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례한국당 기획부터 작성, 보고, 유출까지 어떻게 진행됐나

[일요서울 | 이기우 언론인] 자유한국당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대응법으로 '비례한국당'을 만들겠다고 선언하면서 후폭풍이 거세다. 일요서울은 지난해 9월 복수의 한국당 의원들의 말을 종합해 “한국당 ‘페이퍼컴퍼니 비례정당’ 검토 내막”이라는 기사를 최초 보도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포함한 선거제 개편안이 의결되면 한국당이 비례대표 의석을 상당수 빼앗길 수 있다고 보고, 유권자로부터 정당 득표수를 많이 확보할 수 있는 정당을 창당해야 한다는 게 핵심이었다. 그로부터 3개월 뒤 한국당은 비례자유한국당 창당을 공식화했다. 그렇다면 비례대표용 위성정당 창당 검토에서 창당하기까지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선거법 개정안에 반발하고 있다. [뉴시스]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선거법 개정안에 반발하고 있다. [뉴시스]

-본지 단독보도 9월부터 비례한국당 창당 물밑작업 ‘진행’

자유한국당에서 ‘비례한국당’ 창당 주장이 나온 것은 게임의 룰인 선거법 개정안 등을 두고 여야 간 협상을 벌일 당시인 지난해 6월이다. 당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 ‘위성정당’ 등이 창당될 수밖에 없다는 문제를 지적하기 위해 거론됐다. 

정유섭 의원 처음 거론, 물밑에선 ‘공식화’하자

정유섭 한국당 의원이 처음 ‘위성정당’을 거론했다. 정 의원은 지난해 6월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소위원회에서 “1당·2당이 비례대표 갖지 못하게 되면 당연히 위성정당을 만들 것 아닙니까”라며 “인위적으로 위성정당을 만들어서 ‘우리 비례대표는 이 당을 찍어라’ 이렇게 선거 과정에서 그런 위험성이 나타나는 문제를 정확하게 지적해 주셔야 된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26일 전체회의에서도 장제원 한국당 의원은 “위성정당이 생기고 비례정당이 출현해서 민심을 왜곡한 단합된 꼼수가 난무하는, 총선이 교란되고 민심이 왜곡되는 결과가 나올 가능성에 대해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도 인정했다”며 위성정당 출현 가능성에 대해 경고했다. 

이후 한국당 의원들 사이에서는 정유섭 의원이 거론한 ‘페이퍼컴퍼니 비례정당’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의견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점차적으로 확산됐다. 준연동형 비례대표 도입 등 선거법 개정안에 대한 협상력 카드로 사용하면서도 선거법 개정안이 본회의 통과 가능성이 높다며 공식적으로 논의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실제 지난해 8월 말 용인시 중소기업인력개발원에서 열린 ‘2019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연찬회’ 때에 한국당 의원들이 삼삼오오 모인 자리에서 ‘비례한국당 창당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비례한국당 창당에 대한 의원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창당에 무게를 두는 의원들과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 의원들로 나뉘었던 것이다. 

창당에 힘을 실은 한 의원은 “한국당은 비례대표 의석수를 더 확보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동률이 적용되면 비례대표 의석수를 잃을 수밖에 없다”면서 “페이퍼컴퍼니 한국당 창당해, 총선 때 정당 득표율을 올리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의원은 “총선 이후 한국당과 합당해 정국 주도권을 쥘 수도 있다”며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의원들이 페이퍼컴퍼니 한국당에 대한 의견을 심도 있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당 차원에서 공식 논의를 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이 자리에서 특히 ‘비례한국당 창당’ 방안에 대한 이야기도 오갔다. 당시에는 전희경 한국당 비례대표 의원 등을 한국당에서 출당 시키고, 쌍둥이 정당인 ‘비례한국당’ 에 보내자는 의견이 거론됐다. 총선 이후에는 한국당과 통합하면 된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반면, 비례창당에 힘을 실은 의원들과 달리 비례정당에 미온적 태도를 보이는 의원들도 있었다. “국민적 여론이 좋지 않을 수 있다. 하나의 선거법 개정안 협상카드로는 사용해야 한다”며 부정적 의사를 드러냈던 것이다. 당시 한국당 당직자 및 보좌진들 사이에서 비례한국당 창당을 놓고 갑론을박이 한창이었다.  

비례정당 창당 카드 협상용, 4+1협의체 흔들었으나 실패

그러나 선거법 개정안의 본회의 처리가 임박하자 구체적인 대응책으로 검토됐다. 특히 한국당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약점을 부각시키며, 4+1(더불어민주당, 바른미래당, 정의당, 민주평화당, 대안신당) 협의체를 흔들었다. 

실제 비례한국당을 창당할 경우 내년 총선에서 범보수 진영이 국회 의석수 과반을 확보할 수 있다는 민주당 문건을 김재원 한국당 의원이 공개했다. 한국당 정책위의장인 김재원 의원은 “민주당도 비례대표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의) 내부 보고서”라고 말했다. 

비례위성정당 관련 검토자료‘라는 제목의 이 문건에는 선거법 개정을 가정한 총선 시뮬레이션 결과가 있었다. 현행 지역구 253석, 비례 47석을 유지하되 비례 의석 중 최대 30석에 지역구 득표를 50% 수준으로 반영하는 방식을 적용했다. 

민주당과 한국당, 정의당의 득표율을 각각 40%, 35%, 10%로 가정했을 때 각 정당은 지역구에서 120석, 105석, 0~2석을 받을 것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비례대표로는 각각 8석, 7석, 15~17석을 받을 것으로 예상했고, 민주당과 한국당은 연동형에서 의석을 전혀 따내지 못하고 병립형에서만 의석을 받을 것으로 봤다.

그러나 한국당이 비례한국당을 만들어 지지자들에게 정당 투표는 그쪽에 하도록 유도하는 ‘비례한국당’ 전략을 채택할 경우 상황은 달라진다. 비례대표 의석 가운데 비례한국당이 30석, 우리공화당이 7석, 새로운보수당이 5석을 차지할 것으로 보고서는 전망했다. 범진보로 분류되는 정의당에서는 8~9석의 추가 의석이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 득표율은 민주당이 40%, 한국당이 0%, 비례한국당이 35%, 우리공화당이 5%, 새보수당이 5%, 정의당이 10%를 확보한다 는 전제에서다. 결국 범여권은 최대 145석을 갖고, 범보수 진영이 152석으로 과반을 확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동시에 비례정당 창당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도 대외적으로 공개했다. 김재원 정책위의장은 “발기인 200명을 모았다. 창당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발기인 200명이 우선 창당 준비위원으로 등록하면, 그 다음 단계는 시·도당 5개 이상을 만드는 것”이라며 “당원 1000명 이상씩 다섯 군데 시도당을 창당하면 중앙당으로 등록할 수 있다. 실질적으로 창당 절차가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 발언에 대해 한국당 내에서는 더불어민주당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부정적인 만큼, 한국당과 협상하자는 시그널을 보낸 것이라는 해석도 있었다. 
그러나 여야 4+1 협의체가 선거제 개정안을 둘러싼 진통 끝에 합의안을 도출했다. 협의체 합의안의 골자는 국회의원 의석 구성을 현행의 ‘지역구 253석·비례대표 47석’으로 유지하고, 정당득표율의 연동률은 50%로, 연동률 적용 의석수(cap·캡)는 30석으로 제한하기로 한 것이다.

비례자유한국당 당명, 불출마 의원 이적 거론

한국당이 4+1 협의체 공조 파괴와 선거제 개정안 본회의 통과를 막는 데 실패하면서 결국 비례대표 창당 수순을 밟게 됐다. 21대 총선을 겨냥한 비례정당 명칭은 ‘비례자유한국당’으로 정했다. 

실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한국당은 지난 2일 오후 ‘비례자유한국당 창당준비위원회 결성신고서’를 제출해 정식 창당 절차에 들어갔다. 창당준비위 구성 후엔 5개 이상 시, 도당과 각 1000명 이상의 당원을 확보하면 창당할 수 있다. 한국당 관계자는 “1월 중 창당 절차를 완료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초 한국당은 ‘비례한국당’을 원했으나 일요서울이 지난해 9월 ‘쌍둥이 정당 창당 검토’ 보도가 나간 뒤 10월 다른 사람이 선관위에 등록해, 당명을 ‘비례자유한국당’으로 결정했다. 

다만 창당과정에서 명칭은 언제든지 변경이 가능하다. 정당법에 따르면  ‘정당 명칭은 이미 사용중인 명칭과 뚜렷이 구별돼야 한다’며 유사 정당 명칭 사용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관위 관계자는 “비례자유한국당 명칭 사용 여부는 중앙선관위 최고의결기구인 전체위원 회의에서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한국당 내에서는 현역 의원 일부가 비례자유한국당으로 당적을 옮겨 기호 앞 번호를 받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정당 기호 순위는 국회 다수 의석순이라는 점에서, 비례자유한국당 소속 현역 의원이 정의당 의원 6명보다 많으면 기호 5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비례자유한국당으로 의원 30여 명이 옮겨가 원내 3당을 만들면 한국당은 지역구 투표용지에서 기호 2번을, 비례자유한국당은 비례대표 투표(정당투표)용지에서 두 번째 칸을 차지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럴 경우 불출마를 선언한 의원들이 비례한국당으로 이적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그리고 총선 이후 비례자유한국당이 대규모 의석을 확보한다면 총선 직후 재통합 과정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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