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 불 망(三不忘) - [89]
삼 불 망(三不忘) - [89]
  • 우종철 자하문 연구소장
  • 입력 2020-02-03 14:03
  • 승인 2020.02.03 14:06
  • 호수 13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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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사직을 구한 불멸의 명신 이제현

공민왕, 요승 신돈을 왕사로 발탁

그해 5월. 마침내 정치도박이 시작되었다.

공민왕은 자신을 뒷받침해오던 측근 세력인 정세운, 홍언박, 김용 등이 모두 제거된 힘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무명의 요승 신돈을 파격적으로 왕사(王師)로 발탁한 것이다. 노국공주가 죽은 지 꼭 석 달만의 일이었다.

어느 날 신돈은 공민왕의 부름을 받고 편전에 부복했다.

“전하, 찾으셨사옵니까?”

공민왕은 결연한 눈빛으로 신돈의 두 손을 덥석 움켜잡고 말했다.

“과인은 결심했소, 대사! 날마다 대사와 더불어 국사를 논하고 싶소. 대사를 왕의 사부로 모실까 하는데 대사의 생각은 어떻소?”

“전하, 망극하옵니다. 소승은 범부로 지존의 몸이신 제왕의 사부가 될 자격이 없사옵니다. 그러니 하명을 거두어주시기 바라옵니다.”

“대사, 주나라 문왕은 위수 강가에서 강태공을 만난 뒤에 스승으로 삼아 천하를 통일했소이다. 대사는 욕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친당(親黨)이 없어 국사를 맡길 만하오. 그러니 과인을 도와주시오.”

거듭되는 공민왕의 요청에 마지 못하는 척 신돈은 응했다.

“전하, 소승의 미천함을 개의치 않으시고 그토록 믿어 주시니 하해와 같으신 은혜를 어찌 감당할지 두렵사옵니다. 소승 신수이처(身首異處)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전하의 견마지역(犬馬之役)을 다하겠사옵니다.”

“대사, 고맙소이다.”

순간 신돈의 뇌리에는 한 가지 생각이 번개처럼 떠올랐다. 바로 자신을 참소하는 신하들에 대한 영구적인 방비책이었다.

“전하, 그런데 소승이 국사가 되면 반드시 참소하는 신하들이 있을 것이옵니다. 소승이 듣기로는 옛말에 ‘국왕과 대신은 참소와 이간하는 말을 쉽게 믿는다’고 하오니, 이와 같은 일이 없어야 세상에 복과 이익을 줄 수 있을 것이옵니다.”

“과인의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참소하는 자들은 임금의 권도(權道)로 용서하지 않을 것이오. 그래도 믿지 못하겠거든 여기 글을 써서 맹세를 남기리다.”

공민왕은 ‘나는 스승을 구하고, 스승은 나를 구하니, 천지신명께 맹세코 변치 않으리라’ 라는 맹세의 글을 손수 써서 신돈에게 건네주었다.

용의주도한 신돈은 배사(拜謝)하고 편전을 물러나왔다.

‘아아, 일구월심 이 날이 오기를 얼마나 기다리고 또 기다렸던가. 이 순간이 정녕 꿈이 아니길…….’

신돈은 자기 살을 꼬집었다. 지난 7년간의 공민왕과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그는 자신이야말로 ‘이세독립지인(離世獨立之人)’으로 공민왕의 개혁을 완수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한편, 신돈이 왕사로 발탁되자 왕사 보우스님은 공민왕에게 다음과 같은 글을 올린 뒤 왕사의 인장을 반납하고 전주 보광사(普光寺)로 들어갔다.

“나라가 잘 다스려지려면 진승(眞僧)이 그 뜻을 얻고, 나라가 위태로워지면 사승(邪僧)이 때를 만납니다. 왕께서 살피시고 신돈을 멀리하시면 국가의 큰 다행이겠습니다.”

이 소식은 도성 안은 물론 전국으로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신돈이 왕의 사부가 되고 진평후(眞平侯)에 봉해졌다네. 그 때문에 보우스님이 왕사 자리를 버리고 자취를 감추었다네.”

“신돈이 왕사로 봉해지는 날 개경 주변에 지진이 일어났다네. 이는 필시 나라에 큰 재앙이 들 징조 아니던가.”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는 말이 있듯이 항간에 떠돌아다니는 말은 초여름 바람을 타고 수철동 이제현의 집에까지 전해졌다.

이제현은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결단을 내려야 할 때 결단을 내리지 못하면 천추의 후회를 남기는 법이다. 그는 팔십이 다된 노구를 이끌고 대궐로 향했다. 국구(國舅)로 대궐에 드나드는 것이 볼썽사납다고 생각하고 조정행사 이외에는 좀처럼  발걸음을 하지 않은 지가 벌써 여러 해가 된 까닭에 대궐행이 새삼스러웠다.

공민왕은 갑작스런 이제현의 입궐 이유가 궁금하다는 투로 인사를 했다.

“장인어른, 어인 일이십니까? 요즈음 거동이 불편하시다는 이야기를 듣고 전의를 보내드렸는데…….”

“전하, 전하의 하해와 같은 성은에 감읍 드리옵니다. 이렇게 기력을 조금 회복하여 전하의 용안을 뵙게 되어 감개무량하옵니다.”

“장인어른의 건강한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입니다.”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이제현은 임금의 장인으로서가 아니라 십여 년 전에 임금에게 성리학을 가르쳤던 스승의 자격으로 간언했다.

“전하, 그 옛날 소신이 전하께 주돈이(周敦, 북송의 주자학의 비조)의 통서(通書)를 강의한 적이 있는데 기억나시옵니까?”

“예, 그렇습니다.”

“주돈이는 ‘사람들은 잘못이 있어도 다른 사람들이 바로잡아 주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이는 마치 병을 감싸 안아 숨기면서 의원을 기피해 자신의 몸을 망치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것과 같다(護疾忌醫 호질기의)’고 가르쳤습니다.”

“…….”

“전하, 신돈을 임금의 사부로 결정하셨다는데, 그 사람의 어떤 면을 보고 그렇게 하셨는지요?”

“그는 세속이나 물욕에 초연하고 붕당으로 연결된 정치 기반이 없는 인물입니다. 국난이 있을 것도 미리 예견하여 맞추지 않았습니까.”

“전하, 그 사람은 불학(佛學)을 하는 스님이 아니라 풍수를 하는 점술가입니다.”

“…….”

“제왕의 사부는 탁월한 경륜과 덕망을 갖춘 인격자를 요구합니다. 전하께서 즉위  후 지금까지 하신 정동행성 폐지, 쌍성총관부 회복, 북벌단행 등의 개혁정책들은 고려의 군관민(軍官民)이 혼연일체가 되어 한 일이지 풍수가가 얘기하는 어떤 길조나 우연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옵니다. 따라서 향후 고려의 재건을 위해서는 청렴한 신진 사대부들을 등용하여 조정에 새바람을 일으켜야 하옵니다. 신돈의 요언은 전하의 밝으신 성총을 흐리게 만들 뿐이옵니다. 신돈의 참언으로 기울어 가는 고려의 국운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는 없사옵니다. 전하, 노신이 살면 앞으로 몇 년을 살겠습니까. 노신의 마지막 간언을 너무 가벼이 여기지 마시옵소서. 신돈을 사부로 맞이하신다는 결정은 철회해주시기 바라옵니다.”

“장인어른의 생각이 그러하시다면 깊이 생각해보겠습니다.”

공민왕은 장인의 면전에서 차마 ‘신돈을 내칠 수 없습니다’라는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그도 임금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인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결국에는  이제현의 간언도 공민왕에게 소귀에 경 읽기요, 마이동풍(馬耳東風)이었다.

죽음을 몇 년 앞둔 노 정치인의 애절한 충간을 공민왕은 외면했다. 그것은 고려의 불행이자 공민왕의 불행이었다. 더욱이 그 일로 인해 공민왕 자신이 죽음을 재촉하게 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이후 공민왕은 신돈에게 국정운영에 대한 전권을 위임하고 조신들을 견제토록 했으며, 자신은 노국공주의 명복을 비는 불사에만 전념했다.

<다음 호에 계속>

우종철 자하문 연구소장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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