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CJ 등 중점관리 거론…566개社 사외이사 718명 바꿔야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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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국민연금기금이 3월 주주총회에서 기업에 대한 칼자루를 휘두를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작년 말 현재 국민연금이 지분 5% 이상을 보유한 313개 상장사 중 67개사(21.4%)의 2018사업연도 배당성향이 10% 미만이거나 배당금이 전혀 없었던 것으로 집계됐다.

20개 기업은 이 기간 횡령·배임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횡령·배임 같은 위법행위나 배당정책은 국민연금의 중점관리사 안에 해당해 국민연금의 주주활동 대상이 될 가능성이 커진다. 지난해부터 큰손 `국민연금`의 역할이 커지면서 국내 대기업도 국민연금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다만 지금도 반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범위가 제한적인 만큼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내년 3월 주총서 '적극적 주주권'으로 기업에 목소리 높일 듯
무배당·횡령·배임 연루기업들 `예의주시`…혹시, 우리 총수도?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지난달 ‘적극적 주주활동 가이드라인’ 도입을 결정해 앞으로 횡령·배임 등에 따른 기업가치 훼손 문제가 있는 기업에 대해 이사 해임과 정관 변경 등 관련 주주제안을 할 수 있게 됐다.

지난해에도 국민연금은 기업 총수인 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대한항공 사내이사 재선임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SK 이사 선임에 대해서도 반대표를 던진 바 있다.

기업가치 훼손 시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안 기다려

올해도 이사회 재구성 등을 앞두고 기업들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당장 횡령·배임 혐의로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동일 범죄에 대한 변호사 비용 400억 원 대납 혐의로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된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과 공정거래위원회가 사익 편취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이해욱 대림산업 회장 등에 대한 연임 안건이 내년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상정될 확률이 높다.

검찰은 이들을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한 상태다.

현재 국민연금은 삼성전자 지분 10.62%, 현대자동차 9.55%, 현대모비스 지분 11.13%, SK 7.38%, LG전자 10%를 보유 중이다.

매체 보도를 종합해보면 재계 1위 삼성전자는 법정 구속된 이상훈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 문제가 관건이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17일 삼성 전자서비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상훈 의장에게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삼성전자의 이사회 의장이 구속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의장의 임기는 2021년 3월까지로 1년가량 남은 상태나 의장의 공백 기간이 길어지면 이사회 운영에 차질이 생기는 만큼 삼성전자가 올해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후임을 선임할 가능성도 있다.

현대자동차, SK, LG전자 이사회도 일부 구성원들의 임기 만료로 변화가 예상된다.

현대차의 경우 이사회 의장인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최은수 사외이사 이사의 임기가 오는 3월 종료된다. 최은수 사외이사는 전 대전고법원장 출신으로 지난해 3월부터 정몽구 회장이 맡았던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올해 현대차 주총에서 가장 관심사는 정몽구 회장이 사내이사와 의사회 의장 자리를 유지하는지다. 정 회장이 몇 년간 외부활동을 하지 않은 만큼 정 회장의 뒤를 이어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맡거나 사외이사에게 자리를 넘길 가능성이 존재한다.

국민연금은 지난 2008년과 2011년 정몽구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에 반대해 이번에도 정 회장이 연임에 나설 때 또 한 번 반대표를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
SK의 경우 장동현 사장과 사외이사인 장용석 연세대학교 교수의 임기가 올해 3월 만료된다.

LG전자의 경우 사외이사인 백용호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임기가 끝난다. 또한, 조성진 부회장의 경우 임기가 2021년 3월까지나 은퇴를 밝힌 만큼 사내이사에도 변화가 생길지 주목된다.

3월 주총 이사회 재구성 앞둔 기업들 긴장↑

게다가 법무부가 1년 유예하기로 했던 ‘사외이사 임기 6년 제한’이 담긴 상법 시행령 개정안을 바로 강행하기로 했다. 3월 주주총회를 앞두고 ‘사외이사 대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커졌다.

지난 14일 법무부는 상법 시행령 개정안 심사를 완료했다고 밝혔다. 상법 시행령 개정안은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해 같은 상장회사에서 6년을 초과해 사외이사로 근무했거나 해당 상장사를 포함한 계열사에서 재직한 기간을 더해 9년을 초과할 경우 사외이사가 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추미애 신임 법무부 장관은 이 같은 시행령 개정안을 법제처에 제출했고, 10일 법제처가 심사를 완료했다. 개정안은 차관회의와 국무회의 심의 등을 거쳐 2월 초 공포돼 바로 시행될 예정이다.

CEO스코어가 국내 59개 공시대상 기업집단(자산 규모 5조 원 이상)의 사외이사 중 3월까지 바뀌어야 하는 사외이사는 92명이다. 국내 전체 상장회사로 범위를 넓히면 최소 566개사, 718명이 바뀌어야 한다. 전체 사외이사 1432명 중 절반이 넘는 수치다. 유정주 한국경제연구원 기업혁신팀장은 “3월 이전에 전문성을 갖춘 신임 사외이사를 뽑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기업들이 전례 없는 대혼란에 휩싸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사외이사 임기를 제한하는 규제는 해외에서도 전례를 찾기 힘들 뿐 아니라 기업 경영의 자율성을 과도하게 침해한다고 보고 있다.

경영자총연합회 경총은 성명을 통해 "상장사 사외이사 임기를 제한하는 상법 개정안은 외국에서 입법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과잉 규제"라면서 "유능한 인력도 6년 이상 재직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회사와 주주의 인사권에 대한 직접적인 통제장치를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사외이사 선임 과정에서 현실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외부의 정치적?사회적 영향을 고려할 때, 이러한 임기제한이 기업 경영에 대한 외부 개입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경총은 "국내 자본시장에서 주요 상장사 지분을 대량 보유할 여력이 사실상 국민연금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번 시행령 개정안은 국민연금이 공시도 안 한 상태에서 지분변동을 외부공개 없이 마음대로 시행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며 "자체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 지침) 강화를 통해 국민연금이 기업의 이사 선?해임과 정관 변경 등을 보다 쉽게 추진할 수 있도록 백지위임 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이와 관련해 논의를 통해 개선해 나가기로 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주주제안을 하는 경우 개별 기업의 특성이라든지 사정, 산업계 특성을 반영해 주주제안 자체를 철회할 수 있다는 단서 조항을 넣어 조금 더 기업을 보호할 수 있게 됐다"며 "시행 과정에서 현실과 맞지 않거나 불필요한 조항이 있으면 언제든지 수정하고 바로잡아 나가겠다는 의견이 제시돼 의결됐다"고 말했다.

나아가 사용자 단체 대표 일부가 불참한 가운데 복지부는 앞으로 재계 설득을 계속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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