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총선에서 ‘안철수신당’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안철수 전 의원 못지않게 중앙선관위 결정이 유감스럽다. 별 기대할 것 없던 이번 21대 총선에서 몇 안 되는 볼거리가 사라졌다. 안철수 전 의원은 창당 전문가라 불릴 만하다. 안 전 의원이 만드는 4번째 신당이 과연 몇 프로, 몇 석을 얻을지가 궁금했다. 

중선관위가 ‘안철수신당’을 불허하면서 안 전 의원이 만드는 신당은 ‘국민신당’이나 ‘내일신당’ 따위의 재미없는 이름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비례의석을 얻을 수 있는 마지노선인 3%를 얻을 수 있을지도 불확실해졌다. 총선을 관전하는 재미도 약간 줄어들었다.

이태규 의원 같은 닳고 닳은 고단수가 비웃음 살 줄 모르고 ‘안철수신당’으로 하자고 했을 리 없다. ‘안철수신당’이란 이름이 붙어야 한 표라도 더 얻을 수 있다고 봤을 것이다. 섣불리 ‘새정치’ 맛 나는 이름 붙여봐야 수많은 정당들 틈에서 변별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누가 봐도 안 전 의원이 만든 당임을 알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 과감하게 ‘안철수신당’을 택했을 것이다. 염치없더라도 결과를 낼 낯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안 전 의원이 돌아온다고 할 때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21대 총선 끝나고 자유한국당을 포함한 야권이 패배한 뒤에 구세주로 돌아올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니 독일에서 미국으로 건너갔다고 봤다. 안 전 의원의 독일 체류가 식상해질 때도 됐고, 미국에서 1년 더 머물면서 총선을 건너뛰지 않을까 하고 전망했다. 그리 생각한 사람들은 안 전 의원을 몰랐다. 1년 더 외국을 떠도는 상황은 안 전의원의 조급한 마음이 허락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안 전의원은 지난 2016년에도 20대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당’을 만들었다. 현재보다도 중간지대가 없던 시절이었기에 야권 통합의 압박도 컸고 진보개혁 세력의 비판도 높았다. 

안 전 의원은 “물도 먹을 것도 없고 사방에 적뿐인 광야에 서 있지만 도중에 죽는 한이 있더라도 새로운 땅을 향해 전진해야 한다”면서 아랑곳없이 밀고 나갔다. ‘창업자’로서의 본능이 유감없이 발휘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결국 국민의당은 38석을 얻었고 안 전의원은 정치적 성공을 거뒀다.

21대 총선을 세달 앞두고 귀국한 안 전의원은 과거의 성공을 재현할 수 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안 전의원의 신당이 20대 총선에서의 성과를 재현할 수 있다면 2017년 대선과 2018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연이어 3등한 수모를 대갚음할 수 있을 것이다. 교섭단체만 꾸릴 수 있어도 야권의 강력한 대선후보로 부상할 것은 자명하다. 안 전 의원 입장에서는 자기 세력을 가지고 보수 통합과 대권 도전에 나서는 꽃길을 상상했을 법도 하다.

안 전 의원이 호남과 중도층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당장 안 전 의원에게 버림받은 손학규 대표가 뒤늦게 만만치 않은 정치력을 보여주고 있다. 바른미래당과 대안신당, 민주평화당이 호남 민심을 겨냥하고 발 빠르게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이들은 안 전 의원같은 대선주자가 없다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통합을 통해 원내 교섭단체만 구성할 수 있다면 탄탄한 자금력으로 안 전 의원 세력에 위협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안 전 의원이 이런저런 험난한 장애물을 뚫고 이번 정치 복귀를 성공시키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한때 새정치의 아이콘이었던 안 전 의원은 어느덧 대선주자 중 가장 비호감도가 높은 정치인이 되었다. 안 전 의원은 자신이 비호감도가 60% 가까이 나오는 정치인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안 전 의원은 아직 효용이 다한 정치인은 아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결단하고 도전하는 정치 지도자의 덕목을 가지고 있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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