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지역 15곳 ‘민주당 강세’…‘전략공천 탈 쓴 낙하산 공천’ 날 선 비판도

[일요서울 | 강민정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전략공천 지역 15곳을 발표한 뒤 당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민주당 전략공천위원회는 지난 17일 21대 총선에서 현역 국회의원이 불출마하는 곳을 전략 지역으로 확정했다고 밝혔다. 앞서 민주당은 지난해 7월1일 공천룰을 확정할 당시 제1원칙으로 ‘당내 경선’을 내걸었다. 아울러 이해찬 당대표 역시 전략공천을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을 줄곧 강조해 왔다. 전략지역 발표 이후 그곳에서 앞서 표밭을 일구고 있던 예비후보자들 사이에서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같은 예열을 식히지 못하고 과열될 경우 공천 과정에서 잡음이 빚어질 공산이 크다. 민주당이 총선에 앞서 통과해야 할 첫 번째 관문이다. 일요서울이 스스로를 ‘유령후보’라고 자칭하는 전략지역의 예비후보자들의 사정을 들여다봤다. 

이해찬(왼쪽)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인영(오른쪽) 민주당 원내대표. [뉴시스]
이해찬(왼쪽)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인영(오른쪽) 민주당 원내대표. [뉴시스]

-민주 “전략선거구 지정=전략공천 아냐…경선 가능성 있다” 잡음 미연 방지
-전략지역 예비후보자 “기존 후보 경쟁력 평가·지역 실사 이뤄져야”

4.15총선이 다가오면서 정치권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흔히 선거를 ‘총성 없는 전쟁’이라고 표현한다. 유권자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출마자들은 사활을 걸고 선거에 매진한다. 선거판은 말 그대로 총칼 없는 전쟁터인 셈이다. 하지만 전쟁은 본선에서만 치르는 게 아니다. 본선에 앞서 그곳에서 누빌 ‘장수’가 되기 위해 당내 경선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지난해 7월1일 확정한 공천룰을 통해 ‘제1원칙은 경선’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해찬 대표 역시 동일한 의견을 지속적으로 내비쳐 왔다. 하지만 민주당 전략공천위원회가 지난 17일 현역 의원 불출마 지역을 포함한 15곳을 전략지역으로 확정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민주당은 후보자의 경우 전략공천을 할지, 경선 지역으로 지정할지에 대해서는 추후 논의를 이어간다는 입장이다. 앞서 이근형 전략기획위원장도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진행된 첫 전략공천관리위원회 회의 이후 기자들과 만나 “전략선거구로 지정되더라도 꼭 전략공천이 된다는 뜻은 아니다”라며 “그 중 예외적으로 경선으로 돌려지는 지역도 있을 수 있다”라고 가능성을 열어뒀다. 다만 그곳에서 미리 표밭을 닦던 예비후보자들은 ‘당내 경선’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중량감 있는 후보? 지역 표심은 다르다”

서울 광진을에 예비후보로 등록한 김상진 전 청와대 행정관은 중앙당을 향해 여론조사와 지역실사 등을 통한 후보자 경쟁력 검증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전 행정관은 당초 이 문제에 관해 많은 목소리를 내 온 바 있다. 그는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나는 ‘유령후보’다”라고 중앙당을 향해 뼈 있는 말을 했다.

김 전 행전관은 “나는 민주당으로부터 적격 후보로 인정을 받고 지난해 12월17일 선거관리위원회 예비후보로 등록한 후 새벽부터 저녁까지 지역을 누비며 활동하고 있다”며 “그런데 매일 광진을 지역은 야당 후보가 강세여서 중량감 있는 인사로 전략공천을 한다고 한다. 지역주민들은 내게 ‘어차피 다른 사람이 온다는데 뭘 그리 열심히 하느냐’고 말한다”라고 토로했다. 이어 “나는 민주당에서 인정한 예비후보로서 활동하고 있는 실체가 있지만 사실상 ‘유령후보’”라고 덧붙였다.

그는 지난 29일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당에서 밝혀 왔던 전략공천의 전제는 ‘해당 지역에 당선 가능성이 있는 후보가 없을 경우’였다”라며 “(전략지역을 선정할 땐) 기존 후보들에 대한 경쟁력 평가와 지역 실사가 이뤄져야 하고, 그 뒤에 ‘우리 당 후보가 그곳에서 당선하기 어렵겠다’라고 판단될 경우 전략공천 지역으로 묶어야 한다”라고 밝혔다. 이어 “이런 절차를 모두 생략하고 현재 (지역구에서) 활동하는 후보들을 배제한 채 전략지역으로 묶는다면 이해찬 당대표가 그동안 선언했던 내용에도 어긋난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광진을의 경우 중앙당 차원에서 지금까지 오세훈 자유한국당 후보와 나를 두고 선거에서 후보자 간 경쟁력 비교를 한 적조차 없다”라며 “이같은 조사 한 번 없이 ‘야당의 대권후보로 거론되는 인물이 지역에 출마하니 중량감 있는 인물을 내세워야 된다’라는 논리인데, 실제 지역 표심은 그렇지 않다”라고 반박했다. 

이처럼 전략지역에서 미리 주민들과 살을 맞대 온 예비후보들은 실제 지역 민심은 전략공천에 부정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의 지역구인 서울 구로을에 예비후보로 등록한 조규영 전 서울시의원은 지난 30일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사실 구로는 민주당에 응원을 많이 해주는 지역인데 이번 선거에서는 특히 인물을 보고 뽑겠다는 ‘인물론’이 제기되고 있다”라며 “그 원인은 이곳이 전략지역이 되고, 나아가 전략공천이 될 것이라는 (구로민들의) 우려 때문”이라고 말했다.

조 전 시의원은 구로에서 서울시 3선 의원과 서울시의회 부의장을 지내고 지난 구로구청장 경선에 출마한 지역밀착형 정치인이다. 

해당 지역에 전략공천을 받을 것으로 거론되는 인물은 윤건영 전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이다. 다만 윤 전 실장은 선거 과정에서 넘어야 할 난관 몇 가지가 있다. 자유한국당은 앞선 지난 15일 윤 전 실장과 박 장관이 함께 지역구 행사에 다녔다며 이들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대검찰청에 고발했다. 

또 이번 4.15총선에 청와대 출신 인사가 대거 뛰어든다는 점도 불리한 요소로 작용한다. 이에 대해 당 안팎에서 자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됐다. 이러한 여론 역시 윤 전 실장의 전략공천설에 대한 지역민들의 반감을 조성했을 것으로 해석된다.

윤 전 실장의 출마에 관해 조 전 시의원은 “출마 여부는 헌법상에 명시된 본인의 피선거권 권한이니 존중한다”면서도 “하지만 윤 전 실장이 지역민에게 얼굴을 알리는 과정에서 불미스러운 일들이 있었고, 그가 민주당 후보뿐만 아니라 (선거에서) 승리하는 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구민과 당원을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경선이다”라고 강조했다. 

윤 전 실장도 이러한 논란을 염두에 둔 것으로 관측된다. 그는 31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서울 구로을 출마 의사를 밝히며 “공정한 과정이 될 것이라 믿으며, 나 자신의 유불리를 따지지 않겠다”라고 언급했다.

與, ‘공정’ 강조하지만…전략공천 논란 ‘자승자박’

현재 민주당이 확정한 전략지역은 ▲서울 종로(정세균) ▲서울 광진을(추미애) ▲서울 용산(진영) ▲서울 구로을(박영선) ▲경기 고양병(유은혜) ▲경기 고양정(김현미) ▲경기 용인정(표창원) ▲경기 의정부갑(문희상) ▲경기 광명갑(백재현) ▲경기 부천오정(원혜영) ▲경남 양산을(서형수) ▲세종(이해찬) ▲제주 제주갑(강창일) 등 현역의원이 불출마하는 13곳과 지역위원장이 공석인 ▲부산 남구갑 ▲경북 경주 등이다.

이와 관련해 ‘현역 의원 불출마 지역’이라는 이유 하나로 전략지역으로 선정한 것이 불합리한 처사라는 의견이 나온다. 불출마를 선언한 의원 대다수는 당의 중진 의원이다. 해당 지역들은 이들이 오랜 시간 기반을 닦아 선거에서 민주당의 우세가 예견된다. 그런 곳에 전략공천을 한다는 것이 다소 불공정하다는 견해다. ‘전략공천’이라는 명분으로 ‘낙하산 공천’을 하는 것 아니냐는 날선 비판도 제기된다. 

이는 다소 예민한 주제다. 지난해부터 급부상하고 있는 사회적 가치는 바로 ‘공정’이다. 민주당 역시 이를 거듭 강조하고 있다. 민주당 중앙당공직선거후보자추천관리위원회(이하 공관위) 위원장을 맡은 원혜영 의원은 지난 14일 회의에서 “공관위의 핵심적인 역할이란 우리당의 승리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한편,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공정성을 확보하는 일”이라며 “때로 이 둘은 상충하는 가치처럼 오해될 수 있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오해일 뿐, 공정함의 가치를 지키는 것 이상의 전략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이해찬 당대표 역시 이튿날인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국민과 당원들이 납득할 논리와 근거가 있을 때만 제한적으로 전략공천을 하도록 하겠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만약 전략공천의 정당한 명분 없이 ‘낙하산 공천’처럼 비춰질 경우, 민주당 스스로 모순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김 전 행정관은 “불출마 지역은 그동안 민주당이 지속적으로 당선돼 왔던 곳이다”라며 “이 지역들은 민주당 지지층이 두껍기 때문에, 그동안 당에서 언급했던 전략공천의 의도대로라면 전략공천이 아닌 당내에서 경쟁력을 지닌 후보를 내세워야 하는 지역”이라고 꼬집었다. 또 “자칫 잘못하면 전략공천이 ‘낙하산 공천’을 하기 위한 수단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조 전 시의원은 “(만약 우려대로 전략공천이 될 경우) 낙하산 공천보다는 ‘특혜 공천’이라는 말이 더 맞는 것 같다. 낙하산이면서 동시에 특혜인, ‘특혜 낙하산’인 거다”라고 말했다.

그는 “전략지역 15곳은 그 지역 당원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민주당 강세 지역”이라며 “그런 지역에서 당원의 요구와 뜻을 반영하지 않은 ‘낙하산 공천’을 한다는 건 사실 누군가에게 특혜를 주겠다는 의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라고 질타했다. 아울러 “지역을 가꾸고 지켜온 사람들이 있고, 그들의 노력이 있는데 이를 배제한 채 성과만 가져가려는 공천은 안 된다는 것이 이곳 주민과 당원들의 정서”라고 부연했다.

조 전 시의원이 출마하는 구로을은 박 장관이 잇달아 3번 당선된 지역이다. 박 장관은 4선 의원으로, 비례대표로 정치에 입문한 뒤 18대 선거에서 구로을에서 지역구 의원에 도전했다. 당선된 뒤 19·20대까지 줄곧 그 지역의 지역구 배지를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4.15총선에는 장관직을 수행하기 위해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박 장관을 비롯해 추미애 법무부 장관,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등 민주당 여성 중진 의원이 총선에서 선수로 활약하지 않는 것이다.

민주당은 여성의 정치 참여 확대를 위해 ‘당내 경선 시 여성 후보 25% 가산점’, ‘여성 지역구 30% 공천’ 등의 규칙을 확립했다. 조 전 시의원 역시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해당 지역구에 남성 후보자가 전략공천될 경우 ‘여성 지역구 30% 공천’이라는 말이 결국 유명무실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조 전 후보자는 “현재까지 접수한 지역구 후보자 475명 가운데 여자는 62명으로 전체 접수자 중 15%밖에 안 된다”라며 “당에서 ‘여성 지역구 30% 공천’을 수차례 언급해 왔지만 신청자가 30%가 안 된다. 그런 상황에서 나처럼 시의원 활동을 통해 충분히 검증 받고 본선 경쟁력을 지닌 여성 후보를 제외해 버리고 (이 지역에) 남성 후보를 전략공천한다면, 여성 대표성을 향상시키겠단 당의 의지가 전혀 없다는 반증이 될 것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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