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에서 일방적 교체 논란…해당 지역 공공기관 직원은 ‘휴가’

지하철 역사에 비치된 손 소독제 [사진=황기현 기자]
지하철 역사에 비치된 손 소독제 [사진=황기현 기자]

 

[일요서울 | 황기현 기자] 중국발 우한 폐렴 바이러스(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일로다.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오전 0시를 기준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망자는 213명, 확진자가 9692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날 하루 동안에만 사망자가 43명, 확진자는 1982명, 중증 환자가 157명 늘어난 수치다. 일각에서는 중국 당국 발표의 신뢰도를 문제 삼으며 실제 감염자는 훨씬 많을 것이라는 지적도 일고 있다. 또 같은 날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중국 이외 18개국에서도 98건의 감염 사례가 발생했다. 대한민국을 비롯해 독일과 일본, 베트남, 미국 등에서는 사람 간 전염 사례도 나왔다. 국내에서는 31일 오전 10시 50분 현재 7명의 확진환자가 확인되며 국민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격리 수용 이해하지만 정부의 격리지역 선정이 문제”
‘우리가 아산이다’ 일각에서는 교민 환영 운동도

상황이 심각해지며 국민들 사이에서는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괴담’마저 번지고 있다. 특히 자체적인 팩트 체크가 어려운 노령층에서 괴담의 확산 속도가 상당히 빠른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도 구리시에 거주 중인 80대 여성 A씨는 “눈만 마주쳐도 (우한 폐렴에) 감염될 수 있다고 한다”고 했다. 정보를 어디서 얻었느냐는 질문에는 “인터넷에서 봤다”며 “독일에서 감염 사례가 있다고 했다”고 대답했다. 또 ‘코와 입, 손에 안티푸라민을 바르면 세균이 호흡기에 들어오지 못 한다’는 루머가 카카오톡 메시지 등을 통해 전파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외에도 중국산 김치 등을 먹으면 우한 폐렴에 감염된다거나 공기를 통해 전파된다는 내용도 사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우한 폐렴 괴담’ 신빙성은

하지만 이 같은 루머는 대부분 신빙성이 없는 것들이다. 우한 폐렴의 전파는 감염자의 비말(침) 등 체액이 호흡기 또는 점막에 들어가야 가능하다. 단순히 중국산 김치를 먹는다고 해서 감염될 확률은 사실상 없다. 다만 감염자와 음식을 한 그릇에 놓고 함께 먹을 경우에는 감염 확률이 있다. 실제 국내 3차 감염자로부터 2차 감염된 50대 남성의 경우 3차 감염자와 불고기를 함께 먹은 것으로 알려졌다. 눈만 마주쳐도 감염이 된다는 일명 ‘각막감염’ 역시 근거가 없다. 앞서 설명했듯 감염자의 침이 묻은 손으로 눈을 비비거나 호흡기에 접촉할 경우에만 감염 가능성이 있다. 현재로서 감염 예방을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손을 자주 씻고, 상대방의 체액이 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마스크를 사용하는 것이다. 무증상 잠복기 상태에서 전파가 이뤄지거나, 공기 전파로만 감염이 이뤄진 사례도 아직까지는 없었고, 확률도 낮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했다. 전문가들의 설명에도 국민들이 느끼는 불안감이 가시지 않는 것은 ‘혹시나’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이미 온라인 쇼핑몰과 오픈 마켓 등에서는 마스크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특히 국내에서 2차 감염이 발생한 이후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해졌다. 감염자와 직·간접적으로 접촉한 사람이 최소 수십에서 많게는 수백 명에 이르기에 ‘언제, 어디서 접촉자와 스쳐 지나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커지는 상황이다.

‘우한 교민 격리수용’ 장소 선정 논란

현재 대한민국에서 우한 폐렴의 전파 상황만큼이나 심각한 문제가 ‘교민 격리 수용’이다. 당초 문재인 정부는 우한에 거주 중인 우리 교민 700여 명을 전세기로 수송해 충청남도 천안에 격리 수용한 뒤 경과를 지켜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정부는 격리 수용 장소를 하루 만에 변경했다. 처음 격리 수용소로 천안 국립청소년 수련원을 지정했으나, 지역민의 반발이 이어지자 충남 아산의 경찰인재개발원과 충북 진천의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으로 뒤집은 것이다. 김강립 보건복지부 차관은 지난달 29일 열린 브리핑에서 “전염 우려를 최소화하기 위해 국가시설인 공무원 연수원, 교육원을 우선적으로 고려했다”며 “연수원 교육원 중에선 시설 수용 능력, 인근 지역 의료시설 위치, 공항에서 시설 간 이동거리, 지역 안배 등을 감안했다”고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천안 우정공무원교육원도 수용 적합 시설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충남에서만 두 곳을 선정하면 형평성이 떨어져 진천으로 결정한 것이라고도 설명했다. 귀국 대상자는 감염 증상이 없는 사람에 한정된다고 부연했다.
그러나 소식을 접한 아산·진천 주민들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지역 주민들은 “합리적 기준도 절차적 타당성도 없는 독단적인 결정”이라며 반대 집회에 나섰다. 진천군의회 의원들 역시 “정부가 중국 우한 교민과 유학생들을 사전 협의 및 조율 없이 진천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에 수용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특히 인근 충북혁신도시는 209만평 규모에 약 2만6천명의 인구가 몰려있는 주거밀집지역이어서 절대 부적합하다. 당초 거론된 지역은 주거 밀집지역이 아닌 천안의 외곽지역이었는데, 해당지역 주민들의 거센 반대의견을 반영해 충북 진천군과 충남 아산지역으로 수용한다는 것은 진천군민과 음성군민, 나아가 충북도민을 무시한 결정”이라고 일갈했다.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은 30일 현장을 찾았다가 분노한 주민들에게 계란을 맞기도 했다. 또 일각에서는 천안이 아산·진천보다 인구가 많다는 점을 근거로 오는 4월 치러질 총선을 염두에 둔 정치적 결정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특히 31일 귀국한 교민 중 18명이 의심 증상을 보여 격리되면서 ‘무증상자만 데려온다’는 정부 발표가 거짓이었다는 비판까지 일고 있다.

文 “주민 불안 이해…빈틈없이 관리할 것”
해당 지역 공공기관 직원들은 ‘공가’ 처리

논란이 커지자 문재인 대통령은 직접 민심 달래기에 나섰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주재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응 종합점검 회의’ 모두발언에서 “현재까지 현지 교민 가운데 감염증 확진자나 의심환자는 없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면서 “귀국 교민들은 귀국 후 일정 기간 외부와 격리된 별도의 시설에서 생활하며 검사받게 된다. 안전은 물론, 완벽한 차단을 통해 지역사회의 감염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는 임시생활시설이 운영되는 지역의 주민들의 불안을 이해한다”며 “그에 대한 대책을 충분히 세우고 있고 걱정하시지 않도록 정부가 빈틈없이 관리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불안해하시지 않아도 된다”고 당부했다.
그러나 지역 주민들의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붓는 일이 발생했다. 수용시설 인근에 위치한 공공기관들이 직원들에게 ‘공가(公暇)’를 허용한 것이다. 30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과 한국교육개발원은 이날부터 이틀간 직원들에게 공가를 허용했다고 밝혔다. 공가는 병가(病暇) 이외의 원인에 해당하는 정당한 사유가 있을 때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에게 허가하는 휴가제도다. 이들 기관은 직원들이 불안해할 수 있다고 판단해 공가를 허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수용소 중 한 곳이 양 기관과 200m가량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민들은 ‘정부가 (격리 교민을) 빈틈없이 관리한다고 했는데 공공기관 직원들에게 공가를 부여하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다’며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정부의 발표처럼 격리 교민이 완벽하게 관리된다면 공공기관 직원들이 공가를 쓸 이유가 없지 않냐는 것이다. 이처럼 끊이지 않는 논란에도 31일 아산·진천 주민들은 교민 격리 수용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산·진천 주민들의 반대를 ‘님비(NIMBY)’ 등 지역 이기주의로 치부하는 여론이 만만치 않았던 데다, 교민들이 이미 도착한 상황에서 물리력으로 이를 저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일부 네티즌들은 ‘우리가 아산이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교민 환영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다만 주민들은 정부에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구체적 대응 방안을 요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제희 진천군 덕산읍 이장단협의회장은 “오늘 아침 비대위원들이 만나 정부가 하는 걸 무작정 막을 수 없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데 뜻을 모았다”라면서 “충북 혁신도시에 대한 철저한 방역과 마스크, 손 세정제 지급 등 주민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을 당국에 요구 하겠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날 오후 12시 50분경 인재개발원에 도착한 교민들은 주민 반발 없이 시설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교민들은 인재개발원에서 2주간 격리수용 된 뒤 특별한 증상이 나타나지 않으면 보건교육을 받고 귀가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미 입국 단계에서 18명의 유증상자가 나타난 것은 물론 수도권에서 확진자도 잇따라 발생하고 있어 우한 폐렴 사태는 이제 시작이라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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