스위스나 오스트리아 은행의 북한 계좌와 홍콩, 싱가포르, 영국 등에 있는 세계 유력은행 계좌가 BDA와 연계돼 있다는 얘기다. 현재 BDA 조사를 통해 미 당국은 각국에 분산돼 있는 북한 수뇌부의 통치계좌에는 대략 60억달러 규모의 자금이 예치돼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정치권에선 한국의 기업과 주요 인사들의 개입 여부도 주목 대상이다. BDA 조사가 알려진 이후 국내 정치권에선 현대아산측이 금강산 관광의 대가로 북한에 송금한 은행계좌가 존재한다는 의혹과 함께, 일각에선 한국 유력 정치인의 자금도 조사과정에서 드러났거나 최소한 조사대상이 되고 있다는 얘기가 나돌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는 미국의 테러와 대량살상무기(WMD) 확산 방지 대책을 국제금융면에서 총괄하는 스튜어트 레비 미국 재무부 테러·금융정보 담당 차관이 이끄는 BDA 조사팀의 동선과도 무관치 않다는 시각이다.

‘판도라 상자’ 한반도 정세 좌우
레비 차관 일행은 지난 7월 비공개로 서울을 방문해 외교통상부와 재경부, 금융정보분석원, 국가안전보장회의 등 관계기관 관계자들과 만났지만, 그의 동선은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졌다. 레비 차관은 지난해 9월 BDA가 북한 정권과 불법 금융거래를 한 사실을 밝혀내고 북한 계좌를 동결한 주인공이다.
이와 관련, 한 정보 소식통은 “미국측이 BDA 조사결과 반드시 확인해야 할 대목이 한국 내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그렇다 해도 아직까지 한국 기업과 정치권이 BDA 은행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아무튼, 레비 차관팀의 BDA 조사가 마무리되고 최종 보고서가 나올 경우 한반도 정세에 몰아칠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을 것’이라고 외교·정보 소식통들은 입을 모은다. 북한 수뇌부의 비정상적인 달러 수집 과정이 고스란히 드러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이는 국제사회에 있어 북한 정권의 위상과 직결되는 문제다. BDA 조사를 볼모로 북한의 항복을 이끌어 내려는 미국의 속내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때문에 북한의 2차 핵실험의 징후가 나타날 경우, 레비팀의 보고서가 발표될 것이라는 정치권의 전망도 나오고 있다. 지난 4일 워싱턴 포스트는 “BDA 조사가 마무리 검토 단계를 밟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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