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할 일 있어…정치 1번지보다 국무총리를” 큰 꿈

[일요서울ㅣ조주형 기자] 정세균 전 국회의장이 차기 국무총리로 지명됨에 따라 정치권의 셈법도 더욱 깊어지고 있다. 앞서 문재인 정부의 이낙연 현 국무총리는 오는 4월 총선에서 ‘정치1번지’로 통하는 서울 종로구 출마가 확실시되고 있는 상태다. 왜냐하면 정 전 의장이 차기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됐기 때문이다. 지역구가 종로인 정 후보자가 국무총리로 갈 경우, 그의 지역구는 무주공산이 된다. 정 후보자 역시 이 총리 후임자로 갈 경우 다시금 자신의 입지를 탄탄히 다질 수 있어 큰 꿈을 위한 행보와 들어맞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정세균 국무총리 후보자가 지난해 12월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로비에서 기자들이 몰린 가운데 총리로 지명된 소감을 밝히고 있다. [뉴시스]
정세균 국무총리 후보자가 지난해 12월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로비에서 기자들이 몰린 가운데 총리로 지명된 소감을 밝히고 있다. [뉴시스]


-개헌론 띄우기 “총선 후 협치 내각…헌법 고쳐야” 이슈 선점

앞서 정세균 전 국회의장은 지난해 12월17일 청와대로부터 차기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되자 “제가 전직이기는 하지만 국회의장 출신이기 때문에 (총리직 수락이) 적절한지에 대한 많은 고심을 했다”면서 “국민을 위해서 할 일이 있다면 그런 것은 따지지 않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하는 판단으로 지명을 수락했다”고 밝혔다. 정 후보자는 이날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총리 후보자 지명에 대한 입장을 이같이 밝혔다.

정 후보자는 이날 “우리 국가가 안팎으로 매우 어려운 시기에 총리라고 하는 중책에 지명돼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면서 “국민에게 힘이 되는 정부가 될 수 있도록 혼신의 노력을 다할 작정이다. 경제 살리기와 국민 통합에 주력할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번 총선에서 종로구 출마 계획을 생각했는지, 총리직 수락 배경 등에 대해서는 “당과 협의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공식화는 안 됐으나 종로에서 3선 도전할 생각이었는데 총리설이 계속 흘러나와서 그것은 적절치 않다는 생각을 했었다”고 답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 일각에서는 정 후보자가 언급한 ‘국민을 위해 할 일’이라는 발언이 정 후보자가 대권에 도전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을 의미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정 후보자의 지역구인 ‘종로구’는 대권 도전을 위한 행보에 앞서 그간 정치 경력을 감안하더라도 계속 깃발을 꽂고 싶은, 구미가 당기는 지역구라는 평가가 줄을 잇는다. 6선 중 2선을 달성한 데다 ‘정세균의 도시’로 불릴 만큼 탄탄한 정치적 텃세를 유지하고 있어 철옹성이라는 평가도 있다. 이 같은 지역구를 떠나 그가 국무총리직 지명을 수락했다. 그 배경과 향후 행보, 총선 이후 상황 등에 대해 알아봤다.
 

차기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정세균 전 국회의장. [뉴시스]
차기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정세균 전 국회의장. [뉴시스]


아무리 둘러봐도… 호남의 정세균뿐?

현재 정 후보자를 둘러싼 주변 상황은 정 후보자에게 다소 유리한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앞서 친문 그룹의 핵심이었던 김경수 경남도지사는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에 연루돼 대권을 바라보는 잠룡으로서의 이미지를 실추한 상태가 됐다. 이재명 경기도지사 역시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아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또한 위력에 의한 추행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게다가 문재인 정권 초반기 민정수석 비서관을 역임하며 법무부장관까지 올랐지만 그 과정에서 요란한 파열음을 일으켰던 조국 전 장관도 ‘선거 개입 및 감찰 무마 의혹’이 불거짐에 따라 구치소를 오가는 모습을 보이게 된 상황이다.

이처럼 PK(부산·영남) 지역 등의 잠룡급 후보들이 모두 물먹고 있는 상황에서 호남 유망주들의 기세가 연일 치솟아 오르고 있다. 바로 전라북도의 정 후보자와 전남도지사 출신의 이 총리다. 이들 모두 호남에 연을 두고 있는 인물로, 정부 요직을 경험 중이다.

권력의 심장부를 둘러싸고 있었던 차기 경쟁자들이 모두 고전 중인 가운데, 특히 정 후보자는 이 총리로부터 국무총리직을 넘겨받게 될 경우 풍부한 국정 경험을 토대로 더욱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한 셈이 됐다. 이 총리에 이은 그야말로 ‘호남 대망론’의 서막이 오른 모양새다.
 

차리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정세균 전 국회의장. [뉴시스]
차리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정세균 전 국회의장. [뉴시스]


정세균, 총리 지명 수락…왜

앞서 정 후보자는 ‘종로에서 3선에 도전할 생각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종로’라는 특별한 지역구를 등에 안고 도전하겠다는 생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무총리로 셈법을 바꿨다.

이를 두고 정치권 일각에서는 그가 국무총리를 통해 대권 후보로 거듭나고자 하는 과정을 이 총리의 사례를 통해 미리 내다본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 총리가 대권 후보로 거명되는 데에는 그가 ‘국무총리’라는 직책을 수행한 것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라는 정계의 분석도 힘을 보탰다. 정 후보자 역시 이를 포착하고 재빠르게 종로구 출마를 포기, 절차탁마의 심정으로 차기 국무총리직 지명을 수락한 것으로도 비춰질 수 있다.

게다가 정 후보자는 이 총리가 갖고 있는 치명적인 단점도 비교적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바로 故 노무현 탄핵 사태 당시 당적 등에서 결이 다르다는 것이다.
정 후보자는 과거 열린우리당에서 활동한 바 있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5년, 정 후보자는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를 수행했고, 그해 치른 10.26 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이 패배했지만 임시 당의장을 맡기도 했다. 이듬해인 2006년부터는 약 1년간 참여정부의 산업자원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직을 맡는 등 노무현 정부로부터 관복(官福)을 받기도 했다.

반면 이 총리의 경우 참여정부 출범 당시 대통령 취임사 준비위원회 위원 등으로 생사고락을 함께할 듯했으나, 노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당시 열린우리당으로 당적을 옮기지 않고 계속 민주당에 끝까지 남아 있는 등 정 후보자와는 다른 행보를 보인 바 있다. 이 차이점으로 말미암아 이 총리가 정 후보자에 비해 친노-친문 그룹으로부터 다소 거리감이 있는 인물로 보일 수 있다는 세간의 평가도 무시할 수 없다.

또한 정 후보자와 달리 이 총리는 추가적인 약점을 노출한 상태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의 친구’라는 점이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견인차 역할을 했으나 이 총리에게는 이 같은 역할을 뒷받침해주는 존재가 없다. 바로 이 점이 정 후보자와 이 총리가 차별화된 지점이다. 정 후보자의 경우, 노 전 대통령이 몸담았던 정당의 ‘핵심 축’이었다는 점이 바로 이 총리와 결정적으로 비교되는 부분일 수 있다.

이 총리가 색깔 또한 명확하지 않다 보니 콘크리트 지지층 또한 정 후보자에 비해 강도가 약한 것 아니냐는 일각의 평가도 나온다. 만약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이 하락하는 국면에서는 그가 문 정권의 국무총리였다는 점에서 앞으로 그의 행보에 걸림돌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이와 달리 정 후보자의 경우 이미 노 전 대통령이 몸담았던 정당의 ‘핵심 축’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친노 그룹 등으로부터 외면 받을 가능성은 이 총리보다 덜하다는 세간의 평가도 나온다.

한편 정 후보자 입장에서도 이 총리가 열악한 조건 속에 국무총리를 역임하면서 친노-친문 그룹으로부터 지지받아 상쇄시켜 왔다는 점은 정 후보자가 국무총리직 지명을 수락하게 만드는 매력 포인트로 작용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지난 2012년 민주당 대선 경선에 당시 문재인 후보와 정 후보자가 함께 등장했는데, 당시 문 후보는 정 후보자를 향해 ‘괜찮은 사람인데 대선 주자로 왜 뜨지 않았을까’라는 등의 의미심장한 덕담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 후보자가 주요 당직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반응이 다소 조용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정 후보자는 이 총리의 국무총리직 수행 후 대선 주자로 거명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충분히 구미가 당길 만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낙연 국무총리. [뉴시스]
이낙연 국무총리. [뉴시스]


“총선 후 협치 내각 구성”…정세균의 속뜻은?

‘호남 대망론’의 한 축이 된 정 후보자는 총선 이후 상황에 대한 큰 그림 또한 그린 것으로 보인다. 그 동안 그가 강조해 온 ‘개헌론’을 띄우기 시작한 것이다.
정 후보자에 대한 국무총리 인사청문회는 지난 7일부터 국회에서 시작됐다. 이날 치러진 청문회에서 정 후보자는 “총선 후 협치 내각을 대통령께 건의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가 제시한 ‘총선 후 협치 내각’의 정체에 대해 일각에서는 ‘이원집정부제’ 아니냐는 관측이 쏟아지고 있는 상태다. 황장수 미래경영연구소장은 8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정 후보자가 전날 언급했던 ‘총선 이후 협치 내각 구성’이라는 워딩은 총선이 끝난 후 여러 정당이 참여하는 이원집정부제적 개헌을 하겠다는 뜻과 같다”는 분석을 내놨다.

앞서 정 후보자는 지난해 12월19일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 등에서 “정치를 바꾸기 위해 국가 기본법인 헌법을 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밝힌 바 있다. 그간 정 후보자는 의원내각제보다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주장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주장하는 이원집정부제는 대통령이 국방·외교·통일 등 외치를, 국무총리는 행정 등 내치를 맡는 분권 형태의 정부 운영제도다.

이를 두고 황 소장은 “지난해 12월 말 통과된 ‘준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만 18세 선거권’을 골자로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으로 이번 선거에서 전체 의석 수 중 2/3까지 확보된 상태에서 이원집정부제로 바꾸면 대통령은 형식상 남고 실제는 총리가 권력을 분점하게 되는 형태가 된다”고 말문을 열었다.

황 소장은 이어 “야권이 역대 최약체로 평가 받고 있는 상황에서 이원집정부제를 통해 야권 인사들도 장관직을 나눠 갖게 된다면, 오히려 여러 정치권력이 분점하는 형태가 나타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정 후보자와 가까운 의원들 사이에서 지난해 연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선거법 개정안 등으로 인한 극한 대치를 걱정하는 국민여론을 등에 업고서 개헌 정국으로 돌입하는 것 아니냐는 예측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며 “정 후보자는 이미 국회의장 시절에도 개헌을 역설한 바 있는데, 그가 총리가 되고 나면 반드시 개헌론을 화두로 던질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그동안 정 후보자가 주장했던 ‘개헌론’의 불쏘시개 역할로 작용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황 소장은 또한 “이 같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따른 개헌론은 위성정당 등이 정치권 내 들어서면서 다당제를 구성하게 된 상황에서 이들에 대한 내각 참여 기회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올해 총선이 끝나면서 오는 대통령 선거 사이, 특히 올해 총선 직후부터 대선을 치르기 1년 전까지가 ‘골든타임’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개헌론까지 나오는 것을 보면 정 후보자는 잠재적 경쟁자들이 물러난 상황에서 이 총리의 선례를 통해 총선 이후 상황에 대한 대비까지 한 것으로 보인다. 정 후보자 역시 총리 지명 수락을 통해 지역구를 떠나 더 큰 꿈을 꾸겠다는 것으로 비춰지는 모양새다. 그의 ‘호남 대망론’이 과연 현실화될 것인지를 두고 정 후보자의 향후 행보에 여권은 촉수를 곤두세우고 있다.
 

차기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정세균 전 국회의장. [뉴시스]
차기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정세균 전 국회의장.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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