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기웃거리지만 물밑에 여시재…막후에 홍석현·김종인 역할론

[일요서울ㅣ조주형 기자] 바야흐로 야권 지진 시대다. 지난 2017년 이후 지리멸렬하던 야권 진영은 원내외를 가리지 않고 사분오열된 가운데, 총선에 대비해 전열을 정비하고 있다. 노선 분화로 발생한 여러 균열에서 새살을 돋게 하겠다며 한껏 동력을 모으는 중이다.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대안신당 또한 창당 등 전세를 가다듬으며 총선 필승을 위한 준비에 돌입했다. 하지만 야권 발 지진은 멈추지 않고 다시 일어나고 있다. 바로 ‘안철수’ 때문이다.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의원이 지난 19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들아왔다. 지난 지방선거 이후 한국을 떠난 지 500여 일 만이다. 그가 야권 지형을 바꿀 수 있을지 알아봤다.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의원이 지난 19일 오후 귀국해 인천국제공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뉴시스]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의원이 지난 19일 오후 귀국해 인천국제공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뉴시스]


- 돌아온 탕아, 새정치 이은 중도정치…결국 표 깎아 먹나

집 나간 탕아가 돌아왔다.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의원은 지난 19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 다음 날인 20일 새벽부터 국내 정치 활동에 본격 돌입했다. 그가 돌아오던 날, 안 전 의원은 ‘중도-보수 통합에 참여할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관심 없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안 전 의원은 “진영정치에서 벗어나 실용적 중도정치를 이끄는 정당을 만들겠다. 실용이란 이상적인 생각에만 집착하는 것을 거부하고,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고 변화시키는 데 초점을 둔다는 이야기”라고 밝혔다. 결국 보수-진보 진영이 아닌 제3의 세력권을 형성하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에 당면했다.

앞서 안 전 의원은 지난 2011년, 현실 정치권을 향해 ‘구태 정치’, ‘진영 정치’로 정의하면서 ‘기득권 세력’으로 몰아 가열차게 비판한 바 있다. 당시 그가 비판한 구태 정치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새정치’ 바람을 일으켰지만, 새정치의 정체가 분명하지 않은 데다 비판을 위한 비판 아니냐는 의심을 떨쳐내지 못하고 ‘극중주의’로 전락했다. 즉, 현실 정치를 비판했지만 정작 본인이 비판 받으면서 대안세력으로 부상하지 못했다.

한편, 정치권에서는 안 전 의원이 언급한 ‘중도정치’의 정체가 무엇인지 고민에 빠진 상태다. 중도-보수 통합을 추진하고 있는 자유한국당에서는 안 전 의원을 향해 중도 통합에 동참하자는 의사를 타전했고, 바른미래당과 대안신당 등은 견제론을 내세우며 ‘간 보기’를 시전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치권에서는 새정치에 이어 중도정치를 내세운 안 전 의원이 제3의 세력권 형성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두고 촉수를 곤두세우고 있는 모양새다.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의원. [뉴시스]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의원. [뉴시스]


돌아오기만 한 탕아, 중도정치…결국 호남 정당?

최근 안 전 의원은 “제가 생각하는 정치개혁의 목표는 바로 ‘대한민국은 지금 미래로 가고 있는가’에 대한 해답을 구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진 상태다. 그는 22일 출간하는 책(안철수, 우리의 생각이 미래를 만든다)에서 세 가지 비전으로 ‘행복한 국민, 공정한 사회, 일하는 정치’를 제시했다.

이어 전면적인 국가 혁신, 사회통합, 정치개혁 필요성을 언급했다. 또한 안 전 의원은 “대한민국이 국민의 행복을 위해 존재한다는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면서 “미래를 내다본 전면적인 국가혁신과 사회통합, 그리고 낡은 정치와 기득권에 대한 과감한 청산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특히 정치개혁 과제로 ▲정치권 세대교체 ▲낡은 정치 패러다임 전환 ▲정치 리더십 교체를 선언했다.

우선 안 전 의원의 이 같은 개념을 기반으로 정치권에서는 호남에 기반을 둔 정당과의 이합집산을 통해 호남신당을 만들 수도 있다는 말이 흘러나오고 있다. 그가 기존 진영의 정당을 비판하면서 첫 번째 정치활동으로 호남을 찾은 것을 두고 그린 그림이기도 하다.

또한 안 전 의원 측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영호남 화합과 국민통합이 필요하다는 신념을 재확인하는 한편 안 전 의원을 성원해주었던 호남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기 위함이다”라고 전한 상태다. 이를 두고 호남계 정당과의 연대를 추진하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호남 정당 연대설’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총선을 앞두고 지난해 연말 국회를 통과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으로 정당 득표율을 어느 정도 획득했을 때 의석 또한 보장받을 수 있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언급되는 호남 통합 신당설은 안 전 의원 입장에서 충분히 구미가 당길 만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다. 호남계 정당 측에서 이미 안 전 의원을 향해 ‘한 번 속지 두 번은 속지 않는다’는 뉘앙스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박지원 대안신당 의원은 안 전 대표가 호남을 찾은 첫날, KBS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에서 “독일로 갈 때는 기자한테 쫓겨서 백팩 메고 도망치더니 들어올 때는 큰절하고 들어왔다”며 “큰절을 하면서 귀국하는 것 보니까 많이 잘못했나 보다”라고 맹비난했다. 그러면서 “한 번 당하지 두 번 당하겠느냐”고 지적했다.

장정숙 대안신당 수석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귀국 전에 한국 정치의 바이러스를 잡겠다고 했는데 모호성 뒤로 숨는 자신 없고 낡은 정치인의 면모를 다시 한 번 확인했을 뿐”이라면서 “떠날 때와 무엇이 달라졌는지 알 수가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바른미래당 통합 과정에 대해 “우리는 안철수 정치의 최종 선택을 보수 영남으로의 퇴행으로 기억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둔다”며 “호남을 등진 것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얍삽한 공학적 계산으로 망국적 정치를 개혁하기 위한 호남의 선택과 투자를 무산시킨 책임을 묻는 것”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민주평화당은 그가 돌아왔지만 3일 동안 아예 논평조차 하지 않았다. 다만, 당내에서는 그를 썩 반기는 분위기가 아닌 것으로 전해진 상태다.

결국 집 나간 탕아가 돌아왔지만 아버지의 환대는 보기 어려운 것으로도 풀이되는 대목이다.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의원이 지난 19일 귀국해 인천국제공항에서 큰 절을 하고 있다. [뉴시스]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의원이 지난 19일 귀국해 인천국제공항에서 큰 절을 하고 있다. [뉴시스]


안철수와 여시재, 시대전환…중도정치 시작되나

호남계 정당에서 안 전 의원의 광폭 행보를 견제하고 나선 가운데, 이미 원외에서 안 전 의원의 중도정치를 향한 물밑 작업 가능성이 제기된 상태다. 바로 안 전 의원과 연결됐던 사람들이 중도를 표방하는 ‘시대전환정치네트워크’(이하 시대전환)를 창당하면서 안 전 의원의 보폭도 점차 넓어질 공산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정치권 안팎에서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시대전환은 지난 1월22일 서울 중구에서 창당선포식을 개최한다. 앞서 그동안 정치권 외곽단체로 물밑에서 싱크탱크 역할을 해 왔던 ‘여시재’가 조만간 정치 활동의 전면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왜냐하면 시대전환 창당에 깊게 관여한 인물들이 여시재와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시재 원장을 맡고 있던 이광재 원장이 지난해 말 대통령 특별사면으로 복권되면서 그 가능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

지난 2015년 조창걸 한샘 명예회장이 설립한 민간 외곽단체인 여시재는 김도연 전 교과부 장관, 김범수 카카오 의장, 안대희 전 대법관,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정창영 전 연세대 총장 등 정계와 재계를 아우르는 실세들이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게다가 이 원장까지 있어 그 세력권은 가히 위력적일 수 있다는 게 항간의 평이다. 현재 여시재는 정치권 전면에 나서고 있지 않지만 막후에서 홍석현 회장을 지원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상태다.

중앙홀딩스 회장인 홍 회장 또한 여시재의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홍 회장은 여시재 등의 외곽단체를 통해 정계 진출을 위한 물밑 작업에 공을 들여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를 도왔던 인사로는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의 최측근이자 안 전 의원의 비서실 부실장이었던 정기남 동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객원교수가 대표적이다.

또한 시대전환의 공동 대표 준비위원을 맡은 인물들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원재 LAB2050 대표는 안 전 의원의 정책기획실장과 여시재 정책이사를 맡은 바 있다. 조정훈 아주대 통일연구소장 또한 한때 세계은행에서 근무하다가 귀국 후 여시재 부원장을 역임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안 전 의원이 귀국 직후 언급했던 ‘중도 정치’ 역시 이들이 지향하는 이념과도 그 맥락이 통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김종인 대한발전전략연구원 이사장은 지난 15일 시대전환 ‘정치의 미래’ 토론회 발제자로 등장해 “지금이 제3의 정치세력이 출현하기에 적기”라고 밝혔다.

시대전환 측의 소개자료 또한 안 전 의원과 김 이사장의 공통점을 볼 수 있다. 시대전환 측은 “시대전환은 시대 가치가 서로 대립하며 갈등해 온 현 정치구도를 넘어 통합과 미래를 모색하는 3040세대 주도의 새로운 정치집단”이라며 “실용과 혁신, 통합의 가치가 담긴 의제들을 주도적으로 생산하면서 우리 정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논쟁과 실천을 주도하려고 한다”라고 소개한 것.

역시나 안 전 의원 입장에서는 호남 정당 외에도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자 가능성이 높은 선택지라는 평이 나온다. 앞서 언급했던 선거법 개정안 때문이다. 중도실용정치를 표방하며 중도층의 표심을 최대한 흡수한 상황에서 정당 지지율이 일정치 이상을 넘게 되면 원내 진출에 이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안 전 의원이 외곽단체인 여시재, 신생 단체인 시대전환과 본격적으로 함께 움직이게 될 것인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시대전환의 이 대표위원이 지난 8일 열린 시대전환 발족 기자간담회에서 “안 전 의원이 정치권으로 돌아가면 새바람을 일으키긴 어렵다고 본다”라고 밝혔다. 정치권으로 돌아간다는 전제에 대해 안 전 의원의 총선 출마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안 전 의원은 이번 총선에 불출마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에 그의 행보에 따라 이들과 함께 중도정치를 펼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의원이 지난 19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취재진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뉴시스]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의원이 지난 19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취재진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뉴시스]


중도정치, 야권 분열의 단초 재연될까

중도-보수 통합에 대한 안 전 의원의 “관심 없다”는 발언은 정치권에서 연일 회자되고 있다. 지난 20일, 야권의 한 인사는 안 전 의원의 ‘관심 없다’ 발언에 대해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되는 정치권에서는 쉽게 할 수 없는 발언”이라며 “어떻게 될지 몰라서 한 발언이라면 지도력이 부족한 것이고, 확고한 의지였다면 스스로 자신을 가둔 모양새가 됐다”라고 지적했다. 결국 ‘중도정치’라는 기치를 내세웠지만, 그 대상자는 한정된다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앞서 안 전 대표는 귀국 당일 기자들에게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문제의 기조에는 현 정권의 진영논리에 따른 배제 정치가 있다. 그 이면에는 반사이익만 보려는 야당들이 있다. 이런 것들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미래가 없다. 한가지만 요구하는 것은 전체주의지 민주주의가 아니다. 내편만 따지는 분열된 사회에서는 집단지성, 공동체 의식 모두 살아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진영정치에서 벗어나 실용적 중도정치를 이끄는 정당을 만들 것”이라고 선언했다.

안 전 의원이 전면에 내건 ‘중도정치’의 정체에 대해 알아보고자 지난 21일 황장수 미래경영연구소장을 찾았다. 황 소장은 서울 마포구의 한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나 “안 전 의원이 귀국하던 날 곧장 불출마 선언을 한 것부터 면밀하게 살펴봐야 한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우선 황 소장은 안 전 의원이 이번 총선에서 불출마하겠다고 선언한 것을 두고 “안 전 의원이 원내 의석도 없는, 턱없이 세가 부족한 상황에서 총선 출마 선언을 할 경우 상징적인 지역에 나가야 하는데, 이번에 또 떨어지면 정치생명이 다시 또 끝날 것”이라며 “이미 그는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 3등으로 떨어진 경험 때문에 충격이 결코 작지 않았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황 소장은 이어 “안 전 의원이 정말 정치력이 있다면, 처음부터 중도-보수 통합에 관심 없다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정치적 명분을 고려했다고 가정할 경우, ‘이번 총선에 이기고자 통합의 주도권을 넘기라고 하겠지만 기득권 때문에 주도권을 넘기지 못한다면 중도실용정치 할 것’이라고 말하는 게 더 타당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결국 양당 대립 상황으로 치닫는 총선에서 다시금 중도정치를 앞세워 ‘중도 스펙트럼에서 버티기’로 표를 깎아 먹는다는 의심을 자초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향후 안 전 의원의 행보에 대한 분석도 이어졌다. 황 소장은 “안 전 의원은 앞으로 김종인,  홍석현 등과 함께 중도 표방 및 호남 일부 세력과 합쳐 나아갈 것”이라며 “전부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일부 호남 세력에 이어 중도라고 내세우는 기타 세력을 추가로 끌어들인 후 정치 활동에 나설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결국 수도권과 영남지역에서 중도층의 표를 긁어모아 결과적으로 중도-보수 진영의 악재로 남을 공산이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황 소장은 “이는 곧 문재인 정권 입장에서 더할 나위 없는 호재로 작용할 수도 있다”면서 “중도-보수가 통합하겠다고 나선 상황에서 다시금 중도 정치를 표방해 표를 받게 되면 당연히 중도-보수 세력을 결집시키는 데 한계를 초래할 것이며 결과적으로 와해를 일으켜 현 여당이 계속 집권하게 만드는 토대를 형성하는 데 기여할 공산이 크다”고 진단했다.

한편, 안 전 대표는 “야권에서 치열하게 혁신 경쟁을 하는 것이 나중에 합한 파이가 훨씬 더 클 수 있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의원이 지난 19일 귀국해 인천국제공항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의원이 지난 19일 귀국해 인천국제공항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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