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앞두고 일본 탈출...종착지는 '레바논'
곤 前회장, 고향 품에 안기나

카를로스 곤 닛산 전 회장 [뉴시스]
카를로스 곤 닛산 전 회장 [뉴시스]

[일요서울 | 양호연 기자]카를로스 곤(Carlos Ghosn, 이하 곤) 전 닛산 회장의 일본 탈출극에 전세계 이목이 쏠렸다. 일본에서 연봉 축소신고 혐의로 보석 중이었던 가운데 레바논으로 출국했고, 얼마 후 레바논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일본 정부와 일본의 사법제도를 비판했다. 일본에서 곤 전 회장은 해외 출국이 금지된 상태였던 만큼, 일본 검찰은 곤 전 회장의 탈출과 함께 도쿄 주거지에 대한 압수수색을 펼쳤다. 여기에 이례적으로 새벽 기자회견을 열어 곤 전 회장의 행태를 간과할 수 없다고 강력 대응했다.

카를로스 곤 전 닛산 회장, “닛산이 공모해 나를 희생양으로 삼았다”
日, “용납 안 돼...일본 형사사법제도 아래 공정한 법원 판단 받아야”


카를로스 곤 전 닛산자동차 회장이 지난 8일(현지시각) 일본에서 도주한 이후 처음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곤 전 회장은 현지시각 오후 3시(한국시간 오후 10시)에 세계 각국의 50여개 매체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자회견을 열었다. 곤 전 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자신은 “인신공격(character assassination)의 희생자”라고 주장했다. 닛산에 대한 르노의 영향력 제거를 위해 일본 검찰과 닛산이 공모해 자신을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금전비리로 자신을 기소한 근거가 없다고도 덧붙였다. 곤 전 회장은 “죄가 있어서 도망친 것이 아닌 공정한 재판을 받을 가능성이 전혀 없기 때문에 도망친 것”이라며 “일본에선 변호사도 없이 하루 8시간 조사 받으며 자백을 강요받았다”고 주장했다.

日사법 제도, 인권침해
정당한 재판 위한 선택


곤 전 회장의 수난은 2011~2015년 유가 증권보고서에 자신의 소득을 축소 신고하고, 그 외 닛산 투자자금과 경비를 개인 용도로 부정 지출한 혐의 등으로 2018년 11월 일본 검찰에 구속 기소되면서 부터다. 이후 보석과 재구속을 수차례 반복하다 지난달 말 보석 도중 레바논으로 도주한 것이다. 곤 전 회장은 자신의 혐의에 대해 모두 근거가 없다는 입장이다. 닛산이 지출한 자금은 모두 정당한 것이고, 소득을 낮게 신고한 것은 구속될 만한 사유가 아니라는 것이다. 

곤 전 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기소가 정치적으로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모든 혐의에서 결백하며 무혐의를 입증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곤 전 회장은 “일본 사법 제도에서 유죄 선고율은 99.4%에 이르며 이는 외국인에게 더 높다”며 “일본 사법 제도에서는 기본 인권이 지켜지지 않아 정당한 재판이 이뤄질 수 없어 일본 탈출은 나와 가족을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도주를 택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는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 기꺼이 재판을 받겠다”고 답변하면서도 프랑스로 가는 것보다는 레바논에 남아있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레바논 민병대 관여 의혹
악기 케이스에 숨어 탈출?


일본과 레바논, 프랑스 언론 등의 외신들은 그가 일본에서의 출국 과정에서 ‘악기 케이스’에 숨어 탈출했다고 보도했다. 곤 전 회장이 레바논 시민권을 가지고 있고, 곤 전 회장의 부인이 레바논 출신인 만큼 수주 전부터 레바논으로의 탈출을 준비했다는 것. 그러면서 부인과 함께 자가 비행기로 터키 이스탄불을 거쳐 레바논에 입국했다고 내다봤다. 

일본 언론은 곤 회장의 탈출에 레바논 민병대가 관여한 의혹도 제기됐다고 전했다. 해당 민병대가 악단으로 가장해 곤 전 회장 자택을 방문했고 악기 케이스에 곤 전 회장을 숨겨 빠져나갔다는 주장이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곤 전 회장은 오사카(大阪)의 간사이(關西)공항을 통해 출국한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상황에서 곤 전 회장은 탈출 과정을 직접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다. 도리어 어떻게 탈출했는지 등에 대해 말할 계획이 없다며 선을 그었다.

불법 출국·허위사실 유포
日정부, “간과할 수 없어”


곤 전 회장의 기자회견에 일본 정부는 이례적으로 새벽 기자회견을 열어 곤 전 회장의 기자회견에 강하게 반발했다. 그러면서 곤 전 회장의 불법 출국을 용납할 수 없다고 덧붙이는 등 불쾌감을 드러냈다. 모리 마사코 일본 법무상은 기자회견을 통해 “불법 출국은 어느 나라의 제도에서도 용납될 수 없는 행위”라며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국내외를 향해 일본의 법 제도와 운용에 대해 잘못된 사실을 고의로 퍼뜨리는 것은 도저히 간과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곤 피고인이 주장하려는 것이 있다면, 일본의 형사사법제도 아래 공정한 법원의 판단을 받을 것을 강력히 바란다”고 덧붙였다. 

일본 도쿄지방재판소(법원)는 곤 전 회장 보석을 취소하고 총 15억 엔의 보석보증금을 몰수하겠다는 입장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은 국제형사경찰기구(ICPO)에 신병구속을 요구하는 국제수배를 요청했지만, 일본과 레바논은 범죄인인도조약을 맺고 있지 않아 사실상 성사 여부는 불투명하다는 게 여론의 시각이다. 일본의 사법 제도가 인권 원칙에 위배됐기에 떠날 수밖에 없었다는 곤 전 회장의 입장과, 형사재판 그 자체로부터 도피했다는 일본 정부의 입장이 극명히 엇갈리는 시점에서 앞으로 나아갈 사건의 향방이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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