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행정수도 이전 공약 닮은 꼴… 왜


이명박 전시장은 ‘땅값 상승 걱정’은 하지도 말라고 했다. ‘한반도 대운하’가 들어설 하천 및 하천변은 국가 소유이기 때문이다. 지난 2002년 대선, 노무현 후보가 들고 나온 ‘행정수도 이전 공약’과의 단순 비교는 어불성설이라는 얘기다. 이 전시장 참모들 역시 한결같은 목소리다. “‘투기’는 통하지 않는다.” 과연 그럴까. <일요서울> 취재 결과, 현재 낙동강 유역 부동산 업계는 운하 효과로 인해 ‘꿈틀’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노른자위가 ‘선착장 및 화물기지’가 될 것이라는 소식은 이미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지역 부동산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선 선착장 및 화물기지 예정지가 담긴 ‘세부 계획서’ 얘기도 나돈다. 이들 사이에선 이를 입수하는 게 ‘능력’으로 통한다. 차기 대통령감 여론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며, 2007년 대선 당선에 가장 가까이 다가선 이 전시장, 그리고 그의 대선 공약 1호 ‘한반도 대운하 프로젝트’는 선거의 속설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셈이다.


대운하가 노무현 후보의 행정수도 이전 공약과 비교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말처럼 연결된다면 수도권, 충청, 영·호남 등이 연결돼 있어 전국적인 이슈 선점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전국적 이슈 선점 진행 중
한반도 대운하 프로젝트 중 핵심은 한강과 낙동강을 연결하는 ‘경부운하’ 건설인데, 서울(한강하구, 파주 용강보), 행주, 잠실, 남양주, 여주, 충주, 조령 터널, 문경, 상주, 구미, 대구, 의령, 밀양, 부산(낙동강 하구)을 잇는 총 연장 553㎞의 대규모 공사다.
주목할 대목은 이 전시장이 지난 8월 현장 답사에 나서면서부터 경부운하가 통과하는 지역의 여론이 동요했다는 것. 당시까지 차기 대통령감 선호도 조사에서 1.2위를 다투던 박근혜 전한나라당 대표를 멀찌감치 따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한반도 대운하의 기본 골격인 경부운하 구상과 무관치 않다는 게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창교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수석전문위원은 “한나라당의 정치적 기반이라 할 수 있는 대구·경북(TK)지역에서 오차 범위에서 박근혜 전대표를 앞질렀다는 것은 의미 있는 변화”라고 진단했다. 한나라당 내부 의견 역시 “경부운하 발표 직후 이 전시장이 박 전대표의 지지층마저 흡수하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게다가 문경새재 부근 조령의 해발 140m 지점에 20.5㎞의 터널을 건설하고 터널 양쪽에 두 강의 수위를 맞춰주는 ‘갑문’을 건설한다는 구상과, 최소 수심 유지를 위해 ‘보’를 설치한다는 계획은 환경 문제와 연결돼 논란을 빚고 있지만, 이 역시 선거 캠페인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바람직한 현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 전시장측에서 한반도 대운하를 둘러싼 정책 공방을 싫어하지 않는 이유다.
찬반 논란이 가열될수록 이슈를 선점한 후보가 유리하다는 건 선거판의 속설이다. 특히, 선거기획 전문가들은 “대통령 선거 캠페인에서 이슈 선점은 상대 후보의 ‘반대’에서 시작된다”고 입을 모은다.

‘반대’가 부르는 ‘승리’
박근혜 전대표는 “한반도 대운하는 국정운영이나 경제정책이라기보다 어떤 건설의 계획안, 개인적인 안이라고 생각한다”며 “이제는 건설, 공장 짓는 것으로 국민을 먹여 살리는 시대는 지났다”고 했고, 손학규 전경기도지사 역시 “운하가 필요하다면 해야겠지만 지금은 국가 체질의 근본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부정적 견해를 드러냈다.
이러한 이유로 2007년 대선 공약 1호 한반도 대운하 프로젝트는 선거 캠페인으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본선도 치르기 전 상대당 후보가 아닌 당내 후보들의 ‘반대’에 부딪히며 전국적 이슈로 부상한 것이다.
행정수도 이전 공약과 진행 양상이 동일하다는 것 역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16대 대선을 앞둔 어느 시점, 노무현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질수록 충청도 지역 부동산 가격은 널을 뛰고 있었다. 예정지역 및 주변지역이 대전광역시를 비롯해 충청북도, 충청남도 일원으로 광범위했음에도 말이다.
유권자의 표심은 피부로 느끼는 게 있어야 표로 발로한다는 게 또 다른 선거의 속설이다. 이 때문인지 2002년 12월19일 치러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는 충청도에서 약 35만표, 전국에서 약 57만표를 더 얻어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 전시장측 역시 ‘투기’에 대해 우려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전시장은 “한반도 대운하는 토지수용을 통해 사업이 진행되지 않는 탓에 ‘투기’와는 무관한 정책”이라고 못 박은 바 있다. 하천과 일정 범위의 하천 구역은 국가소유이기 때문이다. 요즘 이 전시장측이 토지수용 및 보상과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는 선착장 및 화물기지 예정지에 대한 철저한 ‘보안유지’에 들어간 데서도 이러한 의지가 전달된다.
하지만, 언제나 적은 ‘내부’에 있다는 것 역시 선거의 속설 중 하나다. 투기 문제로 인해, 2003년 가을 입법 예고된 ‘신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 처리는 논란을 빚기도 했다. 그렇다 해도 이미 대선 전부터 노무현 후보의 선거캠프 주변에선 ‘공주·연기 지역’으로 잠정 결론내렸다는 게 알려지기도 했다. 특별조치법 처리를 위해 신행정수도건설추진지원단이 꾸려졌으나, 행정수도 이전 로드맵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장밋빛 청사진’이 부추겨
마찬가지로, 부동산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한반도 대운하의 노른자위라 할 수 있는 선착장 및 화물기지 예정지를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경남 김해 지역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A씨는 지난 8월 이 전시장의 1차 답사 구역을 유력 예정지로 지목했다. 이 전시장은 낙동강이 바다와 만나는 을숙도에서 시작해 경남 밀양과 창녕을 거쳐 고령, 대구, 상주를 지나 문경새재를 넘어 충주와 강천, 여주를 돌아 팔당댐에서 답사를 마무리했다.
실제로, 낙동강 유역 부동산 업계에선 이미 선착장 및 화물기지가 어디가 될 것이라는 ‘세부 계획서’까지 나돌고 있는 상황이다. 경남 경북지역 ㅊ군 (화물기지), 경남지역 ㅇ읍(화물기지), ㅁ시(선착장·화물기지)가 꼽히고 있다는 게 지역 부동산 업자들의 전언이다. 화물기지의 경우 낙동강 지류의 발원지가 모여 있는 곳이라는 건 이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이와 관련, ㅁ시에서 부동산을 운영하고 있는 B씨는 “이 전시장이 한반도 대운하 답사에 나선 이후 낙동강 유역에선 선착장 및 화물기지 예정지와 관련된 문건이 나돌았다”면서 “이를 바탕으로 매매거래가 이뤄지고 있으며, 서울을 비롯해 전국 방방곡곡, 심지어 교포 사회에서도 문의가 쇄도하고 있으며 이미 매매가 성사된 건도 여러 건”이라고 했다.
한반도 대운하의 선착장 및 화물기지 예정지가 투기 광풍(狂風)에 휩싸이는 이유는 분명해 보인다. 이 전시장의 말대로만 된다면 그동안 상대적으로 낙후했던 내륙지방이 매력적인 항구도시로 변모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선착장 주변에 레저 시설 등 관광산업이 활성화될 것, 수도권을 벗어나 벤처기업과 연구기관들의 지방 이전도 기대할 수 있다는 장밋빛 청사진이 그것이다.

“특별법으로 투기 단속할 터”
낙동강 유역의 투기 바람이 불고 있는 이유는 또 있다. 대부분 오지 중의 오지인 터라 토지거래신고제는 물론 허가제조차 비적용 대상지역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영우 안국포럼 정책간사는 “잠정 투기 지역으로 지목되고 있는 선착장 및 화물기지의 경우 대규모 사업이기에 여론수렴이 필요하다”면서 “지역 공청회 등을 통해서만 결정할 수 있다”고 했다. 지역의 특성과 현안, 지역경제와의 밀접한 연관성으로 인해 지자체와의 협력이 필수불가결하다는 얘기다.
김 간사는 이어 “소문에 의해 땅을 사는 건 의미가 없다”면서 “투기 목적으로 한반도 대운하 인근 지역에 땅을 사들이는 사람들에 대해서라면, 특별법을 제정해서라도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반도 대운하 프로젝트와 관련, 공사기간(4년)과 공사비(17조), 기대효과(고용창출 24만, 물류비 1/3 감소 등)에 대한 이 전시장의 답변은 명확하고, 확신에 차 있다. 그렇다 해도 그에 대한 높은 지지도와 당선 가능성을 연계해, 선착장·화물기지 예정지에 투기 광풍이 몰아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은 이 전시장의 품을 떠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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