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주현 교수
문주현 교수

법치주의는 우리 헌법정신이다. 법 지배 원리 핵심 중 하나가 절차적 정당성이다. 이를 강조하는 대법원 판례를 누구나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어떤 문제를 해결할 때, 어느 한쪽의 희생이 강요되지 않도록 정당하게(정당성), 법이 정해 놓은 절차를 지키며(합법성), 모든 관련 당사자의 의견을 듣는(민주성) 과정을 거쳐야 절차적 정당성을 갖출 수 있다. 그런데 탈원전 정책은 절차적 정당성이 결여됐다. 

첫째 탈원전 정책 수립의 근거문서가 규정을 위반했다. 탈원전 정책의 단초를 제공한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보고서’의 ‘원자력발전 비중 축소’ 권고는 공론화위원회 설립 규정을 벗어난 것이다. 공론화위원회는 국무총리 훈령 제690호에 따라 설치됐다. 이 훈령은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여부에 관한 공론화만을 공론화위원회 목적으로 못박았다. 공론화위원회는 이 위임사항에 벗어난 것을 임의로, 그것도 시민참여단의 충분한 숙의를 생략한 채 조사하여 권고를 만든 것이다. 

둘째, 원자력발전 비중 축소 권고의 근거가 비논리적이다. 원자력발전 정책 방향에 대해, 1차와 3차 조사에서는 원전 유지 또는 확대에 대한 응답률 합(1차: 46.8%, 3차: 50.5%)이 원전 축소 응답률(1차: 45.6%, 3차: 45.9%)에 비해 높았다. 단지 4차 조사에서 그 값이 45.2% : 53.2%로 바뀌었다. 어떤 경향성을 띠지 않은 조사 결과 중 입맛에 맞는 일부만 떼어내 권고의 근거로 삼았다. 

셋째, 탈원전 정책 결정 과정이 편법적이다. 탈원전 정책은 국가 주요 에너지 정책이자 원자력 발전정책이다. 원자력 이용에 관한 중요 사항이기도 하다. 에너지법은 국가 주요 에너지정책과 원자력 발전정책을 에너지위원회 심의 사항으로 정하고 있다. 

원자력진흥법은 원자력 이용에 관한 중요 사항을 원자력진흥위원회 의결사항으로 정하고 있다. 탈원전 정책을 구체화시킨 탈원전 로드맵은 국무회의(2017.10.24.)에서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권고 후속 조치로서 의결한 것에 불과하다. 관련 법에서 정한 절차를 건너뛰고, 신고리 5·6호기 공론화를 탈원전 공론화로 탈바꿈시켜 탈원전 정책을 결정한 것이다.

넷째, 국민과 이해관계당사자의 의견을 듣지 않았다. 에너지 정책은 국민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므로 모든 국민이 이해 당사자다. 신규원전 건설중단과 취소에 따라 직·간접적 피해를 보는 지역주민과 원전업계 종사자 등도 이해 당사자다. 당연히 이들 의견을 충분히 수렴했어야 했다. 탈원전 로드맵을 비롯해 이에 근거한 국가 계획을 수립하며 국민과 이해당사자의 의견수렴은 거의 없었다. 

그 이후에도 정부는 신한울 3·4호기 건설재개를 요구하는 지역주민, 탈원전 정책의 부작용을 알리는 전문가, 원자력 이용을 지지하는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닫았다. 한국원자력학회가 2018년 8월부터 3개월마다 4차례에 걸쳐 전국의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4차례 모두 원전의 지속 활용 지지율이 70%대였다.

탈원전 정책이 강행된 지 2년여가 흐른 지금 우리는 어떤 현실을 마주하고 있나? 국민과 기업은 가뜩이나 어려운 살림살이 속에 전기요금 폭탄이 언제 떨어질까 전전긍긍이다. 원전 기업은 벼랑 끝으로 몰리고, 수많은 종사자는 일자리를 잃었다. 원자력 전공 대학생은 이탈하고, 고교생은 진학을 꺼린다.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췄던 국내 원전 산업 기반이 송두리째 무너지고 있다. 여론의 등쌀에 정부가 마지못해 해체 산업 육성을 대안 카드로 내세웠다. 소꼬리 살찌워 소 몸통 대신하려는 격이다. 환경은 어떤가? 태양과 바람맞이를 위해 국토 곳곳이 훼손되고 있다. 온실가스 문제 해결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유엔 환경 프로그램(UNEP)은 2019년 11월 발표한 ‘배출량 격차 보고서(EGR) 2019’에서 “한국은 탈원전 정책으로 발전 부문에서 온실가스 감축이 난항을 겪고 있으며, 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 자체 감축 목표 달성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더 늦기 전에 광기의 탈원전 정책을 정상으로 되돌려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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