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터장 사퇴’ 이국종 교수, “다신 외상센터 안 한다”

이국종 교수 [뉴시스]
이국종 교수 [뉴시스]

 

[일요서울 | 황기현 기자] 이국종 교수는 대한민국 국민들 사이에서 ‘영웅’으로 대접받는 존재다. 자신을 희생해 죽어가는 환자를 수없이 살려냈고,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외상센터 존재의 필요성을 역설해 가며 사실상 지금의 권역외상센터 시스템을 있게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이 교수의 살신성인을 지켜보며 각박한 사회를 버티고 살아갈 힘을 얻었다. 그런데 이런 이 교수가 차마 입에 담기도 민망할 정도로 원색적인 욕설을 들었다. 욕설을 한 주인공은 이 교수와 함께 근무하는 아주대 병원의 의료원장이었다.

유희석 아주대 의료원장 이국종 교수에게 ‘막말 파문’
이국종 교수 “이번 생 망했다” 자조

논란의 시작은 지난 13일이었다. 이날 한 매체는 유 원장이 이 교수에게 수년 전 내뱉은 욕설이 담긴 녹음 파일을 공개했다. 녹음 파일에서 유 원장은 이 교수에게 “때려치워. 이 XX야. 꺼져. 인간 같지도 않은 XX가 말이야” 등 과격한 욕설을 퍼부었다. 이 교수는 그동안 인력 충원 문제, 닥터헬기 사업 문제, 병상 문제 등으로 병원과 갈등을 빚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이 교수가 유 원장의 욕설을 듣고 한국을 떠날 생각까지 했다고 밝히며 논란은 더욱 커졌다. 의료원 측은 이 교수가 무리하게 헬기 이송을 늘려, 대구나 제주도까지 날아가서 외상 환자를 실어오고 있다며 안전상의 문제를 지적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 병원 내부에서는 이 교수가 정치권을 이용해 독선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여론은 싸늘하다. 실제 한 시민단체는 유 원장을 경찰청에 고발하기도 했다. 지난 18일 서민민생대책위원회는 유 원장을 업무방해와 직무유기, 모욕 등의 혐의로 고발했다. 이 단체는 고발장에서 “유 원장은 이국종 교수가 운영하는 권역외상센터에 병실을 배정하지 않는 등 방식으로 센터의 정상적인 업무를 방해했다”며 “권역외상센터는 국가가 연간 운영비 60억원을 보조하는데 이를 원칙대로 운영하지 않아 직무 유기죄도 성립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유 원장은 병원 직원들 앞에서 이 교수에게 ‘당신 때문에 병원이 망하게 생겼다’는 등의 폭언을 했다”라며 “의사로서 사명감과 책무를 저버리고 의료원과 이 교수 등 의사들의 명예를 실추시켰다”고 지적했다. 또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오른팔로 알려진 김용 전 경기도 대변인은 “환자의 생명권과 응급의료원 현장의 시스템 개선을 위해 자신을 돌보지 않는 한 사람에게 감사와 보상은 고사하고 욕 세례를 퍼붓는 의료원장의 갑질 행태가 참으로 유감스럽다”며 “한국을 떠날 분은 이 센터장이 아니라 유 원장”이라고 지적했다. 또 지난 16일 아주대 의과대학 교수회는 유 원장의 사과와 사임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작심 폭로했던 李 교수
궁지 몰린 아주대병원

아주대병원과 이 교수의 갈등은 지난해부터 이어져 왔다. 이 교수는 지난해 10월 열린 국정감사에서 “경기남부권역중증외상센터를 위한 세금과 국가 지원금이 전혀 관계없는 일에 사용되고 있다”고 폭로한 바 있다. 당시 이 교수는 병원 측이 ▲신규채용을 위한 예산 20억 여 원을 지원받았음에도 제대로 쓰지 않아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으며 ▲닥터헬기가 도입됐지만 주변 소음 민원 등으로 못 들어오게 하고 ▲병상을 많이 배정해주지 않아 외상센터 가동이 녹록치 않다고 주장했다. 깊어가던 갈등의 불씨가 이번 녹취록 공개로 인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이번 달 21일에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죽어도 한국에서 다시 (외상센터를) 하지 않을 것”이라며 “지금 보건복지부부터 아주대병원에 이르기까지 숨 쉬는 것 빼고 다 거짓말이다. 병원이 적자를 감수하고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 다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60여 억 원의 예산에도 불구하고 간호 인력 증원이 되지 않는 등 의료 환경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저하고 같이 비행 나가다가 간호사들이 손가락이 부러져 나가고, 유산하고 그런다. 피눈물이 난다”며 “제가 간호사들한테 ‘1년만 참아라, 6개월만 참아라’ 매일 이러면서 지금까지 끌고 왔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사의 표명한 李 교수 거취는?

이 교수는 지난 20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조만간 센터장 자리에서 물러나고, 센터 운영에도 관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교수의 사퇴는 오는 2월 3일로 예정돼 있다. 물론 아주대병원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가 이 교수 혼자 운영하는 곳은 아니다.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의 외상외과 전문 의사들은 약 20명의 의료진으로 구성돼 있다. 모두가 일당백의 유능한 의료진이기에 운영 자체는 큰 문제가 없을 가능성도 있다. 다만 이 교수가 가지고 있던 상징적인 의미를 잃어버리게 된다는 점에서 타격이 크다. 이 교수는 아주대병원 외상센터에서 근무하며 지난 2011년 ‘아덴만 여명’ 작전 당시 총상을 입은 석해균 선장의 목숨을 구해냈다. 2017년에는 ‘판문점 귀순’ 사건 도중 역시 총에 맞은 오청성을 살려내며 아주대병원의 이름을 국민의 뇌리에 각인했다. 정부 지원의 외상센터가 아주대병원에 유치된 것도 이 교수의 힘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이 교수의 사퇴가 확실해지면서 거취에 대한 궁금증도 일고 있다. 이 교수는 존재만으로도 병원의 신뢰도를 크게 끌어올려줄 수 있는 인물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이 교수와 단단한 협업 관계를 구축해왔던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이 교수를 스카우트하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실제 이 지사는 취임 직후부터 아주대병원에 닥터헬기를 추가 도입하는 등 외상센터 운영에 적극적으로 협조한 바 있다. 이 지사가 이 교수를 스카우트에 경기도의료원 등에 도립 외상센터를 운영하는 것 아니냐는 예측이 나온 이유다.
그러나 이 교수는 이런 예측을 일축했다. 그는 ‘얼마 전에 이재명 지사하고 만나셨는데, 뭔가 해법이 나오지는 않았느냐’는 김 앵커의 질문에 “나오기는 뭐가 나오느냐. 무슨 방법이 있느냐. 제가 (이 지사를) 보지도 못했다. 밑에 있는 보건과 사람들 잠깐 보고 나온 거다”라고 대답했다. 이어 “40분 정도 보건과 사람들하고 그 비서관들하고 그냥 같이 앉아 있었다. 그래도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없다”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외상센터) 안 한다. 저 죽어도 한국에서 다시는 이거 안 할 거다. 저는 그냥 보직 내려놓고 의과대학에서 일반 교수 하면 된다. 학생들 가르치고 그런 거 하면 된다”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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