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 불 망(三不忘) - [88]
삼 불 망(三不忘) - [88]
  • 우종철 자하문 연구소장
  • 입력 2020-01-28 16:31
  • 승인 2020.01.28 16:34
  • 호수 13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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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사직을 구한 불멸의 명신 이제현

 

노국공주가 죽고 난 후 1년 후의 일이다.

1365년(공민왕14) 2월 갑진일.

세차게 쏟아지던 봄비가 무시무시한 천둥 번개를 동반했다. 산실청은 비상이 걸렸다. 온몸이 찢어지는 듯한 진통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노국공주의 애처로운 소리가 산실청 밖으로까지 퍼져나왔다.

“왜 이리 더디다더냐!”

명덕태후 홍씨는 발을 동동 구르며 초초해했다. 공민왕은 대전에서 산실청의 소식을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밤은 깊어 마침내 자시로 접어들었다. 공민왕이 기다리다 지쳐 대전의 문을 열고 툇마루로 나서자, 혼비백산한 모습으로 달려오는 내시의 모습이 보였다. 이강달이었다.

“전하, 중전마마께서 난산(難産)으로 인해 그만 목숨을 잃고 말았사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공민왕은 망연자실하여 그만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전하가 쓰러지셨다!”

“전하, 전하!”

노국공주는 공민왕에게 아내인 동시에 정치적 반려자였다. 공주의 죽음은 계속되던 전란에 지친 공민왕을 절망감에 사로잡히게 하였다. 사랑을 잃은 왕은 시리고 아팠다. 왕은 공주의 죽음을 인정할 수 없었다.

공민왕은 무리를 잃은 기러기, 짝을 잃은 원앙처럼 슬픔에 겨워 잠시도 노국공주의 시신 곁을 떠나지 않으면서 단장(斷腸)의 오열을 했다.

조정의 원로이자 임금의 장인이기도 한 이제현은 노국공주의 죽음에 망연자실했다. 왕비가 죽은 후 자신의 딸인 혜비가 정비(正妃)가 되는 상황이었지만 불길한 생각이 앞을 가렸다. 공민왕이 너무나 사랑했던 왕비의 죽음이었기에 필경 공민왕이 정신적으로 타락하고 그 결과 조정에 암운이 드리우지 않을까 염려했기 때문이었다.

며칠을 심사숙고하던 이제현은 민망하여 공민왕에게 아뢰었다.

“전하, 온 백성이 국모를 잃은 슬픔에 오열하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주상께서는 이 나라의 지존이시옵니다. 국태민안(國泰民安)과 중전마마를 빨리 잊기 위해서라도 다른 궁전으로 거처를 옮기시지요.”

그러나 돌아온 비답은 공허한 말뿐이었다.

“내 한 몸만 편하자고 공주를 버리고 다른 곳으로 멀리 피해갈 수는 없습니다.”

“전하, 종사를 위해 옥체를 보존하셔야 하옵니다.”

“나는 그리할 수 없습니다…….”

“전하, 하늘나라로 떠나신 중전마마께서도 전하의 건승을 기원하고 계실 것입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노국공주가 너무 불쌍해서 나는 이 자리를 떠날 수 없습니다.”

“전하…….”

 

공민왕은 이후 사흘간 조회를 폐했다. 모든 관원들은 검은 갓에 흰 상복을 입었다. 빈전에서 사찰까지 제를 올리는 깃발이 길을 덮었고, 비단으로 절 건물을 휘감았다. 공주의 극락왕생을 비는 스님들의 범패(梵唄, 경 읽는 소리)소리, 바라(罷漏)소리와 북소리는 대지를 뒤흔들었다. 막대한 장례비용이 들어 국고가 텅텅 빌 지경이었다. 대단하고 화려한 국상이었다.

노국대장공주의 묘는 현재 개성시 개풍군 해선리 무선봉에 위치한 정릉(正陵)으로 공민왕릉인 현릉(玄陵)과 나란히 있는 쌍무덤이다. 쌍무덤 중 동쪽의 것이 정릉이고 서쪽의 것이 현릉이다.

 

노국공주의 국상이 끝나고 몇 달이 지났건만 공민왕은 왕비를 잃은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스스로 자신을 자학하며 나락 없는 슬픔의 세계로 몰입하는 상황이었다. 왕은 노국공주의 초상과 마주앉아서 음식 드는 절차를 평상시와 같이 하였다.

명덕태후 홍씨는 실의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아들 공민왕을 나무랐다.

“주상, 어째서 다른 비빈(妃嬪)들은 가까이 하지 않습니까?”

“태후마마, 노국공주만한 여자가 없습니다.”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자연의 이법입니다. 한 나라의 왕이 되어서 고작 그런 일로 수 개월 동안 애통해하시는 겁니까. 백성들이 알고 비웃을까 두렵습니다.”

 

“백성들의 신망이 소자에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민심을 잃으면 종사도 제대로 보전할 수 없다는 철리를 정녕 모르십니까?”

“소자는 노국공주에게 남편으로서의 도리를 다하는 것뿐입니다.”

“주상, 남편의 도리보다 국왕의 본분이 더 지엄합니다. 하루빨리 정신을 차리고 정사에 임하세요.”

“…….”

이처럼 명덕태후는 평소 공민왕에 대해 그의 허물을 자주 지적하였다. 이 때문에 공민왕은 모후를 만나는 것을 달갑지 않게 여겼다. 공민왕은 궁인이나 환관들에게 이렇게 명령했다.

“너희들은 과인의 허물을 명덕태후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라.”

공민왕이 갑자기 방황과 실정을 거듭하자 이제현을 앞세워 개혁정치를 펼쳐 욱일승천하던 고려의 국운이 갑자기 기울기 시작한다. 그 발단은 1365년 왕비 노국공주의 사망이었다. 노국공주가 갑자기 죽자 공민왕은 급격히 무너져 내렸다. 이는 고려의 몰락을 예고하는 서글픈 서막이었다. 역사에서 가정은 무의미 하지만 만약 노국공주가 일찍 죽지 않고 공민왕을 끝까지 보필했다면 고려의 역사가 달라져 있을 지도 모른다.

최영장군의 시련과 고려 왕조의 쇠운

신돈이 왕의 신임을 얻었으니 더 욕심을 부리지 말아야 했다. 그러나 요승의 욕망은 또 다른 야심을 낳아 끝내는 비극을 부른다. 신돈이 왕의 총애를 등에 업고 국정을 농단하니 민심은 흉흉해지고 국정은 난맥상을 보여 고려는 종말을 재촉하고 있었다.

1363년(공민왕12)에 일어난 ‘흥왕사의 변’으로 인하여 공민왕 측근 세력들 중 다수가 희생되었다. 정세운, 홍언박, 김용 등이 모두 제거됨으로써 왕을 뒷받침해 오던 측근 세력은 붕괴되었다. 그 대신 홍건적의 고려 침공을 계기로 신진 무장세력들이 주요 정치세력으로 등장하고 있었다.

을사년(1365, 공민왕14) 3월이 되었다.

진달래꽃과 개나리꽃이 온 산과 들을 붉고 노랗게 물들이며 화사한 색상과 자태를 뽐내는 계절이 돌아왔다. 이제현의 집 정원에도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그러나 이 해의 봄은 시작과 함께 손끝 시린 찬바람을 몰고 왔다. 이제현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 신돈은 궁궐을 자주 드나들면서 공민왕의 신임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신돈은 자신을 공민왕에게 소개해준 김원명(金元命)을 공민왕에게 천거하여 삼사좌사응양군상호군(三司左使應揚軍上護軍)에 제수하여 8위(衛) 42도부(都府)의 병권을 장악하게 했다. 군부를 장악한 신돈은 정권을 잡기 위해 암중모색(暗中摸索)하던 행보를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해 3월 어느 날.

마침내 신돈은 군부의 실력자 최영을 실각시키기 위한 모의에 착수했다.

“여봐라, 게 아무도 없느냐?”

“예. 대사님!”

방문이 열리자 집안을 호위하는 경호대장이 대청마루에 부복했다.

“김원명 대장군을 들라 해라.”

얼마 후 김원명이 헐레벌떡 숨이 턱에 닿을 듯이 신돈의 집으로 들어왔다.

“대사님, 부르셨습니까?”

“상의할 일이 있소이다. 옛말에 ‘낮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 했소.  좀 더 가까이 다가오시오.”

단 둘이 앉게 되자 신돈은 최영을 거세할 비책을 귀엣말로 김원명에게 설명했다.

“대장군, 이달 2일에 왜구가 강화도에 침입하였소. 금상은 왜구를 토벌하기 위해 찬성사 최영을 동서강 도지휘사로 임명하여 동강(임진강)으로 출진(出鎭)시켰소. 김 장군은 날랜 무사 30명을 뽑아 왜적으로 가장하여 개경 근교의 창릉(昌陵, 세조의 능)에 난입하여 비각에 불을 지르고 세조(世祖, 태조 왕건의 아버지)의 영정을 없애 버리시오. 그리고 반드시 왜구가 침입했다는 흔적을 남겨야 하오.”

“대사님, 정말 탁월한 생각입니다. 꿩 먹고 알 먹고, 둥지 털어 불 때고, 일거양득, 일석이조가 따로 없습니다. 분부 차질 없이 받들겠습니다.”

신돈은 최영에게 치명상을 주어 제거하는 첫 단계를 시작한 것이다. 김원명은 바짓가랑이에서 비파소리가 나도록 뛰어다니며 수하 불한당들을 움직여 신돈의 비책을 행동으로 옮겼다.

이튿날 아침. 조회에서 김원명은 공민왕에게 상주했다.

“전하, 간밤에 왜구 수십 명이 창릉에 침범하여 세조의 영정을 훔쳐가는 등 분탕질을 쳤다 하옵니다. 황공하기 이를 데 없사옵니다.”

“뭐라고? 도대체 왜구들은 어디로 침입해 왔단 말이냐?”

“강화도를 통해 침입했사옵니다.”

“최영 장군이 방비하고 있는 곳이 아니더냐?”

“그러하옵니다.”

“당장 최영을 불러라.”

급보가 날아갔다. 일기가 고르지 않아 금방이라도 소나기가 쏟아질 것만 같은 우중충한 봄날 저녁 무렵이었다. 영문도 모르는 최영은 말을 달려 허겁지겁 입궐했다.

“전하, 찾아계시옵니까?”

“최 장군은 대체 왜구를 막지 않고 무얼 하고 있었소?”

“물샐틈없이 왜구를 방어하고 있사옵니다.”

“뭐라고!”

공민왕은 노여움을 참지 못하고 연상을 내리치며 최영을 노려보았다.

“물샐틈없는 방어가 되었다면 어떻게 왜구가 창릉까지 침입할 수 있었겠소? 여봐라, 당장 최영을 삭탈관직하라! 그리고 그 자리를 김속명(金續命, 명덕태후의 인척. 김원명의 동생)이 대신하게 하여 왜구의 개경진입에 대비하라!”

공민왕은 용상에서 벌떡 일어나 편전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는 구국의 영웅을 의심하는 변덕을 부렸다. 최영은 변명할 기회도 갖지 못하고 청천 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우종철 자하문 연구소장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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