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실언으로 정치권이 시끄럽다. 이 대표는 워낙에 직설적인 정치인이라 전부터 가끔 설화를 일으키고는 한다. “선천적인 장애인은 의지가 약하다고 한다”는 발언은 분명히 장애인에게 상처가 되는 실언이다. 비난 받아 마땅하다. 선거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이 대표처럼 정무감각이 뛰어난 사람이 이런 발언을 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실망스럽다.

자유한국당의 심재철 원내대표는 이해찬의 막말과 실언은 습관성이고 “울화통이 치밀어 오른다”라고 했는데, 충분히 이해가 간다. 본인부터가 몸이 불편한 사람이니 이 대표의 실언에 더 격분한 것이리라. 하지만, 이 대표의 실언을 비판하는 자유한국당의 논평도 똑같이 장애인에게 상처 주는 발언으로 구설에 올랐으니 서로가 도긴개긴이 아닌가 싶다.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서로에 대한 막말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날선 대립을 하다 보면 서로를 비난하고 욕하는 일이 예사롭게 벌어진다. 정치문화가 성숙되어야 사라질 문제겠지만 유권자 입장에서야 혀를 차고 말 일이다. 하지만 국민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실언은 서로를 저격하는 망언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철저히 책임을 물어야 할 문제다.

정치인의 실언은 다양하고 창의적이다. 정동영 의원은 17대 총선 당시에 실언의 고전이라고 할 “60대 이상은 투표하지 마라”라는 말로 본인의 정치 경력을 망쳤다. 이 발언은 탄핵 역풍으로 궤멸 위기에 있던 한나라당의 숨통을 틔워주는 혁혁한 공도 세웠다. 김무성 의원도 당대표 시절 부당한 처우를 받는 아르바이트에 대해 “인생에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해 젊은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지금까지도 이때의 실언은 정치 경력에 따라붙는다.

최근에 가장 인상적인 실언은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나온 “이부망천”이라고 할 것이다. “이혼하면 부천, 망하면 인천”이라는 말의 줄임말인데, 당시 정태옥 자유한국당 대변인이 방송에 나와 한 말이다. 이 발언은 가뜩이나 불리했던 선거에 불을 지르는 결정타가 되었다. 한국당은 인천, 부천만이 아니라 전국 대부분에서 참패를 당했고 정 의원은 탈당을 해야 했다.

정치인들은 왜 자꾸 실언을 하는가.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정치인들만 유독 대중에게 많이 노출되어 있어서 일 수도 있고, 정치인들에게 요구되는 도덕적 기준이 높아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정치인들이 권력에 취해 공감능력이 떨어져서 자신이 하는 말에 상처받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런 진단이 영 근거가 없지는 않다. 권력이 사람의 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한 아일랜드의 신경심리학자 이안 로버트슨에 따르면 승리를 통해 권력을 쟁취한 사람은 테스토스테론이라는 남성호르몬 수치가 높았다. 테스토스테론은 뇌 세포의 흥분을 전달하는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 분비를 촉진한다. 권력을 쥐게 되면 호르몬의 영향으로 짜릿함에 도취하게 된다.

다른 연구도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 애덤 갈린스키 교수는 ‘알파벳 E 실험’을 통해 권력을 가질수록 공감능력이 떨어진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갈린스키 교수에 따르면 고권력자 그룹은 알파벳 E를 자기 편한 대로 쓰고, 저권력자 그룹은 상대방이 보기 편한 방향으로 쓴다. 권력을 손에 쥔 사람은 자기중심적으로 사물을 보고 행동한다.

국회에는 “아무리 좋은 사람도 6개월이면 변한다”라는 격언이 있다. 항상 겸손하고, 언제나 반갑게 맞아주던 사람이 배지 달더니 다른 사람처럼 변하더란다. 이건 그 의원 잘못이 아니다. 호르몬 때문이다. 권력은 호르몬 분비작용으로 사람을 도취시키고, 공감능력을 떨어뜨린다. 실언은 그래서 나온다. 자신이 실언을 뱉었다면 ‘내가 너무 오래 했구나’ 하고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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