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 vs 안정성···원전 해체 ‘찬반 대립’ 심화

부산 기장군 고리1호기. [뉴시스]
부산 기장군 고리1호기.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최근 원자력발전소 1기를 해체하려면 8100억 원이 넘는 비용을 들여야 한다는 정부 발표가 나오면서 원전 해체 필요성에 대한 찬반 대립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는 2년 전 산정한 해체 예상비용보다 600억 원가량 늘어난 수치다.

2년 전 산정한 해체 예상비용보다 600억 원 늘어

물가상승률‧할인율‧이자율 적용···한수원 부담 비용↑

최근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업부)에서 개정 고시한 ‘방사성폐기물 관리비용 및 사용후핵연료관리부담금 등의 산정 기준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원자력발전소 해체비용 충당금은 지난 2018년 말 기준 원전 1기당 8129억 원으로 추정된다.

산업부는 원전 해체 예상 비용을 2년마다 고시하고 있다. 이번 충당금 산정에는 물가상승률과 할인율‧이자율이 적용된 것으로 파악된다.

국내 최초로 1978년 상업운전에 들어간 고리 1호기(2017년 6월18일 영구정지)를 시작으로 국내 원전 설계수명이 차례대로 만료되는 것을 고려하면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이 부담해야 할 해체 비용도 지속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고리 1호기는 최근까지 사고‧고장 건수가 130건으로 국내 원전 중 가장 많았다. 또 가동률이 갈수록 낮아지고 가동정지 일수가 늘어나 안전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국내 상업운전

원전 총 24개

국내에서 상업운전 중인 원전은 총 24기이다. 추가적인 운전을 고려하지 않으면 24기 중 11기는 2030년까지 허가 받은 운전기간을 마치게 된다. 이는 최근 원자력안전위원회(이하 원안위)에서 영구정지를 승인한 월성 1호기를 포함한 수치다.

원전별로 살펴보면 고리 2호기는 2023년, 고리 3호기는 2024년, 고리 4호기는 2025년, 한빛 1호기는 2025년, 한빛 2호기는 2026년, 한울 1호기는 2027년, 한울 2호기는 2028년에 차례로 운전기간 40년을 채우면서 멈추게 된다.

비슷한 시기에 월성 2호기(2026년), 월성 3호기(2027년), 월성 4호기(2029년)도 30년간의 운전기간이 만료된다.

원전 해체 필요성에 대한 찬반 대립이 첨예한 만큼 해당 비용에 대한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두 진영은 원전의 경제성과 안전성을 저울질하면서 상반된 견해를 내놓는 상황이다.

원전 해체 경험 無

‘기술력 확보’ 과제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을 비판하는 단체인 ‘에너지 정책 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협의회’는 월성 1호기 영구정지 결정 이후 성명을 통해 “국민에게 전기요금 인상으로 감당할 수 없는 경제적 부담을 떠넘기고 미세먼지와 온실가스 배출로 환경을 망쳐버린 부당한 결정”이라고 규탄했다.

엄재식 원안위 위원장은 최근 월성 1호기 영구정지 확정을 발표하면서 “원안위는 독립성과 공정성을 기초로 원전 안전과 관련해 심의하고 문제가 없다면 의사결정을 내리는 기구”라며 “영구정지 신청은 사업자의 자유”라고 주장했다.

통상 원전 해체는 원전 부지를 일반 부지로 복구하는 것을 말한다. 원전 시설물 철거뿐 아니라 환경 복원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원전 해체를 위해, 먼저 영구정지운영 변경 허가를 원안위에 신청하고 승인을 받아야 한다. 또 5년 이내에 최종 해체계획서 등을 제출해 다시 심사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수원은 지난 2018년 고리 1호기 해체계획서 초안을 작성한 바 있다. 올해 상반기까지 주민의견을 수렴해 6월경 규제기관에 제출할 방침이다. 본격적인 해체 작업은 승인을 받은 이후 이르면 2022년 6월부터 진행될 예정이다. 해체에는 최소 15년 6개월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에서 원전 해체 경험이 없었던 터라 기술력 확보도 핵심 과제로 남아있다.

한수원 자료에 따르면 한수원은 미국 등 해외 사례 분석을 통해 설계‧인허가, 해체, 제염, 폐기물 관리, 부지 복원 관련 5개 분야에 대해서 원전 해체에 필요한 상용화 기술 58개를 선정했다. 이 중 45개 기술은 확보한 상태이며, 2021년까지 나머지 13개 기술을 개발할 방침이다.

현재 한수원은 원전 해체와 사용후핵연료사업 등을 전담하는 원전사후관리처를 운영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헌재에

효력정지가처분 신청

보수진영에서는 월성 1호기 영구정지 결정에 대한 반발이 거세다. 자유한국당은 지난해 12월 30일 원안위의 결정에 반발하며 헌법재판소에 월성 1호기 영구정지 효력정지가처분 신청을 했다.

한국당 에너지정책파탄특위원장인 김기선 의원은 이날 김석기‧최연혜 의원과 함께 헌법재판소에 ‘월성원전 1호기 영구정지 관련 효력정지가처분 신청서’를 제출했다.

김기선 의원은 신청서를 제출하고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이하 SNS)를 통해 “자유한국당 에너지정책 파탄 및 비리 진상규명 특위는 헌법재판소에 월성 1호기 영구정지 효력정지가처분 신청서를 제출했다”면서 “이미 국회 요구로 한수원 이사회의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의 타당성 및 이사진의 배임 행위’에 대한 감사원 조사가 진행 중임에도 원안위가 이렇게 서둘러 폐기 결정을 내린 것은 분명 청와대 등 윗선의 압력 때문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감사원 감사를 무력화한 원안위 결정은 원천 무효”라고 강조했다.

신청서를 함께 제출한 김석기 의원도 자신의 SNS에 글을 올렸다. 그는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월성 1호기의 영구 정지 결정을 내린 것은 명백한 폭거”라며 “한수원의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의 타당성과 한수원 이사들의 배임 행위에 대한 감사원 감사가 진행 중인데 원안위는 멀쩡한 월성 1호기 영구 정지를 강행했다”고 힐난했다.

그러면서 “이는 한수원 이사회 의결에 문제를 제기한 국회와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라며 “앞으로 월성 1호기의 영구 정지 결정을 반드시 철회시키고, 국민을 우롱한 이 폭거에 관련된 인물들에게 엄중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경주 시민과 함께 끝까지 맞서싸우겠다”고 밝혔다.

“비전문가가

영구정지 결정”

보수진영에서는 원안위에 대해 또 다른 문제제기를 했다. 과연 원안위원들이 원전의 안전성을 전문적으로 확인할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인 것이다.

보수진영 일각에서는 “7000억 원을 들여 개보수한 월성 1호기를 5:2로 영구정지를 결정했다. 이 사람들(원안위원)을 보라. 원전과 아무런 관련도 없는 의대 교수, 행정학 교수, 변호사 등 이 정부의 충신들이 이러한(월성 1호기 영구정지) 결정을 내렸다”면서 비난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일부 보수 카카오톡 단체방, SNS 등을 통해 공유‧확산하고 있다.

실제 원안위의 전문성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인 4기부터 바뀌었다. 4기의 강정민 위원장은 원자핵공학 석사와 시스템양자공학을 전공한 전문가였지만 대표적인 탈(脫)핵 인사다. 현재 5기 엄 위원장은 당초 원안위 출범 때부터 경력을 쌓았지만,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다.

그동안 원안위원에 잔뼈가 굵은 전문가가 많이 포진돼 있었다면, 현재의 원안위는 전문성이 가장 떨어진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사회복지학의 엄 위원장과 행정학의 장보현 사무처장이 이끌고 있다. 비상임위원 중에는 원자력 전공자가 이병령 위원 한 명뿐이다. 김재영 위원은 의대 교수, 김호철 위원은 법학을 전공한 변호사다. 장찬동 위원은 지질환경과학화 교수, 진상현 위원은 환경 에너지정책을 전공한 행정학부 교수다. 금속공학을 전공한 이경우 위원도 있다. 화학공학을 전공한 한은미 위원은 지난 9월 임기만료로 떠났다.

보수진영의 우려에도 원안위는 원안위원들이 모두 전문성을 갖출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전문적인 검토는 원자력안전기술원(KINS)에서 진행한 뒤 위원회로 안건을 올리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르다. 원자력안전기술원의 검토와 결정에만 의존한다면 원안위가 있을 필요가 없다는 지적이다. 또 결함이 발생하더라도 원안위원들이 핵심을 꼽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우려는 실제로 발생될 여지가 크다. 원안위 역대 회의록에는 “제가 전혀 전문가가 아니어서 궁금해지는 사항인 것 같기는 하다”, “저희 같은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보았을 때” 등의 표현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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