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싫은데…” 유서 남긴 채 목숨 끊은 32살 직원

김씨의 유서 [사진=김씨 형·보배드림]
김씨의 유서 [사진=김씨 형·보배드림]

 

[일요서울 | 황기현 기자] 갑질(甲-).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신조어다. 갑을(甲乙)관계에서의 ‘갑’에 행동을 뜻하는 접미사 ‘질’을 붙여 만든 말로, 권력의 우위에 있는 갑이 권리관계에서 약자인 을에게 하는 부당 행위를 통칭하는 개념의 단어다. 매일같이 스트레스를 받는 직장인들 사이에서 갑질이라는 단어는 급속히 전파됐고, 얼마 전에는 ‘직장갑질119’라는 공익단체까지 만들어지며 사회적으로 널리 통용되고 있다. 갑질이라는 단어가 생긴 뒤 이른바 ‘직장상사’들은 자신이 ‘갑질의 가해자’가 될까 조심하기도 한다고.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직장에서는 갑질이 이루어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지난 달 경상남도 밀양군의 한 회사에서도 직원이 상사의 갑질에 시달리고 있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유가족 “직장 갑질에 희생된 자식 억울함 풀어달라”
회사 “유족 주장 사실과 다른 부분 있어”

한국화이바 특수선사업부에서 근무하던 김모(32)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은 지난 달 9일 오전 8시경이다. 김씨는 지난 2013년부터 2019년까지 무려 6년을 이 회사에서 근무했다. 입사 이후 쭉 철도사업부에서 일하던 고인은 지난 2017년 특수선사업부로 이동했다. 김씨가 휴대전화 메모장에 유서를 남긴 것은 사망 5일 전인 4일이었다. 당시 그는 “책임을 질 수 없어 떠납니다. 죄송합니다”라며 “너무 힘들었어요. 마지막까지 죽기 싫은데 어쩔 수 없는 선택인거 같아요. 가족들, 여자친구한테 미안해지네요”라는 내용을 적었다.
문제는 그 다음 부분이었다. 김씨는 “XXX과장 차 좀 타고 다니세요. 업무스트레스도 많이 주고”라면서 “하, 이 글을 적고 있는데도 무서워서 죽을 용기는 안 나네요. 몇 번 시도해보면 되겠죠”라고 했다. 사망자가 유서에 직접적인 죽음의 원인이 된 인물을 적어놓은 것이다. 유서를 확인한 유가족은 김씨가 직장갑질에 시달리다 죽음을 선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고인이 같은 부서 과장의 출퇴근 때 차량을 태워주는 일명 ‘카풀’을 강요당했으며, 업무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지적했다. 기숙사에서 생활하던 김씨는 부산에 집을 두고 기차로 출퇴근하던 과장을 밀양역이나 삼랑진역에서 태워 출근했다. 고인과 과장이 나눈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면 과장은 오전 6~7시경과 오후 10~11시경을 전후해 출퇴근길 카풀을 요구했다. 대화 내용에서 과장은 ‘미안한데 내일 회사 좀 일찍 가자’, ‘역으로 좀 태워줘’, ‘조금만 일찍 나와라. 부장님 보고 때문에’, ‘내일 밀양역에 일찍 올 수 있나? 본부장님이 일찍 출근 하라네’, ‘삼랑진으로 오는 거 맞지’, ‘월요일 삼랑진 부탁하자’, ‘밀양역으로 몇 시 까지 올려?’ 등 수차례 카풀을 요구했다. 메시지를 받은 김씨는 ‘네 밀양역으로 갈까요?’, ‘7시 5분까지 가면 될까요?’, ‘15분 안으로 가겠습니다’ 등으로 답변했다.

유가족 “회사-기숙사 19분 거리인데 매번 40분 돌아가”

고인의 형은 “동생이 사는 기숙사에서 회사까지는 11km로 차로 19분 거리”라면서 “그런데 과장 때문에 삼랑진역을 거칠 경우 무려 39km, 40분을 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퇴근할 때도 데려다 줘야 하니까 왕복 22km거리를 80km가량 가야하는 것”이라면서 “이건 정상적인 카풀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형에 따르면 회사 측은 이를 정상적인 카풀이라고 주장하며 김씨를 나약하고 무책임한 직원으로 호도하고 있다고 한다. 형은 “더 이상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증거와 정황이 명확히 나와 있는데도 공식적인 사과조차 없는 회사다”라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경찰은 유서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7시간 만에 수사 종결을 종용했다”며 “키우던 개XX가 죽어도 일주일은 수사 하는데 제 동생이 죽었는데 7시간 만에 수사를 종결하려 했다”고 분노를 드러내기도 했다.
유가족은 사망 한 달여가 지난 지금까지도 장례를 치르지 못 하고 있다. 김씨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달 17일 유가족은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휴대전화에 상사로부터 갑질을 당해왔음을 알 수 있는 유서가 있는데도 경찰이 제대로 된 수사를 하지 않고 단순 변사로 사건을 종결했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상사와 주고받은 메시지를 보면 상사의 개인 기사처럼 출·퇴근을 시켜왔다”면서 “유서에도 언급돼 있다. 문자메시지, 메신저 대화 등을 보면 직장 갑질이 도를 넘어 극심한 스트레스가 됐음이 분명하지만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라고 비판했다.

“고인 힘들어해 사직서 냈었다”

고인의 주변인들도 김씨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증언했다. 고인의 형이 공개한 통화 내용에서 직장 동료 A씨는 “용이 형 입장에서는 저희(철도 사업부)가 편했을 거다. 저희랑 다 잘 지내고 일도 이제. 그만큼 힘들어하는 게 거기(특수 사업부)서부터 보였다”고 이야기 했다.  그러면서 “특사부는 사람이 막 나갔다. 정확하게는 모르는데 사람이 막 빠져나가니까 뽑기는 뽑아야 되는데 신입사원을 뽑으면 일을 하나도 못 하지 않느냐. 그러니까 이제 특사부에서 저희가 아무래도 돈을 많이 못 버니까 저희가 좀 지위상 약하다. 그래서 (특사부) 상사가 일을 잘하는 애 대리급으로 보내라 우리가 데려다 쓰게. 그래서 차출 당해서 (특사부로 갔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특사부로 가서 너무 힘들다는 이야기 항상 했었다”라면서 “다시 데려오고 싶어 했는데 특사부에서 보내주지 않았다. 일을 시킨 게 많아서 사직서를 냈는데 ‘니가 지금 나가면 우리한테 좀 안 좋게 얘기가 나가니까 케어를 해줄 테니까 좀 더 버텨봐라’라면서 사직을 안 시켜줬다고 들었다”고 했다. 고인의 여자친구 B씨도 “혼자 쩔쩔매는 그런 느낌이었다”라면서 “주차, 주유비 한 번 준 적 없다. 셔틀 운행하는데 굳이 남자친구 차를 타겠다고 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회사 측 “괴롭힘이 어느 범위까지인지 모르겠다”

회사 측은 직장 갑질에 대해 부인하는 분위기다. 회사 관계자는 김씨 형과의 대화에서 “유족들이 가슴 아파하는 것도 알고 있고, 회사와 제가 보고 들은 바로는 협의되기 전에는 상을 안 치르고 그런다고 그래서 어제부터 컨택을 했다”며 “생각을 하고 계시는 거 하고는 또 다른 부분들이 또 있다. 직장 괴롭힘을 당했다는데 제가 보는 관점에서는 괴롭힘이 어디 범위까지인지 모르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 “고인도 잘한 부분은 업무적으로 진행하면서 많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어 경남도민일보에 “한 달 중 10여 차례 함께 출·퇴근을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강제성은 없었다”면서 “오히려 A씨가 업무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 가해자로 지목된 상사가 도와주는 일이 잦았다. 팀원 전체와 논의를 해봤지만 업무가 과중한 것은 아니었다. 김씨가 원한다면 다른 보직이나 부서로 인사발령을 내주겠다고 했지만 당사자가 고사했었다”고 해명했다. 일요서울 측은 회사의 해명을 직접 듣기 위해 연락을 취했지만 ‘책임자가 부재중이다’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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