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걱정에 ‘파병’ 문제까지···韓 ‘이러지도 저러지도’

이라크서 열린 솔레이마니 장례식. [뉴시스]
이라크서 열린 솔레이마니 장례식.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미국과 이란의 갈등이 심상치 않다. 지난 3일(현지시간) 미군의 이라크 바그다드 국제공항 공습으로 이란 혁명수비대 정예군을 이끄는 거셈 솔레이마니 사령관 등이 숨지며 양국 간의 긴장이 고조됐다. 이란은 혁명수비대가 지난 8일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이라크 아인 알아사드 공군기지 등에 지대지 탄도 미사일 수십 발을 발사해 보복 공격을 감행했다. 이 때문에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 카드까지 꺼내들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한국은 원유 수입 제한, 호르무즈 해협 파병 문제 등 정치‧사회‧경제 분야에서의 다양한 문제에 직면하게 됐다. 물론 미국과 이란이 일촉즉발 위기 속에서 확전을 경계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어 직접 대결 상태는 벗어났다. 그러나 미국과 이란이 ‘치킨 게임’을 하면서 충돌할 가능성은 남아 있어 우리 정부는 사태를 예의주시하는 상황이다.

직접 대결 상태벗어났지만 치킨 게임충돌 가능성

미국과 이란이 이라크 땅에서 무력 공방을 벌이면서 이번 사태가 고조됐다. 첫 타격은 미국이 시작했다. 미국이 지난 3일 이란 혁명수비대 정예군 쿠드스군의 거셈 솔레마이니 사령관을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드론 공습으로 살해했다. 이란은 보복조치로 지난 8일 이라크 내 미군기지 2곳에 미사일을 발사했다. 미국에 비해 열세로 평가됨에도 말이다. 그러나 이란은 미사일과 드론, 사이버전 역량 등 상당한 비대칭 전력을 보유한 나라다.

이란 국영 매체는 보복 공격으로 미군 80명이 사망했다고 주장했으나, 미국 언론들은 미국 국방부 관계자를 인용해 미국인 사상자는 없었다고 보도했다. 이후에도 미국과 이란의 갈등은 더욱 고조됐으나, 일촉즉발의 위기 속에서 확전을 경계하는 태도를 보여 사태는 일단락된 모양새다. 그러나 양국이 치킨 게임을 하면서 충돌할 가능성은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8일 가디언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금은 물러섰지만 이란과의 치킨게임이 끝나려면 아직 멀었다제하의 분석 기사를 통해 미국과 이란 모두 전쟁을 원하고 있지는 않지만, 최대 압박과 보복 충동은 그들이 충돌할 여지가 남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가디언은 이란이 가지고 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면서, 혁명의 아이콘인 거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정예군 쿠드스군 총사령관이 미국의 공습으로 사망한 이후 이란 정부는 대담하고 인상적으로 보일 필요가 있었다고 분석했다. 보복 공격으로 미국인 80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한 것도 이런 까닭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역시 전통적인 강경 보수당과 협력하고 있으나, 대선을 앞두고 전면전을 벌이는 것은 부담일 수밖에 없다고 봤다. 미국의 부통령국무장관 등은 모두 이란 공습을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대국민 연설을 통해 이란에 군사행동 대신 경제제재를 가하겠다고 한 것은 미국의 부담을 반증한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이란의 보복은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가디언은 내다봤다.

중동 핵 도미노우려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 핵협정(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을 지난 2018년 탈퇴한 뒤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를 늘려왔다.

국제사회와 이란은 지난 2015JCPOA를 체결해 이란은 핵무기에 쓰일 수 있는 고농축 우라늄 개발을 포기하고 서방은 이란 제재를 해제하기로 한 바 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이 비밀리에 핵미사일 개발을 지속하면서 중동 영향력 확대를 시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란은 이에 맞서 핵 활동을 점차 확대해 오다가 미국의 솔레이마니 사살을 계기로 지난 5JCPOA 이행 전면 중단을 선언했다. 이 때문에 이번 사태가 핵 위기로 치닫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중동 국가의 일명 핵 도미노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정상률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지난 8일 일요서울에 이란이 (JCPOA) 탈퇴한다는 얘기는 협상 자체를 완전 원점으로 돌리겠다’, ‘없는 걸로 하겠다는 건데, 그 얘기는 2가지(가능성)로 생각한다. 하나는 핵 무기 개발을 시도하겠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트럼프 정부가 요구하는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 협상을 미국과 다시 하겠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나는 그렇게 두 가지로 판단한다면서 이스라엘은 핵을 가지고 있고, 사우디는 핵을 가지고 있진 않지만, 핵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가는 것 같다. 원전의 경우에는 겉으로 포스트 오일시대에 대비하는 것 같지만, 원자력에 대한 기술 습득 의도가 있지 않을까 본다. 이렇게 되면 결국 핵 도미노로 확산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반응은?

이번 사태는 특히 한국에 많은 위기 상황을 안겼다. 이란이 주요 산유국에서 생산된 원유가 세계로 뻗어나가는 관문인 호르무즈 해협봉쇄 카드를 꺼내들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유가 위기, 나아가 파병 문제로까지 번졌기 때문이다. 특히 국내 경제 쪽으로는 정유와 석유화학 업계 우려가 가장 컸다. 국내 주요 정유 4사는 원유 70%를 중동에서 수입하기 때문이다. 전 세계 유조선 단위로 봤을 때는 3분의 1가량이 지나는 중동산 원유의 핵심 수송로가 바로 호르무즈 해협이다. 이 때문에 해협이 봉쇄될 가능성을 대비해 우리 정부는 대책을 찾느라 분주한 모양새다.

파병 문제도 심각하다. 호르무즈 파병을 둘러싼 미국의 압박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한미 동맹 차원에서 파병을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이란과 쉽게 척을 질 수도 없다. 최악의 상황에서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는 이야기다.

정 교수는 “(파병은) 국가 이익을 생각하면서 판단해야 한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이 안보위기경제위기인데 미국이 (파병을) 요구하면 안 들어줄 수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선택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라며 이라크 전쟁 때도 파병 요구를 해, 국내에서 논란이 많았지 않느냐. 결국 공병 중심(비전투병)으로 파병 등 여러 명분으로 시간을 끌어 잘 지나갔지만, 이번 같은 경우는 어려운 상황이 많기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미국-이란 사태를 보고 킬러 드론때문에 긴장할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일명 드론 포비아(무인기 공포증)’에 빠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지난 7일 공장 건설 현장을 방문하며 킬러 드론 위협에 굴하지 않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같은 행보는 김 위원장이 북한 내 방공망 등에 자신감을 갖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또 이번 사태가 첫 번째가 미국의 은밀한 드론 공격이었다는 점에서 향후 북한에 대한 최고위도 미국의 표적이 되지 않을까라는 가능성도 나왔다.

정 교수는 그러나 “(이란과 북한은) 상황이 좀 다르다. (특히) 미국이 북한을 선제공격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과, 이란 쪽에 공격해서 얻는 이익과는 차이가 있다. 또 여러 가지 지정학적으로 볼 때도 북한은 러시아중국과 딱 붙어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선제공격은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면서 다만 트럼프는 예측불허인 인물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태로 북한이 잘못된 교훈을 얻었다는 분석도 잇따른다. 트럼프 대통령의 동시에 두 가지 국제 안보 위기를 만들지 않는다는 것’, ‘핵보유국 지도자와는 대화를 하지만 핵무기 없는 나라는 공격한다는 점등이 드러나 김 위원장 뇌리에 박혔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김 위원장이 핵무기를 더욱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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