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는 여느 시인, 소설가의 출판기념회처럼 소박하지도 예술적이지도 않다.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는 갖은 홍보물로 치장되어 있고 온갖 미사여구로 눅눅해진 축사가 끊이지 않는다. 좋게 말해 주권자인 국민들의 선택을 받고자 하는 열망이, 날 것으로 보면 비릿한 권력욕이 번들거린다.

21대 총선을 앞둔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가 모두 끝났다.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에는 특별한 구석이 있다. 이 곳에서는 가까스로 모인 2~3백명이 3천명이 되는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이 일어난다. 정치는 원래 사람이 다다익선인 영역인데다 출판기념회 자체가 세 과시를 위해 여는 측면이 있어 참가자 숫자는 쉽게 부풀려 진다.

참가자 수만이 아니라 책값도 부풀려진다. 출판기념회에서 정가를 주고 책을 사는 사람은 드물다. 출판기념회에 오는 사람들은 결혼식 축의금을 준비하듯 성의껏 봉투를 준비해서 책값을 치른다. 신용카드 단말기도 준비되지만 대부분은 현금을 들고 온다. 이렇게 걷힌 봉투는 법으로 규제를 받지 않기 때문에 선거에 쓰일 유용한 실탄이 된다.

이들에게 책 내용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정치인 중에 자신이 저자로 등재된 책을 다 읽어본 사람은 별로 없다고 짐작된다. 이런 자리는 잘 지어진 제목과 잘 나온 사진, 많은 청중과 쌓이는 봉투만으로도 충분히 성공적으로 평가받는다. 동원된 박수부대만 있을 뿐 책 내용을 비평하는 비평가도 없다.

막바지 출판기념회로 북새통을 이뤘던 전국 곳곳의 중·소규모 행사장을 채운 인파도 어느덧 썰물이 되었다. 전국적으로 수천 번은 열렸을 출판기념회 시즌이 마무리되면서 21대 국회의원 선거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출판기념회가 끝났다는 것은 선거일까지 90일간의 혈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는 의미가 있다.

민주사회에서는 선거가 주권자가 자신을 대변할 대리인을 뽑는 가장 선진적인 방식이라는 믿음이 민주주의를 지탱한다. 하지만 출판기념회에서 만나는 예비권력자들을 보면 어느 평론가의 말대로 ‘정치의 가장 큰 속임수는 모든 사람들이 투표장에서 평등하다는 확신’이라는 말이 더 적절한 감상으로 느껴진다.

출판기념회에서 만나는 예비권력자와 봉투를 들고 모여든 청중들부터 평등하지 않다. 권력은 물과 달리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역류하고 그곳에서 고인다는 사실을 가장 쉽게 목격하는 곳이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장이다. 액수불명의 책값을 지출하고 구매한 책을 들고 저자와 사진을 찍으며 인증을 거치는 인산인해의 북새통에는 비릿한 권력의 불균형 상태가 오래 지속된다. 

이렇듯 출판기념회는 우리 정치의 모든 폐단이 가매장 상태로 덮여 고약한 냄새를 풍기고 있다. 하지만, 정치인들에게 출판기념회를 빼앗는 것이 검찰에게 수사권을 가져오는 것만큼이나 쉽지 않은 일로 보인다. 결국 국민의 몫이다. 검찰개혁을 요구한 것처럼, 국민들이 돈잔치를 위한 허울 좋은 명분에 불과한 출판기념회를 없애겠다는 정당 차원의 공약을 요구해야 한다. <이무진 보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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