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정부수립 이후 치러진 총선에서 70여 개에 육박하는 정당들이 나타난 이후 올해 21대 총선을 앞두고 비슷한 기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현재 등록된 정당수는 34개지만 창당 준비를 하고 있는 정당 16개를 합치면 50개의 정당이 총선에 후보자를 낼 전망이다. 더 늘어날 수도 있다.

특히 허경영당(국가혁명배당금당)이 주목을 받고 있다. 당 대표인 허씨는 15대, 17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경력이 있다. 그는 지난 2008년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피선거권을 10년간 박탈당했으나 지난 2018년 12월 복권돼 올해 총선에 출마할 수 있게 됐다. 당시 죄목은 ‘박근혜 한나라당 후보와 결혼’을 주장해 명예훼손 혐의로 실형을 선고 받았다. 

허경영당 공약은 그야말로 ‘공약’(空約) 수준이지만 일각에서는 ‘통쾌하다’, ‘시원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대표적인 공약으로 ‘수능시험 폐지’, ‘국회의원 100명 축소’, ‘출산 시 500만원 제공’, ‘결혼시 1억 제공하고 주택자금 2억원 무이자 제공’ 등을 담고 있다. 

이처럼 기행을 일삼고 실현 불가능한 공약을 내세운 허씨의 당에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 다음으로 예비후보자가 많이 몰렸다. 1월9일 현재 145명이다. 지역도 한곳에 몰려 있는 게 아닌 전국에서 후보자를 내고 있다. 물론 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된 이후 군소정당이 3% 이상 득표를 할 경우 의석수를 가져갈 수 있는 선거환경이 한몫하고 있다. 

그런데 정치권에 몸담은 지 20년 다 돼 가는 필자 입장에서 허경영당이 국민들과 언론으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당혹스럽다. 이는 곧 현 제도권 정당이 얼마나 국민들로부터 불신을 받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국민 코미디언 고 이주일씨는 국회의원직을 마치고 떠나면서 “국회에 나보다 더 웃긴 사람이 많다”고 말해 쓴웃음을 준 바 있다. 14대 국회의원이던 이 씨는 이순재, 최불암, 강부자 씨와 함께 연예인 국회의원 전성시대를 열었다. 이는 곧 13대 국회가 얼마나 국민들로부터 조롱과 멸시를 받았는지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21대 총선을 앞두고 이보다 더 안좋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단순히 선거법 개정 탓으로 돌리기에는 허한 면이 있다. 여야가 서로 타협은 안 하고 죽기살기로 싸우고 한줌의 지지층에 기대어 다수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급기야 패스트트랙 몸싸움으로 동료 의원들끼리 고소.고발이 난무하는, 국민들은 안중에 없는 동물정치가 크게 한몫하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4.15총선마저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여야 간 적대정치는 더 심해지면 심해졌지 완화될 기미는 보이질 않는다. 만약의 경우지만 허 씨가 연동형비례대표제로 인해 금배지를 달고 국회에 입성할 경우 상상해 보자. 국민들은 새롭게 시작하는 21대 국회에서 허 씨를 목도하며 또 얼마나 조롱과 멸시를 보낼지는 명약관화하다.

이 또한 정치인들의 업보일 수 있지만 한국정치가 그동안 얼마나 후진적으로 작동됐는지를 보여주는 국제적인 망신 사건이 될 수 있다. 이제라도 20대 국회의원들은 상식과 예의,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로 품격 있는 정치를 보여줘야 한다. 

정치가 아무리 권력을 잡기위해 이판사판에 올 오어 낫띵 (all or nothing) 게임이라고 할지라도 정도를 지켜야 한다. 허 씨가 금뱃지를 달고 국회 본회의장 단상에 올라 기존 정치인들에게 ‘일성’을 가하는 장면을 속시원하게 바라보는 국민들이 없도록 정치권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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