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원 회원 자격 정관이 은퇴 불렀다”… 공정위, ‘불공정 행위’ 조사 착수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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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 신유진 기자] ‘한국 바둑의 자존심’이라 불리는 이세돌 전 프로바둑기사의 한국프로기사회(이하 기사회) 은퇴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이세돌은 2016년 기사회 정관에 대해 문제 제기 하며 기사회 탈퇴를 선언한 바 있다. 이어 지난해에는 한국기원을 상대로 공제액 반환을 요청하는 적립금반환소송에 나섰다. 이들의 소송이 진행되는 가운데 이번에는 한국기원과 기사회의 정관이 공정거래법상 사업자단체 금지행위를 위반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박민규 변호사(안팍 법률사무소)는 한국기원을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에 신고했고, 공정위는 해당 접수 건에 대한 사전조사에 착수했다.

“한국기원·기사회, 프로기사 활동 금지 등 불공정 행위… 바둑 발전 악영향”

공정위 “서울사무소 접수, 조사단계”… 한국기원 “절차 따라 소명 다할 것”

이세돌은 지난해 11월19일 한국기원을 방문해 사직서를 제출하면서 바둑 프로기사 은퇴를 공식 선언했다. 1995년 7월 입단한 이후 24년 4개월간의 현역 기사 생활을 마감한 것이다. 이세돌의 은퇴를 두고 예전에 불거진 이세돌의 기사회 탈퇴와 한국기원의 정관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2016년 이세돌은 “기사회의 불합리한 제도에 동조할 수 없다”며 친형인 이상훈 9단과 함께 기사회에서 탈퇴했다.

당시 이세돌은 기사회가 대국 수입의 3~15%를 일률적으로 공제해 적립금을 모으는 정관 조항과 기사회를 탈퇴한 회원은 한국기원 주최·주관 대회에 참가할 수 없도록 하는 등의 제재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이들 형제는 프로기사 동의 없이 상금 일부를 원천징수하고 기사회를 탈퇴하면 한국기원의 시합에 나갈 수 없게 하는 것은 기사회 운영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제기한 것이다.

당시 기사회는 이세돌의 탈퇴에 부담을 느끼고 규정에 관한 문제는 자체로 해결하기엔 어려움이 따른다며 한국기원에 중재를 요청했다. 하지만 한국기원은 “대화로 해결하라”는 입장만 내놓았다. 3년이 흐른 지난해, 결국 이세돌이 먼저 움직였다. 이세돌은 ‘기사회 탈퇴 이후에도 자신의 대국 수입에서 공제해 간 금액을 돌려달라’며 내용증명을 기원에 보내고, 소송을 진행했다.

기사회 탈퇴 후에도 이세돌은 국내외 기전에 참여했고 이 기간 기사회 공제금액은 약 3200만 원으로 알려졌다. 기사회의 요청에 따라 이 돈은 현재 한국기원이 보관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7월에는 한국기원이 기사회의 요구에 정관을 개정했다. 개정 정관은 ▲본원이 정한 입단절차를 통해 전문기사가 된 자는 입단과 동시에 기사회의 회원이 된다 ▲본원이 주최, 주관, 협력, 후원하는 기전에는 기사회 소속 기사만이 참가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일각에서는 이세돌 은퇴 배경에 한국기원의 정관 개정이 영향을 끼쳤다고 보고 있다.

정관 변경… 대국 출전 길 막혀 

이세돌의 형인 이상훈 9단은 “이세돌이 원래 은퇴를 생각하곤 있었지만 승부사 기질이 남아 있어 올해 KB바둑리그 출전도 노렸고 연말까지 대국에 출전하려는 계획도 있었다”며 “그러나 7월에 정관이 변경되면서 대국에 출전할 수 있는 길이 막혔고 예상보다 이른 은퇴를 하게 됐다”고 언론에 입장을 밝혔다.

박민규 변호사(안팍 법률사무소)는 한국기원과 기사회의 불공정 행위를 바로잡는다며 한국기원을 공정위에 신고·접수했다. 박 변호사는 한 언론사에 “기사회에 소속되지 않은 기사의 시합 출전을 막은 한국기원의 정관은 이 전 기사의 은퇴를 초래했다”며 “한국 바둑 발전에 악영향을 끼치는 불공정 행위를 바로잡고자 신고했다”고 전했다. 특히 전문 기사는 사실상 시합의 상금과 대국료를 통해서만 소득을 벌어들일 수 있는데 한국기원과 기사회는 프로기사들의 활동을 금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새로운 사업자단체의 진입을 막는 것 역시 공정거래를 크게 저해한다고 보고 있다.

“파악 후 절차 밟겠다” 

이 같은 논란에 한국기원 관계자는 “공정위 절차에 따라 소명을 다할 것이다”라며 “공정위에서 공문이 오면 파악을 한 후 절차를 밟겠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서울사무소에 신고가 접수된 것이 맞다. 자세한 내용은 추후에 밝히겠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한국기원의 개정된 정관이 합리적인 근거로 책정됐는지, 사업자단체의 진입을 막는 것을 중심으로 신고 위반 여부를 살필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이세돌은 현역 생활을 하면서 18차례 세계대회 우승과 32차례 국내대회 우승 등 모두 50번의 우승을 했다. 한국기원의 공식 상금으로는 98억 원의 수입을 올린 것으로 집계됐다.

2000년에는 천원전, 배달왕기전에서 연속 우승을 시작으로 3단 시절인 2002년에는 15회 후지쓰배 결승에서 유창현 9단을 반집으로 꺾고 우승하면서 세계대회 최저단 우승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2000년에는 76승을 올려 한국기원 최다승의 주인공이 되면서 최우수기사상을 획득했다. 통산 8차례의 MVP, 4번의 다승왕과 연승왕 3번의 승률왕에 올랐다.

특히 그의 바둑 인생 중 가장 화제가 된 일은 2016년이었다. 구글 딥마인드의 바둑 인공지능 프로그램인 알파고와 대결해 1승 4패로 패했고, 이세돌은 알파고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인류 유일 프로기사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알파고와의 4번째 대국에서 알파고의 허점을 정확히 짚었던 백78수는 여전히 ‘신의 한수’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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