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연구, 동물실험에 불과…맹신해선 안돼"

[뉴시스]
[뉴시스]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개 구충제 펜벤다졸에 이어 아스피린이 항암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최근 미국의 시티 오브 호프 연구소는 아스피린이 대장암 세포를 자연적으로 사멸하도록 유도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러한 연구 결과를 국내에서도 일부 언론이 보도하면서 아스피린 관련어가 실시간 검색어에 올라오고 SNS, 유튜브 등에 항암 효과 관련 게시글 및 영상이 게재되면서 관심이 뜨겁다.

일각에서는 아스피린이 제 2의 ‘개 구충제 사태’를 유발할 수 있다며 동물실험 결과를 입맛대로 해석하는 일을 자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스피린, 대장암세포 자살 유도" 연구 결과에 이목 쏠려
전문가들 "임상 시험 안 한 만큼, 연구 과정 더 지켜봐야"

최근 미국의 시티 오브 호프 연구소가 아스피린이 대장암 세포를 자연적으로 사멸하도록 유도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4종류의 대장암 세포주(cell line)로 대장암을 유발시킨 쥐들에 3가지로 용량을 달리해 아스피린을 투여 후 3일, 5일, 7일, 9일, 11일째 되는 날에 대장에 발생한 종양을 분석했다.

 
그 결과 투여량으로 나눈 4개의 그룹에 아스피린을 투여한 후 종양의 크기를 분석했는데, 아스피린을 투여하지 않은 쥐들과 비교해 투여한 쥐들의 암세포 자연사멸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즉, 아스피린의 복용과 '암세포의 자살'이 연관됐다고 주장한 것이다.
 
누리꾼들 사이에서도 아스프린 성분 중 하나인 알벤다졸이 기생충의 포도당 흡수를 방해해 에너지 생성을 억제하는 방식으로 구충 효과를 이끌어 내 항암을 비롯한 비염, 치핵, 당뇨 등의 효과가 있다는 주장이 거론된 바 있다.
 
대장암 잡으려다 위까지 망칠 수도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이 자칫하면 아스피린 오·남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번 연구가 사람에 대한 것이 아닌 쥐를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 제대로 된 임상시험으로 볼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8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의 전화 인터뷰에 출연한 국립암센터 기모란 교수는 동물실험과 임상시험의 차이점을 설명하며 아스피린이 대장암 치료제로 쓰이는 일에 우려를 표했다. 기 교수는 "이 연구 결과로 아스피린이 대장암 치료 효과가 있다고 볼 순 없다"며 "쥐에서 암 조직이 조금 줄어들었다는 것이지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특히 "더 중요한 것은 이번 연구는 쥐를 이용한 실험 연구이지 대장암에 걸린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 시험 연구가 아니다"며 "동물 실험에서 효과를 보였던 굉장히 많은 약들이 실제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해보면 효과가 없거나 부작용이 커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동물 실험에서 아스피린과 같이 암 치료에 탁월한 효과를 보였던 약들은 사람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임상시험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동물실험과 달리 효과가 없는 경우는 물론, 현재 사용되는 암 치료제에 비해 효과가 미미하거나, 부작용이 큰 경우가 매우 많다.

아스피린의 대표적인 부작용은 뇌출혈 및 위궤양 출혈이다. 밑져야 본전 식으로 암 치료 도중 아스피린을 과다 복용했다간 오히려 치료에 방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아스피린이 심혈관 질환을 앓았던 환자들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 예방약으로 사용하고 있듯이 위내 출혈 같은 부작용이 생길 수 있어 과장해석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미확인ㆍ허위정보에 무방비 

 
아스피린 연구 결과에 대한 여론의 반응은 앞서 논란이 된 ‘개 구충제 사태’와 매우 유사하다. 지난해 미국 오클라호마에 사는 한 남성의 기적적인 암 극복 사례가 큰 화제가 됐다. 조 티펜스라는 60대 남성은 2016년 말 소세포폐암 진단을 받았고 이듬해 1월엔 암세포가 간과 췌장, 위 등 전신에 퍼져 3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한 수의사의 제안으로 개 구충제 '펜벤다졸' 임상시험에 나섰고 3개월 뒤 암세포가 깨끗이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해당 영상은 전 세계에 퍼지며 암 환자들에게 한 줄기 희망이 됐다. 한국에서는 실제 해당 제품을 구매하고, 해당 약이 동나는 품귀 현상도 벌어졌다.
 
지난해 9월23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공식 입장을 내 "'펜벤다졸'은 사람을 대상으로 효능·효과를 평가하는 임상시험을 하지 않은 물질"이라며 "안정성과 유효성이 전혀 입증되지 않았다"고 우려를 표한 바 있다.
 
식약처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펜벤다졸에 대한 인기는 들끓었다. 특히 '폐암 4기'를 고백한 개그맨 김철민이 구충제를 복용하는 모험을 하겠다고 전하며 더욱 화제가 됐다. 폐암 말기로 온몸과 뼈로 암이 전이된 상태인 김철민은 "가짜뉴스여도 (펜벤다졸을) 믿고 먹어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대장암 치료를 위해 아스피린 복용을 고려하고 있다면 반드시 이를 담당 주치의에게 알려야 한다. 아스피린의 효능이 검증된 심혈관 질환 치료에 사용되는 경우에도 부작용이 뒤따르는 만큼, 충분한 상담을 거친 뒤 복용할 것을 권장한다. 
 
펜벤다졸 임상시험 추진 한다더니, 안하나 못하나?
 
지난해 11월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펜벤다졸이 개 구충제이고 임상시험이 암을 대상으로 시행되지 않았다고 해 판매금지되고 심지어 수입금지되는 현 상황에서 암으로 고통받고 있는 환자들은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으려 한다"며 "정부가 나서 임상시험을 진행해달라"고 호소했다.
 
이러한 사회적 요구에 따라 보건복지부 산하 기타공공기관인 국립암센터 임상시험센터에선 펜벤다졸을 포함한 구충제의 항암효과를 확인하기 위해 임상시험을 추진했으나 준비단계에서 효과가 없다고 판단해 계획을 취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흥태 국립암센터 임상시험센터장은 9일 뉴시스를 통해 "연구자들이 모여 임상시험 필요성에 대해 2주간 검토했지만 근거나 자료가 너무 없어 하지 않기로 했다"며 "유튜브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논문도 검토했지만 근거가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암세포 골격을 만드는 세포 내 기관을 억제해 암세포를 죽이는 것으로 알려진 펜벤다졸의 항암 효과가 90년대 만들어진 1세대 세포 독성 항암제 용도와 같다"며 "지금은 3세대 항암제까지 시대"라고도 강조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