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말 레임덕’ 막으려다 레임덕 빠질 수도

[일요서울 | 이기우 언론인] 청와대 참모들의 총선 출사표가 줄을 잇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출사표를 던지는 청와대 출신은 40여 명이지만 최대 70여 명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정치권에 회자되고 있다. 국정 후반기 권력 누수를 막기 위해 ‘친문 인사’들을 대거 포진시켜 당 장악을 강화하고, 퇴임 후 안전판을 만들기 위한 것 아니냐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참모들의 출마 러시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의중도 작용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청와대 참모들의 출마에 당내에서조차 곱지 않은 시선이 쏟아지고 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윤석열 검찰총장 충돌’, ‘조국 사태’ 등으로 문 대통령을 지지했던 중도층이 마음을 돌리고 있는 데다, 청와대 참모들의 출마로 인해 ‘야당 심판론’보다 ‘정권 심판론’이 점차적으로 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내년 총선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여당의 판단과 달리 민심은 청와대 참모들은 물론 여당까지 외면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뉴시스]
문재인 대통령.[뉴시스]

-‘묻지마 정권심판론’ 될 것…견제 심리 작동
-박근혜 전 대통령 ‘진박공천’ 재현될 수도…새누리당 ‘패배’
-조국·윤석열 충돌 ‘권력 견제론’‘주류 혼내자’ 여론 형성

   
“이번 총선은 묻지마 ‘정권 심판론’이 될 것이다.” 정치평론가가 아닌 대기업에 몸을 담고 있는 한 임원이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한 말이다. 그는 “조국 수사, 청와대의 감찰 무마·선거 개입 의혹 수사 등이 있는데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의 손과 발을 잘랐다. 부동산을 비롯해 경제 등도 좋지 않은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는 국민, 기업 체감과는 거리가 있는 말을 하고 있다”며 “국민들이 아무리 야당이 싫다고 하더라도 정권에 대한 견제심리가 발동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정권에 대한 견제를 하지 않으면,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를 수밖에 없다”며 “시간이 흐를수록 청와대 참모진들은 ‘문재인 프리미엄’을 얻을 것이라고 얘기할 수 있으나 총선이 다가오면 올수록 ‘심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는 “청와대 참모들의 출마 러시는 스스로 정권 심판론에 불을 붙였고, 동시에 참모들에 대한 견제심리도 총선에서도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경제 악화 권력형비리 의혹, 檢인사 통해 ‘정권 지키기’?

실제 경제악화가 지표에서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고, 경기에 영향을 받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은 경제 상황에 대한 성토가 정부와 여당을 상대로 쏟아지고 있다. 부동산 정책도 실패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4년 동안 모두 18번의 대책을 쏟아내며 부동산 정책에 승부수를 던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신년 기자회견에서 “부동산만큼은 확실히 잡겠다”고 말했으나 부동산 가격은 상승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 아파트값은 “빚 내서 집 사라”고 말했던  박근혜 정부 4년보다도 훨씬 더 뛰고 있다. 

게다가 잇따른 권력형 비리의혹 사건들도 문제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사모펀드 논란을 시작으로 각종 의혹이 불거지면서 문재인 정부에 치명타를 입었다. 이 과정에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이 조 전 장관을 옹호하는 여론전을 펼치기도 했다. 심지어 문 대통령은 신년회견에서 “조 전 장관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게다가 김기현 전 울산시장에 대한 청와대 하명수사 의혹이 ‘청와대 비서실과 연루된 송철호 선거개입 의혹’으로까지 비화되고 있다. 검찰은 이를 수사하기 위해 경찰청 정보통신담당관실을 압수수색하는가 하면, 김기현 전 울산시장 측근비리의혹 수사를 지휘한 황운하 전 울산경찰청장에게 출석을 요구하는 등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를 향한 수사가 이어지자, 법무부는 윤석열 검찰총장 측근을 한직인 고검 차장과 지방검사장으로 대거 좌천시키는 인사를 단행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검사 인사에 앞서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으라고 규정한 검찰청법을 위반했다는 논란까지 감수하면서 여권을 향한 수사를 지휘하고 있는 고위 간부들을 전보 조치했고, 윤 총장의 핵심 측근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가까운 인사들이 전진 배치됐다. 

이를 두고 야당을 중심으로 “정권 보호용 인사”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급기야 추 장관이 윤 총장 핵심 참모들을 대거 교체하는 고위직 인사를 단행하고 후속 인사에 대해 “수사팀을 해체하지 말라”는 내용의 청와대 국민청원이 등장했으며, 20만 명이 넘는 국민들이 동의했다. 

이는 문 대통령 지지율에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 16일 리얼미터가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지지율은 3.6% 하락한 45.1%를 기록했고, 부정평가는 무려 4.7% 상승한 51.2%를 기록했다. 이렇듯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인 친문 핵심들과 직접 연루된 권력형 비리 의혹들은 경제 실정 등 국정 패착과 맞물려 여권의 인기가 갈수록 떨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특히 조국사태와 추미애-윤석열 충돌 등을 거치면서 무당층과 중도층이 늘어났다. 극렬한 진영 대립은 지지층 결집과 더불어 정치 염증에 기반한 무당층과 중도층이 확대된 것이다. 한국갤럽의 신년 정기조사에서 무당층은 25%로 자유한국당 지지율(20%)보다 높다. 20대 무당파는 40%에 이르고, 중도층에서는 절반에 육박한다.

청와대 출신 낙하산 부대, ‘정권 심판론’ 자초할수도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 참모들이 대거 총선에서 출마하면서 이른바 ‘친문 마케팅’을 활용하려고 한다. 청와대 출신은 40여 명이지만 최대 70여 명에 달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과 박수현, 김의겸 전 대변인 등 문 대통령의 입으로 불리던 3명이 모두 총선에서 출마하는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또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윤건영 전 국정기획상황실장과 주형철 전 경제보좌관 등 출마를 위해 청와대를 떠난 1급 이상 고위직만 25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외에도 남요원 전 문화비서관, 민형배 전 사회정책비서관, 신정훈 전 농어업비서관, 김봉준 전 인사비서관, 김성진 전 사회혁신비서관, 임혜자 전 선임행정관, 박시종 전 선임행정관, 허소 전 행정관, 남영희 전 행정관 등 청와대 출신 40여 명이 출마를 선언했다. 특히 불출마 선언한 임종석 전 비서실장의 경우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있는 광진을 출마설까지 흘러나오는 등 청와대 출신 인사들의 총선 출마는 계속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청와대 출신들이 대거 출마를 선언하며서 지역구를 노리기 위한 눈치 싸움도 치열하다. 심지어 고민정 대변인은 유은혜 장관과 김현미 장관의 지역구인 고양정병, 나경원 전 원내대표를 겨냥한 동작을 출마가 거론되고 있다. 윤건영 전 실장은 당초 부천 출마설이 거론됐으나 박영선 의원의 지역구인 구로을 출마가 확실시되는 등 청와대 출신들의 지역구 자리 마련 작업이 한창이다. 

민주당 내부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문 대통령을 근거리에서 보좌한 이들이 이른바 '친문 프리미엄'으로 총선 승리에 기여할 수 있다는 기대감은 존재하지만, 오히려 역풍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선거가 다가올수록 ‘정권 심판론’이 커지기 마련”이라면서 “청와대 출신이 많다면 오히려 더 큰 역풍을 맞을 리스크가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의원은 “착실하게 지역구를 닦아왔던 이들에겐 갑자기 등장한 청와대 출신 인사들이 달갑지 않을 것”이라며 “경선 과정부터 불만이 터져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20대 진박 공천, 시즌2, 야당 보수통합 여부 변수

더구나 청와대 출신들의 출마 쇄도로 ‘친문’ 코드를 강해지면 오히려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진박 공천’ 논란으로 참패한 새누리당처럼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있다. 당시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출마자들은 현수막이나 명함에 박 전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거나 출마선언문에 ‘진실한 사람’이라는 글귀를 넣어 충성 경쟁을 벌였지만 결과는 새누리당 패배였다. 

당 장악력과 레임덕을 늦추기 위해 청와대 출신들을 대거 출마시키겠다는 복안이지만 민심은 지난 20대 총선 때처럼 민심은 이들의 외면할 가능성이 있다. 레임덕을 피하려다가 레임덕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나마 보수통합이 되지 않는다면 ‘반사이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 한 가지 호재다.   

이 때문에 야당에서는 ‘정권심판론’에 대한 불을 지피기 위해 보수통합 논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부동산 정책, ‘추미애-윤석열’ 충돌, 패스트트랙 정국 등으로 인해 문 대통령을 지지했던 중도층이 문 대통령을 외면하고 있는 만큼 중도층 흡수를 위해 보수대통합만큼 파괴력이 큰 것은 없다는 판단에서다. 

실제 리얼미터가 지난 16일 tbs 의뢰로 지난 13∼15일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1506명 대상 진행한 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2.5%포인트)에서 자유한국당과 새로운보수당의 합산 지지율이 더불어민주당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당은 32.4%, 새보수당 5.3%로 두 지지율을 합하면 37.7%로 37%를 기록한 민주당을 근소하게 앞섰다. 

현재로서는 보수통합 논의를 이끌어오던 혁신통합추진위원회가 삐거덕대고 있으나 ‘유승민-황교안 담판’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여기에 안철수 전 대표까지 보수통합에 뛰어든다면 ‘친문 vs 반문’ 구도가 완성돼, 사실상 청와대 출신 참모 등 여당에 대한 심판론은 강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당 등이 보수통합 필요성을 언급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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