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개봉된 영화 ‘남산의 부장들’은 10.26 사태에서 시작한다.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재규가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하기까지 마지막 40일 동안의 이야기를 그렸다. 영화는 김재규, 박정희라는 이름 대신 김규평, 박통이라는 배역 명을 사용하여 실명을 피했다. 실존 인물이 아니라고 시치미를 떼지만 박정희 정권 말기를 그렸다는 걸 누구나 알 수 있다.

이 영화의 70%는 팩트지만, 30%는 허구다. 그러나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의 수사결과 발표 장면과 김재규의 법정 최후진술 기록화면 때문에 관객이 영화 전체를 픽션이 아니라 논픽션으로 오인하도록 기획되어 있다.

이 영화 속에는 허구가 상당하지만 대표적인 것만 들어보자. 김형욱과 김재규가 친구로 나오는데, 사실 연배 차이가 있다. 김재규가 빗속에서 궁정동 안가를 월담해 도청한 것도 허구다. 허구의 절정은 김재규가 5.16 혁명 당시 한강 다리를 건너며 혁명의 대의를 박정희 소장에게 말한 것으로 돼 있는데, 김재규는 한강 다리를 건너지 않았으며 목숨을 건 혁명 주체는 아니었다. 박정희가 군대 동기이자 고향 후배라는 인연 때문에 김재규를 중용했을 뿐이다.

이처럼 영화 ‘남산의 부장들’이 역사왜곡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영화 속의 박정희는 권력 유지에만 골몰하는 독재자의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 5.16 혁명 초기의 이상 같은 것은 간데없다. 그리고 자신의 명예와 이익에만 집중하는 소인배라는 점도 암시했다. “흑백 TV를 왜 칼라 TV로 바꾸지 않느냐”는 질문에 박정희는, “자기 얼굴이 흑백에 어울리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박용각(김형욱)을 암살한 후엔, 박용각이 가지고 간 비자금을 회수했는지에만 관심을 보였다. 이런 지도자가 어떻게 ‘한강의 기적’을 이룩할 수 있었단 말인가.

심층적인 김재규 묘사와는 달리 박정희 묘사는 과도하게 단순했다. 친북 미 대통령인 지미 가터의 주한미군 철수를 둘러싼 문제, 특히 1979년 6월 말에 이루어진 한미정상회담은 다루지 않고 9월부터 심화된 정치적 위기에 관한 의견 교환, 특히 글라이스틴 주한 미국 대사의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거부감을 통해 미국의 한국 민주화에 대한 압력이 전달되고 있다.

반면 카터의 주한미군 철수 강요에 대비하여 독자적인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박정희의 자주적인 국정운영과 카터와의 담판으로 주한미군 철수계획을 저지시킨 박정희의 외교성과가 생략되었다. 이것은 박정희 대통령을 폄훼하는 것이며 역사와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 대한 모멸감이다.

‘남산의 부장들’은 4.15 총선을 80여 일 앞두고 개봉되었다.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시점에 이러한 영화를 세상에 내어놓은 의도가 무엇인가. 좌파 세력들은 역사왜곡을 하는데 아무 주저함이 없다. ‘남산의 부장들’은 천인공노할 국사범(國事犯) 김재규가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하면서 “각하는 혁명의 배신자입니다”라는 대사를 한다. 혁명의 주체가 아닌 자를 의사·혁명가로 둔갑시키고, 은혜를 원수로 갚은 배은망덕한 자를 영웅화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대한민국의 성공과 영광의 역사에 대한 자기부정이며, 퇴행적인 자학 역사관의 발로라 할 수 있다. 나아가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호와 산업화 세력을 부정함으로써 대한민국 주류세력을 교체하겠다는 정치적 의도가 엿보이는 정치선동 영화라 평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 대법원 판결문에도 “10.26은 우발적이라고 보기엔 상당히 계획적이고, 계획적이라고 보기엔 너무도 우발적”이라고 적혀 있다. 생전의 김종필(JP)은 원작자 김충식(전 동아일보 기자)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김재규가 차지철과 충성경쟁에서 지게 되니까 빵 하고 차를 쏘고 뭐가 미우면 뭐도 밉다고 영감(박정희)까지 쏜 게 10.26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단순한 2인자(김재규와 차지철) 충성경쟁의 말로라는 이야기다.

‘남산의 부장들’은 박정희 대통령의 공과(功過)를 균형 있게 다루지 못했다. 박 대통령은 과보다 공이 더 큰 세계가 인정하는 위대한 지도자다. 필자는 희대의 패륜적 영화 ‘남산의 부장들’을 관람하고 나오면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소회(所懷)로 국가의 미래를 걱정한다.

5.16 혁명이 없었다면 오늘 대한민국의 위상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 그날 밤, 총성이 없었다면 우리나라는 더 커질 수 있었을까? 사실이 외면받는 나라, 거짓이 추앙받는 나라를 어찌할 것인가. 우리 후손들이 박정희와 같은 영웅으로 자라나야 하는가, 아니면 김재규와 같은 패륜아를 닮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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