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운전’에 딸 잃은 엄마 “살아갈 자신이 없다”

사고 장면을 담은 CCTV 영상 캡처 [사진=JTBC]
사고 장면을 담은 CCTV 영상 캡처 [사진=JTBC]

 

[일요서울 | 황기현 기자] 버스나 화물차, 굴착기 등 대형 차량들은 일반 운전자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차체 자체가 커 옆 차로 주행 시 존재만으로도 위압감을 주는 데다, 스치기만 해도 대형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 경찰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8년 화물차 등의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868명으로 전체 교통사고의 22.9%를 차지했다. 또 화물차 교통사고 치사율은 3.1%로 전체 교통사고 치사율(1.7%)의 1.82배에 달했다. 이처럼 ‘도로 위의 흉기’로 불리는 대형 차량에 초등학생 여자 아이가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공사차량 등 대형차량 난폭운전 ‘심각’
“단속·처벌 강화해야” 지적 이어져

안타까운 사건이 알려진 건 지난 17일이다. 자신을 11살 딸과 9살 아들을 키우던 평범한 엄마라고 소개한 A씨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2020년 1월 17일 오늘 저는 세상에서 가장 비극적인 엄마가 됐다”는 문장을 시작으로 긴 호소문을 올렸다. A씨에 따르면 그의 딸은 지난 14일 오후 2시 30분경 인도를 걷던 중 우회전하던 굴착기에 치여 숨을 거뒀다. 당시 굴착기는 편도 4차선 도로의 3차선을 달리던 중 주유소 진입을 위해 차선을 가로질러 우회전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앞에 가던 아이를 치인 것이다. A씨는 “1월 14일 우리 딸이 떠났다”라면서 “천사처럼 와서 엄마밖에 모른다던 우리 큰 딸, 집 앞 3분 거리 인도에서, 매일 다니던 그 길에서, 무겁디 무거운 굴착기 밑에서 억울한 죽음을 맞은 내 딸”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여느 때와 같이 평범한 하루였고, 사망 5분 전까지 저에게 문자를 보내준 딸이다”라며 “굴착기에 치여 응급실로 갔다는 전화 한 통에 잠옷 차림으로 한겨울에 여름 신발을 신고 뛰쳐나간 엄마는 이미 응급실에서 심정지가 와 심폐 소생실에 있던 만신창이 딸을 마주했다”고 호소했다. 그는 또 “아침에 제가 나가면서 봤던 천사가, 불과 몇 분 전 제가 문자를 했던 딸이 집 앞 주유소에 진입하는 굴착기에 치여 사망했다는 소식은 도저히 눈으로 보고 있어도 믿을 수 없었다”고 부연했다.
정신없이 장례식장으로 자리를 옮긴 A씨에게 경찰은 ‘주유소에 진입하던 굴착기가 따님을 미처 보지 못하고 사고를 냈다’고 사건 경위를 설명했다. 당초 A씨는 굴착기 기사의 음주를 의심했다고 한다. 하지만 경찰은 전방 부주의라고만 답변했다고 A씨는 강조했다. A씨는 “(경찰이) 자기도 자식을 키우는 부모로서 엄중한 처벌을 받을 수 있게 하겠다며 사체 인도를 위한 사인을 받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A씨는 한 매체의 뉴스 영상을 보고 굴착기가 3차로에서 차선을 가로질러 우회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몰랐던 사실에 황당함을 느낀 그는 경찰에게 전화해 이같은 사실을 알렸지만, 경찰은 관련 내용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상태였다고 A씨는 주장했다. 그는 “경찰이 CCTV 조사도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라면서 “경찰은 그저 전방부주의로 인한 사망 사고라고 했지만, 전방부주의를 할 수 밖에 없는 운전을 한 굴착기 기사가 길에서 대낮에 칼을 휘두르고 다니는 살인자와 어떤 것이 다른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A씨는 “그저 칼과 굴착기라는 도구만 다른 거 아니냐”라면서 “차로 한복판에서는 작은 승용차도 가로질러서 인도로 진입하지 않는다. 상식적으로 사각지대가 많은 굴착기를 운전하는 자격증을 가진 운전자가, 그렇게 운전했다는 건 실수를 가장한 살인이며, 이미 예고된 참변이라 말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피해 아이 母 “경찰, 제대로 된 설명 없었다”

A씨는 경찰이 사건과 관련해 제대로 된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고도 했다. 그는 “기사를 보고 (가해자가) 교통사고 특례법 위반으로 검찰이 기소됐다는 걸 알았다”라면서 “‘엄중한 처벌’이 어느 정도냐고 물었을 때 (경찰은) ‘검찰에 가봐야 하지만 아주 엄중한 처벌을 할 수 있도록 했다’고만 하고 떠났다”고 전했다. 이어 “경찰이 (가해자를) 교통사고 특례법 위반으로 기소한다는 설명도 없었다”라면서 “전방 부주의의 원인도 찾아보지 않은 경찰은 새까맣게 탄 엄마 마음을 굴착기 기사와 함께 더욱 새까맣게 태워냈다”고 읍소했다. A씨는 “저는 아직 이 대한민국에서 키워내야 할 9살짜리 아들이 있는데, 어떻게 마음 놓고 아이를 키워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경찰의 불성실한 조사에 대한 재조사와 함께, 굴착기 기사를 가중 처벌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단순 과실로 인한 사고라기엔 굴착기 기사의 예고된 살인 행위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대낮 인도에는 무수히 많은 사람이 있었고, 누구든 그 사고를 당할 수밖에 없는 운전이었다”고 주장했다. A씨는 “딸은 뛴 것도 아니고, 이어폰을 낀 것도 아니었다. 짧은 생을 마치고 먼 길을 홀로 외로이 떠난 딸의 억울함을 풀고, 이런 고의적인 살인 운전을 막기 위한 가중 처벌안을 마련해 달라”며 “우리 딸 같은 제2의 피해자가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호소했다.

“철저한 재수사 이루어져야”

경찰에 따르면 가해자는 ‘기름을 넣기 위해 근처에 있던 주유소로 진입하다 아이를 보지 못하고 사고를 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역시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여 전방 부주의로 인한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 혐의를 적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3차선 도로에서 바로 인도로 진입하는 것은 명백한 난폭운전이다. 단순 부주의가 아닌 난폭운전으로 인한 참사인 것이다. 이에 대해 지난 21일 사고 현장을 방문한 우형찬 서울시의회 의원은 “CCTV 확인과 함께 운전 중 통화여부, 졸음운전 등 운전자의 사고원인에 대한 규명과 함께 도로 인접 시설물의 안전시설 준수여부 등 원점에서 철저하게 재수사를 통해 진실을 밝혀야 한다”라면서 “ 이를 유가족에게 설명해야 할 것과 가해자는 법의 준엄한 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용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역시 “갑작스러운 아이의 죽음을 애도하고, 슬픔에 빠져있을 유가족 분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면서 “사고 원인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해 서울시와 자치구가 합심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교통사고 약 4건 중 1건이 사업용 자동차로 인한 사고임에도 처벌은 솜방망이라는 점이다. 지난해 삼성화재 부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가 2012~2017년 경찰청과 교통안전공단의 통계를 분석한 결과 사업용 자동차가 관련된 교통사고는 연평균 4만8228건으로, 전체 교통사고의 24.9%에 달했다. 사업용 자동차는 버스나 영업용 승합차, 택시, 화물차, 특수차(사다리차, 지게차 등) 등을 뜻한다. 1만 대당 사고는 사업용 자동차가 307건으로, 비(非)사업용의 4.5배 수준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화물차를 제외하면 난폭운전을 해도운송자격이 취소되지 않는다. 이에 일각에서는 사업용 자동차 난폭운전에 대한 운송자격 취소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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