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07억 원->1778억 원->224억 원 ‘경제성’ 축소…이면엔 낙하산 인사 탓

[원자력정책연대]
[원자력정책연대]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문재인 정부가 탈(脫)원전 정책을 국정 방향으로 결정하고 원전 건설을 잠정 중단 또는 보류하면서 이를 둘러싼 의혹이 퍼지고 있다. 특히 한수원 이사회가 경제성 등을 근거로 월성 1호기 조기폐쇄를 의결한 것과 관련해 은폐ㆍ조작됐다는 주장이 국회와 원자력 관련 단체를 중심으로 퍼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 모든 일이 가능한 것은 현 정부가 한전 관련 업체에 낙하산을 내려보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한국당에 따르면 ‘문재인 탈원전’의 하수인 역할을 하고 있는 낙하산 인사가 18명이라고 지적한다. 총선을 불과 3개월 앞두고 메가톤급 이슈로 떠오를 전망이다.

 현 정부 `눈치 보기` 논란…무턱대고 원전해체 국민피해 ‘막심’
 원자력정책연대 "월성 1호기 경제성평가 은폐 조작 11명 고발"


한수원이 정부의 탈원전 정책 이행을 위해 월성 1호기의 경제성 평가를 고의로 조작했다는 의혹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원자력정책연대 등 시민단체와 국민고발인 2000여 명은 월성1호기 경제성 평가에 참여한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수력원자력, 삼덕회계법인 관계자 11명을 배임 등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지난 20일 고발했다.

지난달 24일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월성 1호기 영구정지가 결정된 지 약 한 달 만이다. 수명연장을 위한 정비만으로도 7000억 원이 투입된 월성 1호기는 지난 2018년 6월15일 한수원이 경제성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폐쇄조치를 단행했다. 이어 지난해 12월 24일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월성 1호기 폐쇄를 의결했다.

고발장에 따르면 피고발인은 정재훈 한수원 사장과 당시 산업부 원전산업정책국장 등을 비롯해 초안 검토회의에 참석한 산업부 공무원 2명, 한수원 실무자 4명, 삼덕회계법인 소속 회계사 1명 등이다.

원자력정책연대는 이들이 월성 1호기 조기폐쇄를 위해 공모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월성 1호기가 경제성이 없다’는 결론을 끌어내는 방식으로 유명 회계법인의 경제성 평가 보고서를 도출하고, 한수원 이사회의 월성 1호기 조기폐쇄 의결을 유도했다는 것이다. 원자력정책연대 관계자는 “이 공모 사실은 소셜미디어(SNS) 메시지의 내용으로 충분히 입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강창호 원자력정책연대 위원장은 "2018년 6월 15일 한수원 이사회를 통과한 월성 1호기 조기폐쇄 결정은 모두 조작된 사실"이라며 "범죄 혐의는 배임, 문서변조, 이사회 진행에 대한 업무 방해 등"이라고 밝혔다.

이언주 미래를향한전진4.0(전진당) 대표는 "월성 1호기 경제성평가 은폐 조작과 관련해 국익이 얼마나 많이 훼손됐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잘 아실 것이다"라며 "어떻게 과학적인 사안이 정권에 따라 바뀔 수 있나, 대한민국은 미신의 나라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월성1호기 경제성 조작 논란

월성 1호기 경제성평가 은폐 조작 논란은 정유섭 자유한국당 의원이 삼덕회계법인의 보고서 초안을 입수해 지난 14일 공개하면서 불거졌다.

정유섭 의원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한수원은 이사회가 월성 1호기 폐쇄를 의결하기 석 달 전인 2018년 3월, 계속 가동 이익이 3707억원에 달한다는 자체 분석 보고서를 작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월성 1호기의 경제성은 2018년 4월 탈(脫)원전 정책에 적극적 입장이던 정재훈 사장이 한수원 신임사장으로 부임한 후,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삼덕회계법인은 보고서 초안에서 “이용률 70%, (전력) 판매단가 인상률 0%에서 계속 가동하는 것이 1778억여 원 경제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며 “이용률 70%는 충분히 달성 가능한 수치”라고 했다.
보고서는 또 경제성이 ‘0’이 되는 원전 이용률(손익분기점 이용률)을 30~40%로 산정했다. 이용률이 30~40%만 대도 즉시 정지하는 것보다 계속 가동하는 것이 더 이득이라는 분석이었다.

그러나 2018년 5월11일 산업통상자원부와 한수원, 삼덕회계법인이 보고서 초안 검토 회의를 한 뒤 이용률·판매단가 인하 등 경제성 평가 전제 조건이 변경돼 나온 최종 보고서에서 월성 1호기의 경제성은 급격하게 떨어졌다.

최종 보고서는 “중립적 시나리오(이용률 60%)에서 월성 1호기를 계속 가동하는 것이 즉시 정지하는 것보다 224억여 원 이득”이라고 밝혔다. 원전 이용률을 초안보다 10%포인트 낮은 60%로 봤고, 손익분기점 이용률은 54.4%로 높여 잡았다. 1kWh(킬로와트시)당 전력 판매 단가는 초안에서 60.76원이었지만, 최종 보고서에선 2022년 48.78원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야권에서 국조 특검 목소리…총선 이슈로 급부상 가능성도
 산업부·한수원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 왜곡 사실 아니다"


그 결과 월성 1호기의 경제성이 대폭 하락했다. 정유섭 의원은 “산업부와 한수원이 월성 1호기를 조기 폐쇄하기 위해 경제성 지표를 실제보다 턱없이 불리하게 왜곡·조작했음이 드러났다”며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또한 감사원은 한수원이 감추려 했던 것이 무엇인지 이번 기회에 철저히 감사해 월성 1호기 경제성 왜곡 조작의 실체를 명명백백하게 밝혀내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에너지정책 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협의회(에교협)`는 이날 성명을 통해 2018년 한국수력원자력의 의뢰로 월성1호기 계속 가동에 대한 경제성을 평가했던 삼덕회계법인이 1379억 원의 이익이 예상됐던 초안을 산업부·한수원과의 협의 과정에서 오히려 91억 원 손실 발생으로 축소·왜곡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에교협에 따르면 1982년 가동을 시작한 월성1호기의 30여 년간 평균 이용률은 79.5%다. 2016년 이용률이 53.3%로 떨어진 것은 경주지진으로 약 3개월 동안 가동을 정지했기 때문이다. 2017년 이용률이 40.6%로 줄어든 것은 5월 말 예방정비를 위한 정지 이후 정부가 연말까지 가동을 정지시켰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에교협은 또 원전의 전력판매단가를 하향 조정한 것도 의도적인 축소·왜곡이라고 지적했다. 원전 이용률이 줄어들면 한수원의 발전원가가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한수원 이사회가 2018년 6월 15일 축소·왜곡된 경제성 평가를 바탕으로 기술적으로 멀쩡한 월성1호기 영구정지를 졸속으로 결정해 한수원 경영과 국가 경제, 국민 안전에 피해를 줬다는 게 에교협의 주장이다.

에교협은 “감사원의 엄정하고 조속한 감사를 통해 월성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과 한수원 이사회의 부당한 영구정지 의결의 실체를 밝혀야 한다”며 “월성1호기의 영구정지 조치를 즉시 철회하고 재가동을 추진하라”고 촉구했다.
게다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이 같은 논란이 제기된 바 있어 이번에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지난해 10월14일 국회 산업통상자원 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장석춘 자유한국당 의원은 “경제성ㆍ안전성 모두 갖춘 월성 1호기는 조기폐쇄 대상 아니다”라며 “월성 1호기를 계속 가동해 국가와 국민 경제에 이바지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뉴시스]
[뉴시스]

이어 “월성 1호기를 조기폐쇄 한 한수원 이사회는 회사의 이익을 추구해야 하는 의무가 있음에도 정권에 빌붙어 국가와 회사에 막대한 손해를 끼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장 의원은 한수원 이사회가 제시한 조기폐쇄 근거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장 의원은 “한수원은 공기업으로서 정부정책을 이행하기 위해 월성 1호기 조기폐쇄를 결정했다고 했으나 이를 뒷받침하는 법률, 대통령령도 없다”며 “정부의 협조요청 공문 한 장으로 월성 1호기를 결정한 것은 명백한 불법이며, 이사회의 배임 행위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또 월성 1호기의 경제성에 대해서도 “손익분기점 가동률은 54.4%로, 35년 동안 평균 가동률이 78.3%였다”며 “경주지진에 따른 정비로 2017년 가동률은 40.6%로 떨어졌고, 가동률 40%의 비관적 시나리오로 경제성을 분석했다”고 꼬집었다.

이어 “판매단가를 의도적으로 낮게 전망해 향후 5년간 563억 원 적자 원전으로 만들었다”며 “하지만 조기폐쇄 결정 후 1년 4개월 만에 약 230억 원을 메꿨다. 경제성 평가 조작으로 폐쇄하지 말아야 할 원전이 폐쇄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재인 탈원전’의 하수인 역할설

일각에서는 이러한 일이 가능한 것은 현 정부의 낙하산 인사가 한 몫 했다는 주장이다.

지난해 3월 한국당은 원자력 관련 11개 기관의 ‘탈원전·친문인사’ 18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해당 명단에는 신고리 5·6호기 건설 공론화위원회에서 ‘건설 중단’ 측 패널로 참석한 바 있는 강정민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 대선 당시 문재인 대통령 후보의 선거캠프 정무특보로 활동했던 강래구 한국수력원자력 이사, 박원순 서울시장 총괄선대본부장을 맡았던 장백건 한국원자력의학원 감사 등이 포함됐다.

정용기 자유한국당 의원(대전 대덕구)은 지난해 10월7일 원자력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현직 원자력안전재단 감사가 원안위와 한수원을 상대로 한 각종 소송의 법률대리인에 이름을 올린 사실을 공개하며, 책임을 추궁했다.

또 고도의 전문성과 중립성을 필요로 하는 자리에 탈원전 활동가, 선거캠프 또는 정치권의 낙하산 인사자리로 활용되고 있다며 대통령의 일방적 탈원전 정책에 눈치보기로 일관하여 국민안전을 외면한 것에 대해 원자력안전위원장의 공식사과를 요구했다.

특히 “정부기관에 몸담고 있으면서 자신들은 원고 측 법률대리인으로, 국가는 피고로 역할을 나눠 소송한다는 것은 희대의 아이러니”라면서 “비상임감사라는 자리를 악용하여 소송에 필요한 자료를 유출하는 등의 문제 발생 소지가 있는 만큼 승인권자로서 관련 대책을 즉각 수립하라”고 촉구했다. 정 의원은 이 자리에서 한수원이 ‘문재인 탈원전’의 하수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경제성 조작, "근거 없어"

이와 관련해 한수원의 입장을 들으려했지만 통화연결음만 계속될 뿐 연락이 닿지 않았다. 다만 산업부의 설명자료를 통해 이와 관련한 내용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산업부는 자료를 통해  당시(2018년 5월) 회의는 회계법인이 경제성 평가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관련 기관의 의견 청취를 목적으로 개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회계법인은 객관적인 기준과 사실에 따라 독립적으로 경제성 평가 입력변수를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복수의 매체를 통해 한수원은 의혹의 근거로 사용되고 있는 `경제성 평가 보고서 초안`에 대해 최종 평가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중간 과정이었다고 반박했다.
해당 보고서는 회계 전문가가 아닌 직원이 참고용으로 작성한 자료로 신뢰성 및 객관적인 관점에서 입증된 공식 자료가 아니라는 것이다.

한수원 측은 "3707억 원(최종 평가에는 224억 원)은 타당한 근거를 가진 금액이 아니다"라며 "평가 결과의 신뢰성 및 객관성 확보를 위해 외부 전문 회계법인을 통해 경제성 평가를 수행했다"고 전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