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장비임에도 ‘저속 주행’ 차량 번호판 식별 불가

방범용 CCTV. [뉴시스]
방범용 CCTV.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방범(防犯)은 범죄가 생기지 않도록 미리 막는다는 뜻이다. 범죄 예방, 범인 검거 등을 위해 설치된 ‘방범용 CCTV’가 제 기능을 못 한다면 국민들은 CCTV를 신뢰할 수 있을까. ‘사생활 침해’ 논란이 과거부터 계속해서 일었지만 ‘범죄예방 효과’, ‘중요사건 해결에 결정적인 역할’ 등을 한다는 이유로 CCTV가 늘어나는 추세다. 설치비용도 만만치 않다. 1대 당 1000만 원 꼴이다. 최신식 CCTV 1대 가격은 500만 원 정도이지만 설치비, 통신료, 전기료 등 제반 비용을 합하면 1000만 원 이상이 들어가는 것이다. 일요서울은 유명무실 지적이 잇따르는 방범용 CCTV에 대해 집중 추적해 봤다.

1대당 1000만 원꼴···지자체들 앞다퉈 ‘교체‧확대’ 혈안

vs

“옛날 디지털카메라급 화질···어둡다고 안 보이면 그게 방범용인가”

#1 최근 A씨는 서울에 위치한 한 골목에서 지인과 대화를 나누던 중 저속 주행하는 차량 백미러에 팔꿈치를 부딪혔다. 쓰러질 정도의 사고는 아니었지만 팔이 충격으로 흔들렸다. A씨와 지인은 놀라며 차량을 지켜봤다. 정차할 줄 알았던 차량은 유유히 골목을 빠져나갔다. 당황한 A씨는 새벽시간대라 우선 집으로 귀가했다. 기상 후 팔의 통증을 느낀 A씨는 병원에서 진단을 받고 다시 사고 현장으로 향했다. 다행히 그곳에는 방범용 CCTV가 있었다. 증거 확보가 될 것이라 생각한 A씨는 경찰서에 방문해 사건을 접수했다. 며칠 후 CCTV 자료가 확보됐으니 경찰서에 방문하라는 경찰의 얘기를 듣고 A씨는 범인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경찰은 CCTV 자료를 다루는 법조차 몰랐고, 핵심 증거 등이 CCTV에 잘 잡히지도 않았다. 방범용 CCTV와 경찰을 믿었던 A씨는 뒤늦게 현장에 방문해 인근 차량 블랙박스를 확보하려 했지만 이미 사고 당일 영상들은 없어진 상태였다.

#2 B씨는 지난해 주거침입 범죄로 큰 화를 입을 뻔했다. 스토킹을 이어가던 남성이 주택 대문을 열고 안까지 들어온 것. 남성이 집 안까지 들어오는 대담함(?)을 보이진 않았으나 B씨는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왔을 때는 이미 남성이 도망간 상태였다. 그러나 경찰은 도주 경로 등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범용 CCTV는 살펴보지 않은 채 주택 내 자체적으로 설치한 CCTV만 살펴봤다. 골목 어디선가 숨어 지켜볼 가능성이 있는 범인에 대한 추적을 이어가지 않은 것이다. 결국 경찰은 남성을 잡지 못했다.

사생활 침해 논란에도

늘어나는 CCTV

지속된 사생활 침해 논란에도 불구하고 CCTV는 늘어나는 추세다. 서울시만 보더라도 설치된 CCTV는 5만5000대(지난해 7월말 기준‧황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국정감사 자료)가 넘는다. 이 중 방범용 CCTV는 4만6919대에 달한다.

강남구는 CCTV가 서울시 전체 10%에 육박하는 4869대, 관악구는 3116대, 은평구는 2664대, 구로구는 2642대, 성북구는 2539대 순인 것으로 조사됐다.

전국으로 봤을 때는 공공기관에서 운영 중인 CCTV는 총 95만4261대(2018년 행정안전부 자료 기준)에 달한다.

흉악‧여성 범죄들이 급증하면서 사생활 침해 논란이 무색할 정도로 CCTV를 늘려 달라는 민원이 폭주했다. 범죄 사각지대를 없애 달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A씨와 B씨 같은 사례를 겪은 이들은 CCTV가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을 내놓는다. 실제 범죄 등 사건사고가 발생했을 때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이러한 논란이 일 때마다 지자체들은 ‘최신식 장비로 교체’, ‘CCTV 대수를 늘리겠다’고 설명한다. 막대한 예산도 투입된다. 한 대당 설치비가 1000만 원에 달한다. 그러나 최신식 장비도 성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는 실정이다.

A씨는 “직접 경찰서에 방문해 CCTV 영상을 살펴보니 옛날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듯 한 느낌이었다. 360도 회전되는 최신 CCTV가 바로 밑에서 10~20km로 저속 주행하는 차량 번호판 식별이 불가하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물론 가까이 있고, 정차돼 있는 차량의 번호판은 어느 정도 식별이 가능했다. 그러나 조금만 멀어져도 식별이 안 되는 정도였다. 주행하는 차량의 번호판은 아예 식별이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 정도 성능이면 범죄 예방이 될 수 없다. 사고 발생 시간이 새벽시간대였는데 어두워서 사람 형체가 잘 보이지도 않더라. 범죄는 밤에 많이 발생하지 않는가. 어둡다고 안 보이면 그게 과연 방범용인가. 당시 내가 검정색 옷을 입고 있었는데 어두워서 옷 색깔, 옷 형태도 식별이 불가능한 정도였다. 얼굴 식별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했다”라며 “방범용이지만 사람 얼굴까지 다 식별이 가능할 정도가 되려면 돈이 많이 들 것이다. 또 사람 얼굴이 나온다 하더라도 얼굴이 비슷한 사람도 많고, 화장만 해도 못 알아볼 수 있어서 100% 식별돼야 한다고 생각은 안 한다. 근데 내가 본 장면은 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소름이 돋더라”라고 설명했다.

“이 정도로 어떻게

범인 판별하나”

A씨는 “경찰이 방범용 CCTV가 이런 차량 사고들을 보려는 목적이 아니라 강도나 도둑이 있을 때 그 사람의 인상착의 등을 판별하려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하더라. 근데 성능이 그 정도로 떨어지는데 범인을 판별하려는 용도라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또 막상 보려니까 경찰이 작동법도 모르더라. 하루이틀이면 인근 차량 블랙박스가 사라질 거 뻔히 알면서도 경미한 사고라는 이유로 늦게 조사에 나섰다. 해당 차량 번호판도 내가 추정으로 맞혔다”고 전했다.

A씨가 지적한 CCTV는 360도 회전이 가능한 100만 화소 이상의 방범용 CCTV다. 해당 구청은 방범용 CCTV 설치 위치 및 촬영 범위에 대해 ‘범죄취약지역, 반경 50M 이내’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 CCTV들의 설치 근거‧목적에 대해서는 ‘주민의 안전을 위한 범죄 예방’, ‘원활한 교통소통을 위한 불법주정차 단속’, ‘시설관리 및 재난재해 예방’, ‘기초질서 확립’ 등이라고 설명한다.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은 지난 2016년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360도 회전, 200만 화소 최첨단 방범용 CCTV를 확충했다고 홍보에 나섰다. CCTV에 대한 추가 예산도 확보했다는 말도 함께 올렸다.

전국 지자체들도 앞다퉈 CCTV 추가 설치와 화질을 높이는 추세다. 물론 CCTV가 범죄 예방과 사건 해결의 효자 노릇을 하는 경우가 실제로 많다. 그러나 A씨의 얘기처럼 최신식 장비임에도 실효성이 떨어진다면 확충을 해도 무용지물인 셈이다. 또 늘어나는 대수에 비해 관리 체계도 철저하지 않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전문가들은 무조건적으로 CCTV를 늘릴 것이 아니라 관리에 대한 가이드라인 확보, 성능 점검 등을 이어가야 한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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