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한 교수
신용한 교수

흔히들 ‘상도의’라는 표현을 쓰곤 한다. 우리 사회 각 분야가 전문화, 세분화되고 사회 계약에 입각한 법률과 규칙에 의해 모든 일이 돌아가는 복잡다단한 세상이 되면서 대부분의 일은 법적인 틀 안에서 해결되지만, 때로는 법보다도 더 상위에 있고 법으로도 도저히 커버할 수 없는 영역도 해결할 수 있는 사회적 신뢰가 바로 ‘상도의’일 것이다.

전쟁터와도 같은 냉혹한 비즈니스 현장에서 실제 법으로 커버할 수 없는 현실 영역은 의외로 많다. 법을 악용하려는 세력도 있거니와, 머리로 생각하는 법과 현실에서 작동되는 법의 괴리가 커서 일반인인 미처 다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법률이나 규칙으로 커버할 수 없는 영역의 대부분은 당사자 간 합의에 의하거나 사회적 신뢰의 결정체인 ‘상도의’에 의존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노키아가 소위 피처폰으로 휴대폰 시장에서 한창 잘나갈 때 스마트폰이 활개를 치자 기존 휴대폰 시장 잠식을 우려한 나머지 신규 스마트폰 파트를 확대하는 노력을 등한시하여 도태했다. 미쯔비시도 DVD 시장이 뜨자 기존 잘나가던 VHS 방식의 비디오 필름 시장을 지키기 위해 DVD 파트를 등한시하면서 결국 자연 도태되는 상황을 맞았다. 

신상품을 론칭할 때나 제품 라인업을 교체할 때 내부적으로 서로 갉아먹는 자기잠식(carnivalization) 상황이기도 하고, 반대로 ‘팀킬(team kill)’ 상황도 발생하는 것이다. 팀킬이란 멀티플레이어 게임이나 스포츠에서 같은 편 동료를 공격하거나 죽이는 아군공격(我軍攻擊)을 말하지만, 비즈니스 현장에서도 간혹 발생하곤 한다. 

생존과 영리 극대화라는 기업의 절대 명제 앞에 그토록 끈끈했던 ‘패밀리’라는 명분과 신의도 단칼에 잘라버릴 수 있는 것이 냉엄한 비즈니스의 현실이라고는 하지만, 같은 아군끼리도 총을 겨누는 살벌한 상황 앞에 ‘상도의’는 공허해지고 무색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팀킬 상황을 최근의 여의도로 치환해 보자. 최근 정치권에서도 이런 ‘팀킬 상황’이 연이어 발생했다. 물과 기름처럼 오랫동안 갈등과 반목을 지속해오던 손학규 대표와 유승민 대표 간의 결별 사태가 벌어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대주주라며 치켜세우던 안철수 대표와도 결별하게 된 것이다. 서로 손을 맞잡고 시너지를 내기는커녕 2018년도 지방선거 이후 지금까지 일년 반이 넘도록 갈등 상황만 연출해 오다가 결국 모두 파국을 맞게 된 것이다.

비즈니스 전쟁터에서의 팀킬은 때때로 매너리즘에 빠져 안주하는 소위 ‘패밀리 비즈니스’에 경종을 울리면서 긍정적인 ‘메기 효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그러나 정치에서의 팀킬은 어떠한가? 이념적 정체성과 공통된 가치와 비전을 무기로 정권을 가져오는 것을 목표로 한마음 한 뜻으로 전진하는 것은 온데간데없다. 

오히려 한 자릿수에 머무는 정당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날 새는 줄 모르고 끝없이 싸우고 헐뜯는 사이에 정작 주인인 국민들로부터는 완전히 외면당하는 수준으로 떨어지는 모습 앞에 과연 정치에서의 ‘상도의’는 어디로 사라졌는가. 

수많은 기업들이 자기잠식과 팀킬의 상황을 겪으며 단기간에 명멸을 거듭하였다. 그나마 철저한 시장 분석과 마케팅 전략에 입각하여 진행하는 비즈니스에서 팀킬의 결과가 이러할진대, 하물며 가장 짧은 권력이라 일컬어지는 여의도 정치에서의 팀킬의 끝은 어디일까?

한마음 한뜻으로 전진하는 시너지 효과는 애당초 기대난망이었지만, 냉엄한 비즈니스 현실에서의 ‘메기 효과’도 없이 소아(小我)적인 목표에 집착한 나머지 ‘패밀리’라는 명분과 신의도 단칼에 잘라버리고 서로가 서로의 미래마저 완전히 갉아먹는 자기잠식(self-carnivalization) 상황과 팀킬 앞에 무기력하게 사라져 버린 ‘상도의’가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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