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하]

[편집=김정아 기자/사진=Go-On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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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내려다 본 도하의 풍경에 떨림은 없었다. 황토색으로 가득 찬 대지, 드문드문 나타나는 빌딩숲. 건조하고 지루한 풍경이 전부였다. 그리고 단 하루의 도하여행,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거대한 구멍에 빠졌다 나온 것 같은 짜릿한 전율이 다시 공항으로 돌아가는 내내 식을 줄 몰랐다. 내가 중동 사람이었다면 조금은 평범하게 보였을까? “너를 보는 순간 Fantasy!”

[일요서울 |  프리랜서 김관수  기자] 지도에서 확인한 카타르는 중동의 최소국이었다. 대한민국 지도의 제주도 같은 느낌. 과거 진주를 캐서 근근이 밥벌이를 하다가 이마저도 진주 양식이 등장하며 나락으로 떨어질 위기에 처했다. 작고 가난했던 어촌은 석유와 천연가스의 발견과 함께 막대한 부를 쌓으며 세계 부자 순위 1~2위를 다투는 최부국으로 발전했고, 전 세계인 모두가 부러워하는 복지혜택을 국민들에게 안겨주며 살고 싶은 행복의 땅으로 변모했다. 최근 중동의 맹주 사우디아라비아와 단교를 선언할 정도의 자신감과 함께 대외적으로 존재감을 끌어올리며 2022년 월드컵 개최라는 빅 이벤트도 앞두고 있다. 우리와의 관계도 뜨거운 관심사다. 당장 올 상반기 발주를 앞두고 있는 약 10조 원 규모의 LNG선 프로젝트는 위기에 빠진 우리나라 조선업을 빠르게 회복시킬 수 있는 대한민국 조선업이 사활을 건 프로젝트다. 석유, LNG와 같은 천연자원의 덕이라고는 하지만, 카타르의 부상은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상상 이상이 아닐까.

[사진=Go-On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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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 아닌, 뜨거움

누구나 중동의 더위를 예사롭게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흔히들 ‘살이 타는 듯한 뜨거움’을 얘기하지만, 도하의 태양은 살을 태우지는 않았다. 다만, 에어컨이 빵빵하게 돌아가는 실내에서 밖으로 얼굴을 내미는 순간, 숨이 턱 막힐 것 같은 강렬한 더위의 침투를 몸소 체험할 뿐이었다.
첫 외출은 어둠이 이미 내려앉은 저녁 시간이었다. 숙소를 나와 약 20분쯤 산책로를 따라 걸어 쇼핑몰로 가는 길, 여전히 더웠다. ‘해가 지면 더위가 식기는 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 ‘그런데 어떻게 20분쯤을 걸어갈 수 있을까’ 궁금해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눈부시게 컬러풀한 야경과 뜻밖의 산뜻한 거리 풍경이 있어 가능한 산책이었다. 다음 날 아침식사를 마치고 다시 호텔을 빠져 나온 느낌은 확실히 달랐다. 더위가 아닌 진짜 말 그대로의 뜨거움이었다. 40도를 넘나드는 온도의 숫자, 그보다 더 높은 게 아닐까 의심스러운 상황은 나의 뇌신경과 피부에서 겪어보지 못한 낯설음이었다. 내 몸이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감각에 온도계의 숫자를 입력시키는 것이 가장 먼저 한 일이었다. 누군가 툭 던졌던 50도에 대한 상상과 함께 나름의 방비책도 빠르게 생각해야 했다.
 

[사진=Go-On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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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하 시티투어

그럼에도 투어는 시작됐다. 카타르항공의 스톱오버 프로그램과 함께 신청한 도하 시티투어 프로그램으로 본격적인 도하 시내구경에 나섰다. 편안하고 고급스러운 좌석의 투어 차량, 젠틀한 매너와 깔끔한 영어를 구사하는 드라이버 겸 가이드는 세계 최고 부국다운 면모로 투어의 기대감을 높였다. 반나절의 시티투어는 결론적으로 신세계의 서막이었다. 황토색으로 뒤덮여 있던 장막을 걷어내고 거침없이 드러내는 도하의 속살은 지난 밤 보았던 화려하고 정교한 도시의 야경과는 또 다른, 인간미가 살아 숨 쉬는 문화적 감성과 부유한 현대도시의 넉넉함을 모두 선보였다. 여행자의 시선이긴 하지만, 졸부(猝富)의 서툰 치장이 아닌 치밀한 계획과 과감한 투자로 탄탄함을 갖춘 시내 풍경은  큰 도시에서 흔히 느낄 수 없는 안정감도 느껴졌다. 뜨겁지만 않다면, 한번쯤 살아보고 싶은 마음. 사실 한국인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사진=Go-On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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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라 문화 마을 

첫 목적지는 카타라 문화 마을이다. 카타르의 전통적인 마을을 감상할 수 있는 곳으로 카타르 여행이 처음이라면 빼놓을 수 없는 도하의 명소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한국민속촌과 같은 개념이지만, 입구부터 건물 내부까지 마을 전체가 ‘낡음’이 아닌, 화려함의 진수를 보여준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두 개의 기다란 봉우리 같은 건물은 비둘기들의 안식처다. 비둘기의 출입문인 작은 구멍들이 오밀조밀하게 아름다운 무늬를 이루고, 비둘기들이 앉아서 쉴 수 있는 나무 막대들이 가시처럼 빽빽하게 박혀 있어, 마치 사막 위에 나 있는 키 큰 선인장을 보는 것 같다. 그들의 삶에서 비둘기가 얼마나 중요하기에 이런 집이 마을에 있는 걸까. 비둘기의 배설물은 농사의 거름으로 쓰이기도 하고, 염료의 원료로 사용된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비둘기는 마을 간 통신을 위한 메신저로 이용됐다고. 가장 중요한 사실은 비둘기 고기는 카타르 사람들이 최고로 치는 보양식으로 사랑받는다고 한다.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 역시 스쳐 지나가기에는 아까운 볼 거리다. 화려한 타일로 물들인 외벽과 고풍스러운 실내장식, 햇살을 통과시켜 그들의 예배당을 더욱 아름답게 수놓는 창문까지 모든 것이 사원의 값어치를 이야기한다. 황금 미나레트를 지나 광장으로 들어서면 쨍쨍한 대리석 바닥과 페르시아의 바다가 나타난다. 머릿속에 있던 황토색의 건조함이 휙 하니 사리지는 그 순간, 도하의 매력에 서서히 빠져 가는 내 모습이 광장의 바닥 위에 어른거리고 있었다.  


<다음 호에 이어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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