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검장·지검장 ‘건너뛰고’ 부장검사-평검사 인사 올인전략

윤석열 검찰총장 [뉴시스]
윤석열 검찰총장 [뉴시스]

 

  
[일요서울 | 황기현 기자] 수족(手足)을 모두 잘라냈다. 곁에서 힘을 보태주던 참모들이 줄줄이 좌천돼 홀로 남았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이야기다.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지난 8일 오후 이른바 ‘윤석열 사단’을 사실상 해체하는 검찰 인사를 단행했다. 법무부는 이날 열린 검찰 인사위원회에서 대검검사급(검사장) 간부 32명을 승진·전보하는 인사를 발표했다.

부장검사 정권 수사 의지와 평검사 ‘정의감’ 기대 정면승부
‘강골’ 윤석열 “각자 자리서 할 일 해 달라” 당부

이번 검찰 인사는 ‘학살’에 가까운 수준이라는 게 세간의 중론이다. 윤 총장과 함께 ‘청와대 선거개입·감찰무마’, ‘조국 전 법무부장관 가족 의혹’ 등을 수사하던 인물들이 대거 교체됐다. 먼저 조 전 장관 가족 관련 의혹과 청와대 감찰무마 의혹 수사를 지휘하던 한동훈 반부패강력부장이 부산고등검찰청 차장검사로 전보 조치됐다. 청와대 선거개입 의혹을 수사하던 박찬호 공공수사부장은 바다 건너 제주지방검찰청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 당시부터 윤 총장과 호흡을 맞춰왔던 이두봉 과학수사부장은 대전지검장으로, 노정연 공판송무부장은 전주지검장, 문홍성 인권부장은 창원지검장으로 모두 지방 전보됐다. 윤규근 총경 비리 사건과 우리들병원 특혜 대출 의혹 사건 등을 지휘한 조상준 대검 형사부장은 서울고검 차장으로, 검찰 자체 개혁안 마련과 수사권 조정 작업을 이끌어 온 이원석 대검 기획조정부장은 수원고등검찰청 차장으로 인사 조치됐다. 윤 총장과 막역한 사이로 검찰 내 대표적인 ‘특수통’인 윤대진 수원지검장은 사법연수원 부원장에, 배성범 서울중앙지검장은 법무연수원장에 각각 보임됐다.

尹 사단 떠난 자리엔…親文 인사

‘윤석열 사단’이 떠난 자리는 ‘친문’으로 평가받는 인사들이 채웠다. 핵심 요직인 서울중앙지검장은 참여정부 시절 특별감찰반장을 지낸 이성윤 법무부 검찰국장이 임명됐다. 법무부 검찰국장 자리는 조남관 서울동부지검장이 채운다. 조 지검장 역시 문 대통령이 비서실장일 당시 민정수석실 행정관을 지낸 바 있다. 또 반부패·강력부장에는 추미애 장관 인사 청문 준비단 대변인을 맡았던 심재철 서울남부지검 1차장이 보임됐다. 대검 공공수사부장에는 배용원 수원지검 1차장이 임명됐다. 법무부는 인사 발표 이후 “특정 부서 중심의 기존 인사에서 벗어나 그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던 일선 우수 검사들을 적극 중용했다”고 자평했다. 그러면서 “특정 인맥과 출신, 기수에 편중되지 않고 인권 친화적 자세, 검찰개혁 의지 등 직무 자질을 기준으로 공정하고 균형 있게 평가함으로써 인사의 합리적 기준을 제시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법무부의 자화자찬과는 다르게 ‘살아 있는 권력’ 수사의 핵심 인물들을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으로 전보 보낸 것은 좌천성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검찰 개혁’을 위한 것이 아닌, 청와대를 향한 검찰의 칼끝을 부러트리려는 보복성 인사라는 비판이다. 특히 추 장관이 윤 총장의 의견을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검찰 인사를 단행했다는 이른바 ‘패싱’ 논란도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일련의 조치가 윤 총장의 자진 사퇴를 요구하는 묵언의 압박이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추 장관은 ‘가장 형평성 있고 균형 있는 인사’라고 선을 그었다. 추 장관은 검찰 인사 다음날인 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중요 사건 수사하던 분들이 전부 바뀌었다. 공교롭게 특히 친노·친호남 인사로 (그 자리가) 채워졌다’는 정갑윤 자유한국당 의원의 질의에 “그렇지 않다”며 “지역안배·기술안배를 했다”고 대답했다.

秋 “검찰총장이 명 거역”

또 ‘검찰과 사건 협의가 없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검찰총장이 제 명을 거역한 것”이라고 강하게 질타했다. 추 장관은 “대통령의 인사 권한에 대해 한 사람 한 사람 의견을 내겠다는 것은 법령상 근거가 없는 인사권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어 “검찰총장이 법령·관례에도 없는 요구를 했다”고 주장했다. ‘인사위원회 30분 전에 총장을 집무실로 오라고 한 건 통보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인사위 30분 전 뿐 아니라 전날도, 그 전날도 의견을 내라고 했다”라며 “인사위 이후에도 얼마든지 의견 개진이 가능하다고 모든 일정을 취소한 채 6시간을 기다렸다”고 설명했다. 그는 “검찰총장은 제3의 장소에서 인사의 구체적 안을 가지고 오라고 법령에도 있을 수 없고, 관례에도 없는 요구를 했다”며 “의견 개진을 한다면 (장관) 집무실에서 진행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추 장관은 또 “1시간 이상 전화 통화를 통해 의견을 내라고 했다. 절대 요식행위가 아니었다”라고 덧붙였다.
이낙연 국무총리 역시 윤 총장을 향해 “검찰청법이 정한 법무부 장관의 의견 청취 요청을 검찰총장이 거부한 것은 공직자의 자세로서 유감스럽다”며 “법무부 장관은 검찰사무의 최고 감독자로서 잘 판단해 이번 일에 필요한 대응을 검토하고 실행하라”고 지시했다. 추 장관에 이어 이 총리가 공개적으로 윤 총장에 대한 유감 표명을 한 것은 향후 징계나 자진 사퇴 절차를 밟게 하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 같은 논란에 대해 청와대 측은 “윤석열 총장에 대한 불신임 그런 것은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尹 “해야 할 일 했다”

윤 총장은 수족이 잘려나간 상황에서도 덤덤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윤 총장은 검찰 인사 발표 후 대검찰청 간부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을 했다”며 “맡은 자리에서 각자 열심히 해 달라”고 격려와 당부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윤 총장은 이날 저녁 식사 자리에서 참모들에게 이같이 당부했다고 한다. 대검 한 간부는 “인사나 수사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다”며 “무거울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지만 침체된 자리는 전혀 아니었다”라고 설명했다. 이날 자리에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열심히 일했고 인사가 나면 따를 뿐’, ‘각자 맡은 자리에서 늘 해오던 대로 일하자’는 취지의 발언이 오간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 제기한 윤 총장의 자진 사퇴도 당분간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진행 중이던 주요 수사 담당자들이 모두 교체돼 차질은 불가피하지만, 윤 총장이 건재한 이상 수사는 계속된다는 것이다. 검찰 내부에서 워낙 ‘강골’로 평가받는 윤 총장인 만큼 맡은 수사는 마무리 지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실제로 검찰 내부에서는 “윤 총장의 기조는 ‘수사로 말하자’는 것이다. 대검 참모진 몇 명이 바뀐다고 검찰이 바뀌지는 않는다”는 내부 결속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박철완 부산고검 창원지부 검사는 검찰 내부망에 “이번 고위직 인사는 그 과정과 내용 모두 낯설다. 검사 인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 또는 집단에 대해 수사하다가 이번처럼 ‘싫다’는 뜻이 뚜렷하게 담긴 인사가 이뤄졌을 때 검사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라는 물음을 동료들에게 던졌다. 김준규 전 검찰총장 역시 자신의 SNS에 “민주주의 국가가 맞느냐”며 “개발도상국이나 독재국가에서도 이렇게는 안 한다. 50년을 뒤로 갔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민주화 세력이 민주주의를 망가뜨린다. 국민을 우습게 보고 나라를 망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검찰 내부 결속할까

윤 총장이 이처럼 들끓는 검찰 내부를 결속, ‘친문’으로 평가받는 새 간부들을 건너뛰고 일선 부장검사·평검사들과 직접 소통하며 수사를 지휘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번 인사로 오히려 부장검사 이하에서 ‘제2의 윤석열’이 대거 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검사들의 ‘자존심’을 건드린 법무부의 인사안이 역풍을 불러올 것이라는 관측이다. 윤 총장 본인 역시 지난 2013년 국가정보원 대선 여론조작 및 정치개입 의혹 수사팀장을 맡아 국정원 직원들의 집을 압수수색하고 일부를 체포했다가 직무 배제 조치된 바 있다. 이후 지방 한직을 전전하던 윤 총장은 문재인 정부가 집권한 뒤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복귀했다.
윤 총장의 사례를 직접 지켜본 부장검사·평검사들의 ‘정의감’과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 의지가 청와대 감찰무마 의혹과 조 전 장관 가족 비리 의혹 수사 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법무부가 설 연휴 전에 부장검사·평검사도 대폭 물갈이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수사 실무를 담당해 온 이들이 대폭 바뀔 경우 방대한 양의 사건 기록을 처음부터 검토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윤 총장도 이러한 상황을 잘 안다는 듯 검찰 간부들에 대한 대규모 좌천성 인사 발표 다음날 곧바로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과 관련, 대통령 직속 위원회를 압수수색했다. 사퇴는커녕 이번 인사에 굴하지 않고 수사를 끝까지 이어가겠다는 뜻을 드러냈다는 해석이다. 지난 9일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2부(김태은 부장검사)는 정부서울청사 내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2018년 지방 선거 당시 고문단 활동내역 등 관련 자료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압수수색은 공공병원 등 송철호 울산시장의 공약이었던 울산시 현안 사업이 균형발전위에서도 검토된 정황을 파악함에 따라 이뤄졌다. 청와대에서 각종 선거 관련 지원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는 송 시장은 선거를 준비하던 지난 2017년 12월 균형발전위 고문으로 위촉됐다. 당시 고문단에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김두관 민주당 의원 등 여권 인사들이 참여했다. 검찰은 송 시장이 공약 수립과 이행에 도움을 받았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묵묵부답 檢…윤석열 신년사에 ‘주목’

검찰은 이번 인사에 공식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총장이 제 명을 거역했다’는 추 장관의 강도 높은 비판에도 묵묵부답이다. 다만 윤 총장은 앞서 신년사에서 “검찰 구성원의 정당한 소신을 끝까지 지켜드리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법과 원칙대로’ 수사를 진행할 수 있도록 해 주겠다던 윤 총장은 과연 어떤 행보를 걷게 될까. 적어도 ‘식물 총장’만은 거부한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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