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화재, 68년 만의 노조 출범...‘화합’과 ‘대립’의 기로

[일요서울 | 양호연 기자]삼성화재가 창립 68년 만에 처음으로 노동조합(이하 노조)이 생겼다. 노동인권을 존중받고, 상생하는 기업문화를 실천하겠다는 게 노조의 목표다. 그간 삼성이 ‘무노조 경영’의 대명사로 통해 왔던 만큼 이번 노조 설립은 업계 큰 화두로 떠올랐다. 한편 삼성그룹은 준법감시위원회를 공식 출범시키고, 윤리·준법경영을 감시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또한 노조 문제나 승계 문제에서 법 위반 리스크 관리도 준법감시 대상의 예외가 아니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준법감시위의 역할을 두고 설왕설래(說往說來)하는 모양새다. 삼성이 국내 기업들의 경영 모델 격으로 통하는 만큼 삼성화재 노조의 향방에 산업계 전반의 이목이 집중됐다.


“인격무시‧부당대우‧업무과중에도 입도 뻥긋 못해...엄정 대응할 것”

삼성, 준법감시위 출범 “노조포함 준법감시 분야 성역 두지 않겠다”



삼성화재 노조의 상급단체인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지난 3일 삼성화재 노조가 이날 출범식을 열고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했다고 밝혔다. 해당 노조는 지난해 12월8일 설립총회를 열었고, 지난달 23일 정식으로 노조 설립신고를 마쳤다. 오상훈 노조위원장은 직원들의 노동인권을 지켜 갈 노조가 설립됐음을 선언하며 “서로 존중하고 상생하는 기업문화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노조의 근원적 목적은 근로자가 주체가 돼 근로조건의 유지, 개선 및 기타 근로자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하는 것이다. 이런 노조가 설립되기까지 삼성화재는 68년이 걸린 셈이다. 여론은 노조의 갑작스런 설립 배경에 주목하는 모양새다.

“일방통행식 경영
종지부 찍겠다”


일각에서는 이들 노조가 설립 목적을 밝히는 과정에서 ‘무노조 경영의 대명사였던 삼성에 노조가 생긴다는 것은 더욱 건실한 기업으로 나아가기 위함’이라고 했지만 “노동자의 헌법상 권리와 노동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일방통행식 경영에 종지부를 찍을 것”이라는 대목을 통해 또 다른 의미가 내포됐다고 내다봤다. 출범 당시 노조 측 관계자는 “사측의 불법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법과 절차에 따라 한국노총과 함께 엄정히 대응하고, 권리를 되찾기 위해서는 노조가 필요하다”며 “비록 많지 않은 조합원으로 출발하지만 올해 안에 과반수 노조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알려진 대로는 가입 의사를 밝힌 인원이 현재까지 150여 명 정도다.
이들은 다양한 노조의 역할 중에서도 출신에 따른 인사 차별 해소 부분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오 위원장은 언론을 통해 통일신라시대를 비유하며 회사 내 골품제도가 있다고 설명하면서 삼성그룹에서 파견되거나, 삼성화재에서 근무하다가 그룹에 잠시 파견을 다녀온 소수의 고위직들이 나머지 직원들을 대상으로 부당한 인사발령이나 인사고과 등을 일삼아 왔다고 주장했다.

그는 “헌법이 인정한 노동 3권을 입사 후 단 한 번도 누리지 못했고 그게 당연한 줄 알고 살아 왔다”며 “회사의 일방통행식 경영으로 인해 상사가 인격을 무시해도 참고 견뎠고, 부당한 인사발령과 고과, 급여, 승진체계, 불합리한 목표 및 각종 차별대우에 대해서도 말 한마디 못했고, 무리하고 과중한 업무에 대해서도 입도 뻥끗 못하고 참아내야 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노동조합에 대해 얘기하거나, 가입하는 것은 헌법과 법률이 규정한 합법적이고 정당한 노동자의 권리이며 노조 가입을 막거나 노조 활동을 이유로 불이익을 주는 사측의 모든 행위는 부당노동행위이고 불법행위”라고 덧붙였다.

현재 삼성그룹 계열사 중 노조가 설립된 곳은 삼성전자, 삼성SDI, 삼성생명, 삼성증권, 에버랜드, 에스원 등으로 알려졌다. 이들 중 일부는 삼성화재 노조 출범식 행사에 참석하며, 삼성화재 노조의 출발을 독려했다.

노조 와해 사과했지만...
준법위 출범은 ‘양날의 검’?


무노조 경영 원칙이 사실상 틀어진 가운데 삼성그룹 측의 움직임도 주목할 만하다. 여론은 노조의 활동이 순조롭게 이뤄지고, 사측이 이들의 입장을 수용할 지에 대해 의문을 표했다. 더군다나 노조 출범 단계에서 노조 측이 “사측은 대외적으로는 윤리경영을 얘기하면서 대내적으로는 견제 없는 인사권을 갖고서 약자인 직원들이 노동조합을 설립하지 못하도록 관리 통제해 왔다”고 주장한 만큼, 일각에서는 노조설립이 대립과 화합의 기로가 될 수 있겠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또한, 삼성이 ‘노조 와해 혐의’ 등으로 구설에 올랐던 만큼, 혁신적인 변화 가능성 여부를 가늠할 수 없다는 눈치다.

이 같은 우려의 시선은 최근 벌어진 삼성전자의 이메일 삭제 사건과 연관이 있는 모양새다. 당초 노조 와해 논란이 일던 당시 삼성은 법원의 1심 유죄 판결에 따라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명의의 입장문을 통해 “과거 회사 내에서 노조를 바라보는 시각과 인식이 국민의 눈높이와 사회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음을 겸허히 받아들인다”며 “앞으로는 임직원 존중의 정신을 바탕으로 미래지향적이고 건강한 노사문화를 정립해 나가겠다”고 발표하는 등 공식 사과에 나섰다. 하지만 최근 한국노총 제4 노조 측에서 직원들의 사내 이메일 계정으로 발송한 노조 가입 독려 이메일을 모두 삭제한 것이 알려지면서 이들 사이의 잡음은 더욱 커졌다.

삼성전자 측은 “사규에 ‘회사가 제공하는 정보통신망을 업무 외적인 용도로 사용해선 안 된다’는 내용에 따라 ‘사규 위반’으로 조치한 것”이라고 대응했지만, 노조 측은 여전히 ‘삼성은 변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 외에도 노조 측은 언론을 통해 삼성이 최근 출범한 준법감시위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으며, 일종의 ‘눈 가리고 아웅 식의 쇼’를 하기 위한 장치에 지나지 않는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무노조 경영을 포기했다면 노조 가입 독려 이메일을 삭제하는 일이 없었을 것이라는 게 이들의 입장이다.

현재 노조 측은 준법감시위를 두고 사측의 결정을 반발하고 나섰다. 위원장이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로 조직을 꾸린다는 불만도 있다. 노조와 준법감시위가 비슷한 시기에 출범한 상황에서 앞으로 풀어나갈 이들의 판단과 결정에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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