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에서 박무진 환경부 장관은 국회의사당 폭발 사건으로 대통령이 사망하고 국무위원 중 유일하게 생존한 뒤 승계서열에 따라 졸지에 대통령 권한 대행직을 맡은 후 대행직을 훌륭하게 소화하며 국민의 지지 속에 대통령 출마를 준비하고 있었다. 출마하면 당선되는 것은 거의 확실시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돌발 사건이 터진다. 국회를 폭파한 청와대 테러 내부공모자가 한주승 실장이라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에 박무진은 대통령 출마 여부를 놓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결국 그는 대통령 선거 30일을 남겨놓고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박무진은 “테러 사건에 일조한 내부공모자가 우리 행정부 청와대 비서진에 있다. 그 행정부 권한대행인 저 역시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설명한다. 그리고는 남은 30일 동안 묵묵히 대통령 권한대행의 업무를 완수한 뒤 일반인으로 돌아간다.

이 드라마는 현실 정치에 대한 깊은 여운을 남기며 개인의 사욕을 위해 다수를 희생하려 하는 나쁜 정치에 대해 좋은 정치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책임정치에 대한 교훈을 주기도 했다. 

정치드라마 ‘보좌관2-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 역시 책임정치라는 화두를 던진 드라마였다.

마지막 회에서 송희섭 법무부 장관은 비리 혐의로 구속 위기에 처한 성영기 회장에게 “내가 살아야 회정님도 살릴 게 아니냐. 몇 년 뒤 특별사면으로 풀려나게 해주겠다”며 성 회장을 구속시키며 자신을 향한 의혹을 차단하려고 한다. 

송 장관이 의원이었던 시절 그의 보좌관이었던 드라마 주인공 장태준은 당시 법무부 장관을 위증죄로 자리에서 물러나게 만든 방식으로 송 장관의 위증 사실을 밝혀내며 그를 재판에 넘기는 데 성공한다.  

이후 장태준은 기자회견에서 자신을 둘러싼 의혹을 인정하며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의원직을 내려놓겠다”고 전격 선언한다. 책임정치를 실천한 것이다.

지난해 한 현직 국회의원은 형별로 위협하는 정치가 나쁜 정치라는 사마천의 말을 인용한 뒤 “그보다 더 나쁜 정치는 국민을 분열시키고 갈등시키고 서로 싸우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대한민국 국민은 둘로 나뉘어 머리 터지게 싸우고 있으며 민생과 경제, 북핵과 멀어져 가는 한미, 한일관계네 대해서는 관심도 없다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선거에서 누가 이기든, 대한민국은 망해 가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의 말대로 대한민국은 여야를 떠나 비정상이 정상이 되는 정치가 횡행하고 책임정치는 실종됐다.  

책임정치를 근본적으로 파괴하는 정치꾼들은 창당, 탈당, 합당, 분당을 선거철만 되면 반복한다. 

4월 총선도 예외는 아닐 것 같다. 정치꾼들은 명분도 원칙도 없는 이합집산을 모색하고 있다. 정당정치의 개념조차 모르는 자들이 이리저리 몰려다니고 있다.

구약 성경에 유대인의 유일신은 온갖 죄악에 빠진 소돔과 고모라에 의인 10명만 있으면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아브라함과 거래한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의인 10명을 끝내 찾지 못했고, 소돔과 고모라는 결국 처참하게 무너진다. 

‘내로남불’식 나쁜 정치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비양심적 정치인이 판을 치고, 마땅히 책임져야 함에도 그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는 철면피 정치인이 활개를 치고 있는 게 우리나라 현실이다.

비록 드라마이긴 하지만 우리나라에도 박무진, 장태준과 같은 정치인 10명 만이라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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