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 [CJ ENM]
봉준호 감독 [CJ ENM]

 

봉준호 감독은 지난해 10기생충으로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후 한 미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영화가 오스카 후보에 단 한 번도 오르지 못한 이유에 대해 "오스카는 로컬(지역 시상식)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미국 영화가 세계의 중심이라는 오만한 인식을 비꼰 것이다.

그랬던 그가 지역 시상식인 아카데미에 기생충을 출품, 작품상은 물론 개인적으로 최고의 영예인 감독상 최종 후보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아카데미 심사위원들이 감독의 일침에 뜨끔했기 때문이어서일까.

그럴 리 만무하다. ‘기생충이 예술적인 면은 물론이고 흥행적인 면에서도 헐리우드 영화들과 비교해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 외국 영화이기에 그저 손님 대접하려는 게 아니다. 아카데미가 전통적으로 권위적이고 여성, 유색 인종, 외국 영화들을 푸대접하기로 유명하긴 하지만 그래도 칸 영화제를 비롯해 각종 영화제와 시상식에서 두각을 나타낸 기생충을 그냥 무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기생충을 국제영화 부문은 물론이고, 작품상 후보에까지 슬쩍 넣어주는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봉 감독이 감독상을 받든, ‘기생충이 작품상을 받든 아카데미는 과거에도 그랬듯이 앞으로도 지역 시상식으로서의 면모를 굳건히 지킬 것이다.

이는 이번 92회 후보작의 면면을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감독상 후보 부문이 좋은 예다. 영화 리틀 우먼으로 유력한 감독상 후보로 지목됐던 그레타 거윅의 이름은 없었다. 감독상 후보에 오는 여성은 단 한 명도 없다. 지난해 여성들이 감독한 수작들이 즐비했는데도 말이다.

아카데미에서 여성으로 감독상을 받은 사람은 캐서린 비글로우가 유일하다. 8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그는 허트 로커아바타를 감독한 전 남편 제임스 카메론을 제치고 대망의 감독상을 거머쥐었다.

그러나 그게 다였다. 92년 역사의 아카데미에서 감독상 후보에 오른 여성은 단지 5명 뿐이라는 사실이 보여주듯, 아카데미에서 여성이 감독상 후보에 오르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날 감독상 부분 최종 후보자를 발표하던 아이사 레이는 후보자가 모두 남자라는 사실에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저 남자들에게 축하한다고 비아냥대는 멘트를 남기기도 했다.

아카데미상 수상작품 선정은 먼저 각 부문의 아카데미 회원들이 투표로 후보작품을 뽑은 다음, 다시 아카데미 회원 전원이 투표로 수상작품을 최종결정하게 된다. 지난해에는 회원의 32%가 여성이었다. 해마다 증가하고 있음에도 여성 감독들이 푸대접을 받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감독상 후보자를 선정할 심사위원단에 여성의 수가 남성에 비해 턱없이 적기 때문이라는 게 미국의 한 유력 매체가 내린 결론이다. 그러니까 심사위원단의 여성 점유율이 남성에 비해 비슷하거나 넘지 않는 한 여성 감독 차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말이다.

시대착오적 발상처럼 보이겠지만 보수적인 아카데미라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그래서 아카데미에 대한 봉 감독의 지역 시상식발언은 맞다. 미국 중심, 남성 중심, 백인 중심. 이게 아카데미의 정체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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