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한 교수
신용한 교수

"훌륭한 상품이 많이 팔리는 것이 아니라 많이 팔리는 상품이 훌륭한 것이다.” 휴대용 게임기 시대를 연 닌텐도 게임보이를 제작한 요코이 군페이의 말이다. ‘시장만능주의’를 주장한 것이 아니라, 시장의 중요성과 소비자 중심적인 사고를 강조한 말이다. 

선거철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국민의 뜻에 따르겠다. 민심은 천심이다.”라는 말의 잔치가 난무하는 것은 필시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게 ‘정치 소비자’인 유권자 즉, 국민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 중요한 ‘국민의 뜻’을 바로 알기 위해서는 먼저 ‘시장’ 즉, ‘민심의 판’이 어떻게 변해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선결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처럼 군중이 밀집하는 집회도 없고 시장통에 삼삼오오 모여 한가롭게 정담을 즐기는 아날로그적인 정서도 없어진 세상에 어떻게 민심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까?

현대 선거는 미디어 선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70대 어르신들도 TV는 기본이고 ‘유튜브’로 대변되는 모바일 SNS를 통한 1인 미디어까지 소통과 교감의 수단으로 굳어진 지 오래다. 

새로운 미디어 수단의 활용 정도는 개인차가 있지만, ‘정치 소비자’인 국민 모두가 거의 본능적으로 새로운 형태의 미디어를 받아들이고 활용하는 게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민심의 장이 SNS 미디어로 옮겨갔고, 정치인이면 누구라도 온라인상에서 민심을 얻으려고 열을 올리고 있다. 그 과열된 정도가 지나치다 보니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내용이 주를 이루고, 소위 ‘가짜뉴스’도 판을 치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추세를 반영해서인지 각종 사회현상이나 논쟁거리, 중요한 정책 결정사항 등에 사전 여론조사를 통해서 시민들의 반응을 살피고 정책 및 의사결정에 참고하는 경우가 점점 더 증가하고 있다. 특히 모바일이나 SNS를 통한 여론조사 및 활용은 정치나 경제뿐만 아니라 분야를 막론하고 날로 더 늘어나는 추세다. 

여론조사라는 ‘무작위의 마술’에 의문을 나타내는 목소리도 많이 있지만 ‘민의(民意)’를 가장 잘 파악하는 수단으로 인식이 굳어진 지 오래다. 하루가 멀다 하고 여론조사가 발표되고 온라인을 통해 퍼날라지면서 여론이 형성되기도 일쑤다. 오죽하면 ‘여론조사’가 아니라 ‘여론조성’이라는 비아냥까지 나오는 지경이다. 

이 ‘무작위 마술’ 결과물에는 그 경계선에 늘 “포퓰리즘”이라는 독버섯이 도사리고 있다. 정책의 현실성이나 가치판단, 옳고 그름 등 본래의 목적은 등한시하고, 국민의 인기에만 영합하여 목적을 달성하려는 포퓰리즘은 여론조사를 가장 든든한 우군으로 두고 있다. 

일단 선심성 정책을 내세워 국민의 환심을 유도하고 지지도를 이끌어 낸 다음, 그 지지도를 기반으로 원하는 결과물을 도출하고 악의적인 목표를 쟁취하려는 때에도 언제나 그 배경에는 ‘민의(民意)’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여론조사 결과가 든든히 받쳐주고 있다. 

지도자들이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할 때 포퓰리즘에 근접한 정책적 목표를 정당화하고 합리화하는 수단으로 ‘민의’를 왜곡하거나 악용할 유혹에 빠지기 쉬운 세상이 된 것이다. 더구나 SNS 미디어에 쉽게 직관적인 반응을 보이는 국민들이 급증한 요즈음엔 그 악용의 유혹은 더 커져만 간다. 

이번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선거법이나 공수처법을 통과하는 데에도 ‘여론조사’는 여지없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였다. 특정 집단의 목적만을 위하고 주도세력의 파워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많이 팔리는 상품이 훌륭한 것이다.”를 악용하면 곧 시장만능주의 즉, ‘여론조사 만능주의’로 빠지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여론조사 만능주의’ 그 한복판에 서 있는 것은 아닐까.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으로 돌아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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